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궁극적으로 인간 수준으로 진화할듯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pennmike에 실리는 글들이 많아서, 글을 싣는 간격이 넓어졌다 합니다. 마음 흐뭇해지고 든든해지는 소식입니다.

얼마 전 정규재 주필과 만났을 때, 제가 정 주필에게 말했습니다, “몇 해 전에 제가 정 주필께 ‘정규재TV가 한국의 Fox News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반은 덕담이었습니다. 이제는 온전한 기대입니다.”

사회가 점점 유동적이 되어가므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기업은 단숨에 성공합니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현상입니다. 저는 많은 시민들이 찾는 ‘정확한 소식과 옳은 논설’이라는 재화를 정규재TV가 잘 제공하므로, 빠른 성공의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봅니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런 현상을 ‘진화가능성의 진화(The Evolution of Evolvability)’라 불렀습니다. 진화가능성까지도 진화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진화가 빨라지고 내용이 풍성해집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개념입니다만, 세상을 근본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어서,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다른 자리에서 정 주필은 “정규재TV를 platform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탁월한 생각으로 다가와서, 구체적 계획을 물었었습니다. YouTube라는 platform에 정규재TV가 얹혔는데, 정규재TV가 다시 platform이 되는 것이 바로 ‘진화가능성의 진화’라는 개념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원래 platform이란 개념이 먼저 쓰인 것은 군사 분야였는데 (예컨대, 전함은 병력과 포탄, 미사일, 항공기를 싣는 platform입니다. 그리고 병력은 무기가 적군에게 이르도록 하는 platform이고 함재기들은 폭탄을 싣고 적군에게 이르도록 platform이죠), 이제는 인터넷의 가상 공간에서 가장 활발하게 쓰입니다. 뒤에 어렵지만 중요하고 흥미로운 개념인 ‘진화가능성의 진화’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인공지능과 지능 사이의 관계

인공지능은 ‘기계가 드러내는 지능’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지능을 드러낸 기계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전자계산기 (programmable digital electronic computer)’ 뿐이다. 아직 인공지능은 특수한 기능들만을 수행할 수 있는 ‘부분 지능 (narrow intelligence)’에 머물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지능의 모든 기능들을 인간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으로 진화하리라 예상된다. 인간의 지능보다 뛰어난 전반 지능은 ‘초지능’이라 불린다.

인공지능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이 분야의 선구자들 가운데 하나인 존 머카시(John McCarthy)다. 뒷날 그는 자신의 연구 사업이 보조금을 받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붙일 ‘섹시’한 이름을 찾다가 인공지능을 생각해냈다고 술회했다. 어쨌든, 그가 이 명칭을 생각해낸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자연이 오래 전에 만들어낸 지능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가리키는 이 명칭 덕분에 인공지능과 지능 사이의 관계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자연히, 인공지능을 살피려면, 먼저 지능을 살펴야 한다. 지구 생태계에서 지능이 진화한 과정을 살피고 그런 맥락 속에 인공지능을 놓아야, 비로소 인공지능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난다. 인공지능을 지구 생태계의 진화라는 맥락 속에서 살피지 않으면, 어떤 고찰이나 전망도 온전할 수 없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인간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지능은 동물의 뇌에 바탕을 둔다. 뇌가 수많은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진 기관이므로, 신경세포들을 갖춘 동물들은 모두 최소한의 지능을 지녔다. 즉 지능은 사람이 갑자기 갖춘 것이 아니라 6억년 전에 나타난 최초의 동물들이 지녔던 원초적 지능에서 진화했다. 지구 생태계가 경험한 지능의 진화에서 최근에 나온 성취가 인공지능인 것이다.

인공지능은 느닷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먼저 그것을 만들어낼 만큼 지능이 발전한 종(種)이 나와야 했다. 실제로 인류의 지능은 비정상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영장류에서 유인원(ape)은 원숭이(monkey)보다 뇌가 3배 가량 크다. 그리고 인류는 다른 유인원 종들보다, 즉 기번,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보다, 뇌가 3배 가량 크다. 이처럼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수준보다 무려 9배나 큰 뇌를 갖추었다.

