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지금은 더 냉정해져야 할 때
[황성욱 칼럼] 지금은 더 냉정해져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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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수도성장이란 해괴한 정책에 일자리 파괴되고 기업은 줄지어 탈한국행
데모해야 정부 권력 등에 업고 부자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됐다
법치주의는 문재인 정권 출범과 함께 파괴돼...좌경화된 사법부에 인민재판까지 등장
검찰총장이 권력 향해 수사한다고 정치세력들 적반하장으로 입 모아 비난
親文이 법무 장관직에 오르면서 권력 수사하는 검사들 내쫓는 일들도 당연한 것처럼 용인돼
자유 시민들, 4·15총선 겨냥해 단 한 방의 총알만 남겨놔...흔들리지 말고 냉정하게 표적 주시해야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설 명절이 지났다. 4월 총선을 앞둔 명절이라 어느 때보다도 정치 주제가 오갔을 명절이다. 밥상머리에서 나온 대화들이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대한민국이 예전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다고 웃음꽃이 핀 집안은 얼마나 될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그동안 겪어왔던 나라’보다 어제보다 오늘이 좋았고 오늘보다 내일이 희망이 있다는 얘기가 과연 오갔을까. 분명한 것은 어떤 주제로 얘기를 하건 모든 이슈가 다 정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 2년 반이 그랬다. 모든 것이 바뀌긴 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해괴한 경제정책은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생산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 소득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비숙련, 청년근로자는 일자리 파괴로 취업의 기회마저 뺏겼다. 기업은 투자를 기피했고 중소기업들조차 탈(脫)한국을 외쳤다. 경제지표는 늘어나는 파이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0년 만에 최저로 간신히 2.0%를 턱걸이 했다고 하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소비로 막판 4분기에 쏟아 부은 눈속임에 불과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빚으로 낸 성장률이지만, 2%가 현상유지라는 경제학계의 통설에 비춰보면 실질은 마이너스다. 미국과 일본에서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국제뉴스만 쳐다봤을 뿐, 국내기사에서 그런 기사는 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법에서 보장하는 최저임금이 우리보다 훨씬 낮고 해고도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운 나라들이 다들 우리보다 임금은 높고, 일터에서 잘리지 않는다. 우리는 데모할 때 그들은 일을 한다. 우리는 데모하는 사람이 정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결국은 소위 ‘부자들만’ 내는 세금을 가져가지만 우리보다 훨씬 법의 기준이 낮은 나라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몫을 가져가서 세금을 낸다. 즉,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소위 그 ‘부자’가 된다.

법치주의는 이미 3년 전에 파괴됐다. 여론의 인민재판과 법의 여신이 지배하는 법정의 구별은 사라졌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전체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이들에게 유리한가 여부로 그 얼굴만 매번 바뀌었다. 여론재판이 불리하면 그들만의 법의 여신이 등장했고, 법정이 불리하면 인민재판이 등장했다. 법의 여신을 자처했던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출마한다고 하여 결국 그들이 누구 편이었는지 자백하고 있고 인민재판의 첨병인 언론은 여전히 언론을 빙자한 정치를 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권력을 향해 수사를 한다고 정치세력이 백주대낮에 공격을 해대고 특정인은 법을 넘는 특혜를 누려도 그것을 개혁에 저항한 일이라 포장하고 있으며 정치인 법무부장관이 들어와서 수사검사를 내쫓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안보? 나중에 일이 닥칠 때까지 이 나라의 애국자들은 극우 소리를 들어야 하니 더 이상 말을 하는 게 무의미할 지경이다. 군인들까지 안보 문제를 정치로 해석하는 나라에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여기까지는 자유 시민들이 다 알고 있고 흥분할 얘기다. 그러나 흥분만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조차도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사회 기득권에 때가 묻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패를 지어있고 사회기득권에 때가 안 묻은 사람들은 통계를 보기보다는 언론의 수사만 바라본다. 누가 정의를 외면하겠냐만 이 나라는 언제나 악당인 사람과 언제나 자신은 정의의 사도인 사람들로 넘쳐나고 또한 그것도 순식간에 바뀌는 다이나믹한 대한민국이다.

문제는 자유 시민들에게 남은 총알이 단 한방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다는 것은 한편으론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들 정치에 미칠 수밖에 없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유권자가 매일 벌어지는 정치권 놀음에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대단한 정력낭비고 힘의 낭비라는 것이다. 한 방을 정확하게 쏘려면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한 발 뒤에 떨어져 있는 것도 필요하다. 매일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출처 없는 카톡 뉴스와 흥분을 해소해주는 대리 발산자를 찾는 것으로 정치적 불만을 해결하는 것도 한 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너무들 흥분되어 있다는 것이 내 솔직한 우려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권은 요동칠 것이다. 개인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들도 무척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를 움직이는 것은 인물보다는 사건이라는 것이 인물 정치 이후의 대한민국 선거 지형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호불호를 강요하기보단 자유의 가치를 기준으로 냉정하게 이슈를 가지고 그에 부합하는 선택을 얘기하는 것이 훨씬 확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1. 이슈에 대해서 집중하고 비판하자.

2.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자. ‘카더라’로 들은 말에 해석까지 붙여 전파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자.

3. 모든 언론의 기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자. 한국에서 언론은 모두 정치세력이다.

4. 뭉뚱그려 얘기하지 말자. 정확히 책임져야 할 사람을 구별하고 그에 대해 비판하자.

5. 자학하지 말자.

참고 있다가 쏘는 마지막 한 방은 쏘기 따라 대포가 될 수도 있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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