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대북제재-美독자제재 오해 소지 없게 한미워킹그룹 협의하자'는 해리스 거듭 무시 "美입장이면 언론으로 전했겠냐"
집권당이 北과 "해리스 조선총독" 막말비난 합창하더니...靑 내부선 "한미 워킹그룹 만든 게 최대 패착이라 생각" 말까지 나와
靑고위관계자 "文대통령 신년회견서 밝힌 北 개별관광도 결국은 '비핵화 틀' 안에서"...靑, 원래는 "제재의 틀" 준수 밝혀왔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 개별관광 강행 조짐을 두고 유엔 대북제재·미 독자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촉발할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에서 다루는 게 낫다고 지적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발언에 대해, 18일 청와대가 '미국이 공식입장이 아닐 것'이라는 취지로 거듭 부정하고 나섰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는 이날 오전 익명의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통화에서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미국의 입장이었다면 이를 언론을 통해 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형식을 문제 삼으며 "그런 부분이 미국의 견해인 것처럼 하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내놨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북한 개별관광 강행추진 방침을 두고 "추후 유엔이나 미국 독자 제재를 촉발시킬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대북) 낙관주의는 고무적"이라면서도 "낙관론을 행동에 옮길 때는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말해왔다"고 했다. 

'미북간 (북한 비핵화) 대화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핑계로 미국과의 협의 자체를 우회해 독단적인 대북 '퍼주기'를 정당화하려 든다는 우려를 낳았던, 문 대통령의 지난 14일 신년기자회견 발언 관련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희망하는 대북사업 관련, 유엔 대(對)북핵 경제제재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한미 정부는 지난 2018년 11월 '한미 워킹그룹' 출범에도 합의한 바 있어 해리스 대사는 '근거 있는' 지적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17일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침소봉대하는 한편 "남북협력과 관련된 부분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6일(미국 현지시간) 해리스 대사의 발언 관련 한미 워킹그룹 협의를 두고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오해가 안 생기도록 (대북 개별관광을) 할 수 있다"고 각세우기에 나섰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4선 중진 송영길 의원(인천 계양구을)은 해리스 대사를 "식민지 총독행세를 한다" "왜놈 총독"이라고 비방해 온 북한 김정은 정권 및 국내 종북단체들과 마찬가지로, 해리스 대사를 겨눠 "(일제 식민시대) 조선 총독이냐"고 공개비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언론 공개발언'이라는 이유로 당정청이 앞다퉈 거세게 반발해놓고도, 청와대는 하루 만에 '언론을 통한 발언이므로 미국 공식입장이 아닐 것'이라고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청와대는 사실상 '면피용'으로, "남북협력은 북미(미북)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할 수 있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연합뉴스를 통해 말했다. 고위관계자는 이같은 언급에 더불어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북한 개별관광 같은 구상도 결국은 '비핵화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17일(현지시간) 이른바 남북협력을 두고 "반드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보조를 맞춰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 동맹국인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를 두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같다"면서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한미 간 공조는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측은 '비핵화의 진전'을 대북사업의 전제조건으로 걸었고, 문재인 청와대는 모호한 '비핵화 틀'이라는 언급을 했을 뿐이다.

'비핵화 틀'이라는 표현은 청와대가 종전에 사용하던 '제재의 틀'과도 미묘하게 달라진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미북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지난해 4월 미국 방문에 나섰을 때 고위관계자발(發)로 "(미북간) 톱다운 방식과 제재의 틀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현지시간 4월10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발 '제재의 틀' 표현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15일 대일(對日)관계 관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정부"를 자칭하는 발언을 한 뒤로 자취를 감췄다. 

이도훈 본부장이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일부 외교 당국자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제재의 틀' 표현을 쓰고 있지만, 대북사업과 제재를 둘러싸고 당정청이 주한대사도 거침없이 공격할 만큼 한미관계가 험악해진 만큼 청와대의 언어에도 변화가 왔다는 지적이다.

한편 18일(한국시간) 조선일보는 남북 경협사업을 둘러싼 한·미 정부 갈등의 중심에는 지난 2018년 11월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이 있다며 "청와대와 통일부 등은 워킹그룹 회의를 열지 않고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거론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 하지만, 미국 정부는 워킹그룹을 통해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동안 한미 워킹그룹에서 남북 협력 사업의 제재 위반 여부를 논의하는 것에 대한 청와대 등의 반감은 더 커져왔다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지난해 9월 "지난해(2018년) 만든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이 추진하는 일을 미국에 일러바치고 사실상 미국에서 승인받는 거라 북한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사실을 지목했다. 특히 최근 한 정부 고위당국자도 사석에서 "워킹그룹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며, "청와대가 생각하는 최대 패착이 워킹그룹을 만든 것"이란 말도 나온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은 '과속방지턱' 격인 워킹그룹의 존속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고 해리스 대사의 16일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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