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군 철수 수 공산화된 베트남...당시 사이공은 탈출하려던 남베트남인들로 아비규환
세계 최빈곤 국가로 전락한 베트남, 1986년 도이모이의 개방정책으로 성장하기 시작
베트남으로부터 안보, 경제에 대한 교훈 얻을 수 있어...좌경화 정책은 국민들을 추락시킬 뿐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베트남은 1954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제네바협정에 의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과거 월맹이라고 불리던 북베트남의 ‘베트남민주공화국’과 월남으로 불리던 남베트남의 ‘베트남공화국’으로 분단되었었다. 이후 남베트남지역에서는 남베트남 공산화를 목적으로 한 과거 베트콩이라고 불리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1960년 12월에 창설되어 남베트남 공산화를 위한 게릴라전을 펼쳤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1969년 8월에 ‘남베트남공화국 임시정부’로 개편되어 1973 베트남전쟁 종전을 위한 파리평화회담에 미국, 남베트남의 베트남공화국, 북베트남의 베트남민주공화국과 더불어 참여한 다음 베트남공화국이 1975년 4월 30일에 멸망한 후 ‘남베트남공화국’으로 재편된다. 이후 1976년 7월에 남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라는 통일정부를 수립한 것이 오늘날의 베트남이다. 

1960년~1975년에는 남베트남을 공산화하기 위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 정부, 그리고 남베트남이 공산화될 경우 도미노처럼 인도차이나반도가 공산화될 것을 우려한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 간에 베트남전쟁이 있었다. 오랜 전쟁 끝에 마침내 1973년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곧이어 미군이 철수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군 철수 후 전력이 크게 약화된 남베트남의 베트남공화국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벌여 1975년 4월 30일 베트남공화국은 멸망하고 베트남은 공산국가로 통일되었다. 베트남공화국이 멸망하기 직전에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남베트남인들로 사이공은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마지막 이륙하는 미군 헬리콥터에 매달리며 절규하던 방송장면이 아련하다.

남베트남 침공과정에서 26만 여명의 남베트남인들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통일 후에도 남베트남을 사회주의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남베트남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청산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100~250만 명이 전국 100여 개 재훈련 강제수용소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20년 정도 수용되어 장시간 노동과 식량부족으로 16~7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대략 6~7만 명의 반공인사 살해 등 공산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공포사회를 조성했다고 한다. 

통일 베트남정부는 남베트남을 사회주의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생산수단 국유화, 집단생산방식 도입, 가격기구 폐지를 추진하고 화폐개혁으로 남베트남인들이 가지고 있던 구권은 휴지조각이 되어 남베트남인들의 경제적 자유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집단생산방식에는 농촌의 집단농장화와 신경제지역건설 두 정책이 추진되었다고 한다. 신경제지역은 특정지역 특정계층 사람들의 집단이주 격리를 목적으로 주로 변방지역에 건설했는데 1975~1985년 사이 약 260만 명 정도가 강제이주되었고 이들 중 약 16만 여명 정도가 사망했다는 보고다. 이러한 탄압을 피해 1977년부터 약 100~200만 명이 해상탈출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도 10~40여만 명에 이른 것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무리한 체제전환 정책으로 베트남경제는 완전히 피폐되었다. 국제통화기금 통계에 따르면 1989년 1990년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97달러 98달러로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율은 수백 퍼센트에 달해 세계 최빈곤 국가로 전락했다. 마침내 베트남 정부는 1986년부터 도이모이라는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해 공산당 일당체제는 유지하면서 경제는 개혁개방하는 중국식 혼합 경제체제를 도입했다. 농업에서 집단 농업시대를 끝내고 농지는 여전히 국유이지만 장기 임대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했다. 대외개방정책도 추진했다. 그 후 베트남은 7% 내외 높은 성장률을 지속해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2700달러 수준까지 성장했다. 지금 베트남은 낮은 임금, 무노조쟁의, 근면 성실한 젊은 인력, 법인세 감면, 토지사용료 면제 등으로 한국의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2012년 부터는 경상수지도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기조로 돌아섰다. 

