[김태우 칼럼] 안보 백년대계 지켜줄 정치세력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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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2.06 11:15:15
  • 최종수정 2020.02.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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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변혁 탄핵' 동조 반성하고, 자유우파 국민과 함께하고, 안보 지켜줄 정당 어디 없소?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안보전문가가 정치관련 칼럼을 쓰는 것은 그다지 개운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안보가 정치에 휘둘리는 시대를 사는 전문가이라면 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통상 정치선진국에서는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안보정책이 달라지는 것은 별반 없다. 과거 서독에서는 집권당이 바뀌어도 정보기관의 수장들은 제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 미국의 경우에도 안보정책에 관한 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트럼프라는 유별난 대통령이 등장한 지금은 민주당이 행정부에 의한 동맹약화를 견제하는 혼란스러움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다.

‘3류 정치’에 대한 보수 정당들의 책임 적지 않아

한국의 정치풍토는 선진국들과는 다르다. 부정부패에 취약하고 공익보다는 사익과 개인적 영달을 중시하는 ‘3류’의 모습도 여전하지만, 집권세력이 좌파인가 우파인가에 따라 정책기조가 180도로 바뀐다는 점에서 여느 국가들과는 많이 다르다. ‘좌와 우’ 그리고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들이 의도적으로 혼용되면서 엄청난 혼란이 존재함도 독특하다. 여느 나라에서라면 ‘진보’와 ‘보수’가 국가체제를 놓고 경쟁하지는 않는다. ‘보다 전향적인 정책’과 ‘보다 안정적인 정책’을 놓고 경쟁할 뿐 국가정체성과 체제를 지키는 데에는 한 마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사파 집권 이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언론들은 이들을 ‘좌파’로 부르지 않고 ‘진보’로 부르며 이들 스스로도 ‘진보’를 자칭한다. 이런 현상은 좌파들이 ‘프레임밍(framing) 전쟁’에서 승리하고 언론을 장악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어쨌든 이로 인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보다 전향적인 정책을 선호하는 ‘원래의 진보,’ 즉 우파에 속하는 진보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운 3류’에 머문 데에는 ‘보수’를 자임해온 정치세력들이 져야 할 책임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집권해온 우파 정당들은 그저 좌파가 아니었을 뿐 투철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이념을 펼쳐온 것은 아니었다. 이들 정당들을 통해 모범적인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되었음도 사실이지만, 적지 않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있어 우파적 이념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안보 등은 공기와 같이 당연히 주어진 것이었다. 선거철이 되면 일부 중진 정치인들은 자신이 부담없이 부릴 수 있는 하수인들에게 뱃지를 달아주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그래야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래야 당대표나 대통령 후보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부터 우파적 가치들을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이런 행태가 수십년 동안 누적되면서 ‘웰빙 또는 수구’이미지가 각인된 것이었다.

보수 정당들이 지켜야 하는 세 가지 정도(正道)

‘자유우파’란 일종의 신조어로서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러는 용어다. 즉, ‘진보’로 위장한 좌파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에서 이에 항거하는 본래 의미의 보수와 진보,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요즘 자유우파 국민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권리를 통해 우파적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세력을 국정의 중심에 세우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참패를 안겨 줌으로써 그들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파괴, 경제 폭망, 안보 붕괴, 교육 황페화 등을 중단시키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보수’를 자칭하는 정치세력들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중도·보수 통합’이라는 대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국민에게는 ‘끼리끼리 공생’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소통합·대분열로 보인다. 이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고 있다.