그렇게 큰 뇌는 당연히 생존에 큰 부담이 된다. 사람이 출산에 큰 어려움을 겪고 흔히 산모나 태아가 죽으므로, 너무 큰 뇌는 일단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뇌가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커진 까닭을 설명하는 것은 현재 인류학과 진화생물학이 안은 큰 과제다.

어쨌든,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큰 뇌를 지닌 덕분에, 인류는 고도의 문화를 빠른 기간에 발전시켰다. 그런 문화적 바탕에서 인공지능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구 생태계가 인류의 발전된 지능을 낳은 과정과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지구 생태계의 진화적 역사를 살피는 것이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의 우주는 138억년 전에 대폭발(The Big Bang)을 통해 생성되었다. 대폭발 이전의 우주의 모습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태양과 지구는 46억년 전에 생성되었다. 지구 생태계의 진화에서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하데스 시대 (Hadean Eon): 40억년 이전]

46억년 전: 지구 생성

45억년 전: 달 생성. (달의 인력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안정되어, 생명체가 나타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됨.)

44억년 전: 액체 상태의 물이 지구 표면에 처음 나타남.

42억 8천만년 전: 첫 지구 생명체가 나타남.

[태고 시대 (Archean Eon): 40억년 전부터 25억년 전까지]

39억년 전: 원핵생물(세포핵이 없는 생물)과 비슷한 세포가 나타남.

35억년 전: 지구 생명체들의 ‘마지막 공통 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생존 시기. 이후 생명체들은 세균(박테리아)과 고세균(archaea)으로 나뉨.

[원생 시대 (Proterozoic Eon): [25억년 전부터 5억 4200만년 전까지]

18억 5천만년 전: 진핵생물(세포핵이 있는 생물)이 나타남.

12억년 전: 진핵생물의 유성생식 시작 (성은 훨씬 오래 전에 발명되었다는 증거가 있음)

8억년 전: 다세포 동물이 나타남.

6억년 전: 동물이 나타남.

[현생(縣生) 시대 (Phanerozoic Eon): 5억 420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 고생대 (Palaeozoic Era): 5억 4200만년 전부터 2억 5100만년 전까지

5억 3천만년 전: 가장 오래 된 육상 동물 발자국 화석.

4억 8500만년 전: 진정한 뼈를 가진 척추동물이 나타남.

4억 3400만년 전: 첫 육상 식물.

2억 5140만년 전: ‘2첩기-3첩기 멸종(Permian-Triassic extinction)’으로 해양 종들의 90-95 퍼센트가 사라짐.

- 중생대 (Mesozoic Era): 2억 5100만년 전부터 6600만년 전까지

2억 2500만년 전: 첫 공룡. 첫 포유류.

9000만년 전: 첫 태반포유류.

8000만년 전: 첫 개미.

- 신생대 (Cenozoic Era): 660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6600만년 전: ‘백악기-고제3기 멸종(Cretacious-Paleogene extinction)’으로 동물 종들의 절반 가량이 멸종.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들이 사라짐. 포유류가 지배적인 동물이 됨.

6000만년 전: 진정한 영장류가 나타남.

5500만년 전: 고래와 상어가 나타남.

650만년 전: 첫 hominin(인류와 인류의 조상을 포함하는 종).

2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해부학적으로 현생 인류와 같은 종이 나타남.

이처럼 지구 생태계의 역사는 길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변화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졌다. 지구에서 살았던 50억이 넘는 종들 가운데 99퍼센트 넘게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지구에서 사는 생명체들은 1000만 종에서 1400만 종 사이로 추정된다.

모든 과학적 논의들은 그렇게 길고 극적인 생태계의 역사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 어렵고 흔히 괴로운 지적 작업이다. 우리는 다음날까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들만을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둘레의 자잘한 것들 에 주목하고 거기서 나오는 미묘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과학이 다루는 심오한 이치들에 대해선 관심이 작다.

그래도 때로 눈길을 일상적 시평(time-horizon) 너머로 던져서 아득한 세월을 상상하는 일은 큰 지적 보답과 즐거움을 준다. 아울러, 누구나 날마다 겪는 갖가지 문제들을 보다 긴 안목에서 차분하고 냉철하게 다룰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지혜로운 철학자로 이름 높았던 미국 철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는 그런 지적 보답과 즐거움과 여유를 ‘철학의 즐거움’이라 불렀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작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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