한국기업들은 삼성전자 등 7000여 기업이 진출해 베트남수출의 35% 정도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27,700여개 기업이 진출하고 있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기업이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진출기업으로는 하노이 인근에 진출해 있는 삼성전자로 14만 5천 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수 백 개에 달하는 동반진출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약 20만 명을 고용하고 있어 삼성도시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호치민시 인근에서 봉제업을 하고 있는 한세실업은 3만 명을 고용하고 있어 마치 6~70년대 구미공단이나 구로공단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기업들은 베트남 경제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금융회사 진출도 활발하다. 신한은행은 모두 36개의 점포를 가진 베트남 최대의 외국계 은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큰 베트남투자개발은행의 지분 17.65%를 인수하고 외환은행 수출입은행도 진출해 있다. 건설업 진출도 활발해 하노이대우호텔을 필두로 72층의 경남랜드마크, 롯데백화점 등이 진출해 있고 최근에는 하노이지하철 시공도 한국기업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개혁개방에도 불구하고 토지국유화로 토지의 다양한 이용 등 발전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노이의 서민주택은 4미터*12미터(약 15 평)으로 제한해 비슷한 모양의 주택 또는 연립주택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이 역시 개인의 다양성과 자유로운 창의성 발산을 억제해 건설산업 발전의 한계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하롱만 등 개발지역에서는 고급주택이 건설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여전히 일반 국민들의 소유는 제한적이라는 설명이었다. 경제개발 시작으로 외환보유액 (약 600억 달러)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외채(약 1200억 달러)가 제약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도이모이 도입 30여 년이 경과하면서 이제 높아진 임금수준이 부담이 되고 있다는 한국기업들의 전언이다. 

베트남을 둘러보면서 몇 가지 역사적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안보문제다. 오랜 전쟁에 지친데다 당시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던 미국은 북베트남의 군사력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 하에 건재할 뿐만 아니라 베트콩도 그대로 활동하고 있는데도 1973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종잇조각에 불과한 평화협정을 빌미로 물러갔다.  미군이 물러가자 곧바로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대대적인 공세로 남베트남의 베트남공화국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남베트남 군인들은 하루에도 수만 명씩 탈영해 군복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피난가기에 바빴다고 하니 남베트남 정부의 패망을 재촉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현재 북한은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200여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최빈곤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아랑곳없이 핵 미사일 잠수함 등 무력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군사합의서만 믿고 휴전선일대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정찰금지 등 군사방어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조치가 시행되고 평화협정이 언급되고 있는 형국이다. 튼튼한 국방이 유비무환이다. 베트남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는 경제문제다. 베트남의 경험을 통해 자유보다는 평등, 가격기구 축소, 작고 효율적인 정부보다는 큰 정부 등 좌경화 경제정책과 좌파정부의 장기집권을 위한 제도개혁 등 무리한 정책들은 국민들을 빈곤으로 추락시킬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베트남 마저도 10년의 좌파정책 끝에 마침내 개혁개방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2년 반 경제가 속절없이 붕괴되고 있는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책기조를 시장경제 기반으로 대전환하는 길만이 일자리가 없어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번영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베트남을 둘러보면서 한국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에서는 제조업 건설업 등 7천 여 한국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에서도 2만 6천여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중국경제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연간 한국기업의 해외투자액이 5백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의 연간설비투자액의 1/3에 해당되는 규모다. 이러니 한국에서 일자리가 생길 리 없는 것이다. 임금은 베트남의 10배 정도 되는 한국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하려면 높은 임금수준에 맞는 첨단기술과 높은 생산성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첨단기술을 개발해 낼 수 있는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 생산성 제고를 위한 노동개혁, 기업의 왕성한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규제혁파와 법인세 인하 등 투자환경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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