첫 번째 정도는 탄핵을 덮고 갈 것이 아니라 짚고 가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우파의 대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좌파의 집권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되짚어야 할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탄핵과정에서 가짜뉴스들과 촛불광풍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운데 여론재판식으로 진행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기 때문에 탄핵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이 과정에서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지은 정치인들이 있다는 점인다. 즉, 촛불세력이 탄핵에 이어 체제변혁까지 치밀하게 기획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탄핵에 동조한 당시 여당 정치인들이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위기와 안보붕괴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다가올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대통령 주변에서 무사안일한 자세로 권력을 누렸던 정치인들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자유우파 국민들은 이들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되찾을 정치세력을 키우는데 밀걸음이 되겠다며 당분간이나마 뒤로 물러나 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들이 여전히 여전히 당을 주도하면서 ‘통합’이라는 이름 하에 지분 협상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 정도는 나라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어 놓는 것이다. 지금은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가 번갈아 집권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지금은 집권에 성공한 좌파가 적화통일로 가는 중간정거장이라 할 수 있는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염두에 두고 친북(親北)·친중(親中)과 탈미(脫美)·반일(反日)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안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안보 등이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 시대를 사는 보수 정당들이라면 좌파에 맞서는 우파 정당으로서의 선명성과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움직임을 주도해야 하는 보수 야당은 오히려 ‘중도·보수 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좌클릭’을 위한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중도로의 외연 확장’은 필요한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좌파를 대적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서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중도’라는 것도 보수와 진보를 아우러는 중도이어야 하지 좌와 우를 넘나드는 중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개념 정리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렇듯 보수 야당들은 무엇이 더 시급하고 무엇이 덜 시급한지를 모르는 혼란 속에서 옛 정치를 고집하고 있다. 암 환자에 감기 처방을 내리는 격이다.

세 번째의 정도는 자유우파 국민과 함께 선거를 치루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우파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보수 야당이 발표한 공천심사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좌우를 넘나들거나 중간지대에 머문 인사, 애국 시민들이 오뉴월 뙤약볕과 한겨울 비바람을 무릅쓰고 광장에서 외칠 때 구경만 했던 인사, 탄핵과 관련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들을 대리인으로 보이는 인사 등이 주류인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좌파 독재에 항거해온 애국 시민, 시민단체, 전문가 등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공천심사위원을 나누고 공천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다. 자유우파 국민들에게 있어 이런 모습은 ‘보수’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사안일 웰빙과 기득권을 즐겨왔고 탄핵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정치인들이 공생을 도모하는 광경으로 보일 것이며, “당신들은 결국 우리 말고는 찍을 곳이 없지 않느냐”라는 오만한 외침으로 들릴 것이다.

안보 지켜줄 우파 정당 어디 없소?

그래서 자유우파 국민들은 보수 야당들이 지금이라도 정도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탄핵을 덮지 않고 짚고 가겠다는 결의를 보이기를 원하며, 책임을 물어야 할 인사들에 대해서도 어던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주기를 기대한다. 현재의 공천심사위를 해체하고 국민공천위 성격을 가미한 새로운 공심위를 통해 ‘중도 통합’을 말하기에 앞서 광장의 외침들을 포용하고 좌파와의 싸움에서 능력과 소신 그리고 투쟁경력이 검정된 애국자들을 불러모으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기대가 무산된다면 자유우파 국민들은 냉소로 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도·보수 통합’을 주도한 실력자들은 살아 남겠지만, 또 다시 좌파에게 승리를 안겨주게 되고 좌파독재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소통합·대분열’인 것이다. 좌파에게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국가파괴 행위를 중단시키기를 원했던 많은 자유우파 국민은 다시 한번 ‘정치 무상’을 느낄 것이다.

국민은 곧잘 질풍노도를 일으킨다. 2016년 총선때 당시 보수 여당은 180석을 예상할 정도로 여론에서 우세를 보였다. 하지만, 꼴볼견 공천파동을 거치면서 국민의 분노를 산 끝에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유권자 국민은 또다시 배신감을 느낀다면 다시 한번 질풍노도를 일으킬지 모른다. 나라의 안보를 튼튼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유우파 정체세력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정치세력의 부상을 가로 막고 있는 웰빙 정당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야당심판론’이 터져나올 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안보 지켜줄 자유우파 정당은 없느냐”라는 한탄소리가 들린다. 안보 백년대계를 지켜줄 정체세력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2천 4백년 전에 플라톤이 한 말이다.

김태우 객원칼럼니스트(前 통일연구원장·前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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