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 전공.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

이윤택, 그는 과연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당했는가?

여자 단원들은 밤마다 돌아가며 황토방이라는 별채로 호출 받아 수건으로 단장의 나체를 닦고 성기와 그 주변을 안마했다. 배우 김보리(가명)는 19세이던 2001년과 20세이던 2002년 두 번의 성 폭행을 당했다. 배우 김지현은 2005년에 임신했고, 혼자 조용히 낙태했다. 그보다 더 적나라한 묘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감히 옮길 수가 없다. 연극인 이윤택.

촛불 시위 때는 광화문 광장에 나가 연극 공연을 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 6월에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광화문 촛불혁명과 대선으로 우리나라 보수가 붕괴했다”고 말했다. 보수가 무너진 이유는 “막말하고 상식이 없는데다 너무 야만적이고 무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 시대는 인권이 키워드이며, 좌우를 아우르는 정의의 시대, 기본이 서는 시대, 민주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막상 성추행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변호사에게 전화해 자문을 구한 뒤, 시처럼, 연극대사처럼 사과문을 쓰고 기자회견 리허설까지 했다. 단원들은 “선생님 표정이 불쌍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낙태는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해서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행은 아니라는 사과 기자회견이 나왔다. 피해 여성은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이상한 아이라는 뒷말과 함께.

그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처음으로 문제 삼은 인물이었다. 2015년 1월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이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문화창작기금 희곡 부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찬조 연설을 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체부 자료에 의하면, 연희단거리패는 아르코에 탈락한 2015년에 ‘공연시장 활성화 지원사업’ 2900만원을 받았고, 2016년에는 지역대표 공연예술제 지원금 1 억 원을 받았다. 개인 차원에서도 국립극단 작품을 연출할 때마다 사례비 1500만원과 대관료 일부를 보조 받았다. 겨우 아르코 문화창작기금 하나만 탈락했는데, 이것을 블랙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이윤택이 신청하면 국가가 모든 것을 지원해야만 하는가?

게다가 박근혜 정부 초기(2013년 5월)에는 숭례문 복원 축하 공연 연출을 맡기도 했다. 그 자신이 너무 놀라워 당시 청와대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에게 “내가 문재인 지지 연설을 했는데 괜찮겠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김비서관이 기가 찬 듯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괜찮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함께 식사를 한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니 아무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이윤택 자신이 한겨례 신문에서 직접 밝힌 말이다.

블랙리스트이기는 커녕, 보수 정권에서 보수의 가치를 부정하는 문화계 인물에게 온갖 행사를 맡긴 것 자체가 오히려 놀랍다. 보수의 몰락은 어쩌면 이런 순진한 공정성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역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혜택과 막대한 지원을 다 누렸다. 그가 예술 감독 겸 이사장으로 있는 밀양 연극촌과 도요창작스튜디오는 지자체로부터 오랜 기간 상당한 규모의 예산 지원을 받았다. 밀양시는 1999년 밀양 연극촌이 개관할 때 부지 1만 6000㎡(5천평)의 폐교 건물을 무상으로 위탁했고, 연극촌 일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하는 데 무려 60여억 원을 지원했다. 김해시도 연희단거리패가 2009년부터 연습 공간으로 써 온 도요창작스튜디오를 무상 위탁으로 제공하고, 매년 강변축제 행사비와 공공요금 등 5000만원을 지원해 왔다. 스튜디오 인근에는 이윤택 소유의 다가구 빌라도 있다.

2016년 10월에는 서울 명륜동에도 30스튜디오 극장을 지었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30스튜디오와 부산가마골소극장은 단원들이 직접 노동을 해 만든 단원 모두의 소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적 명의는 어디까지나 이윤택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작년(2017년) 한 해 동안에는 여섯 차례에 걸쳐 총 4억46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허울 좋은 공동체

서울대 인류학과 권정은의 석사 논문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 : 연희단거리패의 의례로서의 연극과 자아의 재구성(2016)>은 이윤택과 그 거리패들의 이념을 잘 보여준다. 연구자가 2015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연희단거리패에 직접 참여하여 관찰한 내용을 기술한 이 논문은 연희단거리패의 사교(邪敎) 집단 같은 공동체적 성격, 다시 말해 전체주의적 성향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예술감독(이윤택)은 단원들이 개인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다 같이 밥을 먹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겼다고 한다. 단원들은 칸막이조차 없이 개방된 방에서 10-13명이 함께 생활했다. 단순히 방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빈 방들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방에서 단원들이 반드시 함께 생활해야 했다. 단원들에게 개인시간과 개인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사생활도 없고, 비밀도 없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원들은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요구할 수조차 없다. 공연도 같이 관람해야 했다. 해당 공연을 이미 봤다는 이유로 혼자 방에 들어가 쉬는 것은 개인행동이라고 따끔하게 경고를 받았다.

단원들의 개별성과 자유 의지의 표현은 완전히 억제되었다.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은 연희단 전체의 조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간주되었다. 연극촌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연구자의 질문에 ‘맨날 (사람들과) 붙어있는 것’이라고 대답한 단원도 있었다. 다른 단원은 이곳이 ‘공산주의’ 같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고참 단원들은 “연희단거리패는 따뜻하다. 서로 서로 챙겨준다”라는 말로 이 곳이 정 많고 의리 있는 단체라는 것을 끊임없이 부각시켰다.

이 모두가 창단자이며 예술감독인 이윤택의 이념이 구현된 것이었다. 그는 그 공동체에서 암묵적으로 아버지 역할에 비유되었다. 마치 아버지가 딸의 행실을 감시하듯 그는 단원들의 연애할 자유조차 박탈했다. 어느 커플이 서로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면 고참과 중상급 단원들이 그 커플에게 따끔하게 충고 했다. 연애라는 것은 둘 만의 ‘개인적 공간’인데 연극촌이라는 ‘공동체적 공간’에서 연애를 하는 것은 다른 단원들에게 ‘위화감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우 모범적인 한 커플의 예를 들었는데, 그 커플은 서로 손을 잡고 있다가도 다른 단원들이 오면 즉시 손을 놓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멀찍이 도망가곤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이윤택은 개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집단과 공동체를 찬양했다. 같이 사는 것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현 시대가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었다고 말하며, 점점 개인주의화하는 현 시대를 “최악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이런 세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세운 것이 연희단이라고 했다. 단지 예술을 하려고 세운 극단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면서 2차적으로 연극을 하는 극단이며, 연극을 하기 위해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우선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연극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개인을 넘어서는’ 예술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도 했다.

보수 이념의 우위성

정의니 인권이니 따뜻함이니 공동체니 온갖 좋은 말은 다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기의(記意)가 텅 비어있는 겉껍데기 기표(記表)일 뿐이었다. ‘개인화’니 ‘파편화’니 하는 단어들은 70년대에 유행했던 속류 루카치 이론을 연상시키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만 지도자 한 사람은 예외라는 공동체 형식은 라블레의 텔렘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그 어느 것도 이미 시대에 한참 뒤진 공산주의적 담론들이다.

연극에 대한 열정이라는 헛된 신기루를 좇아 자발적 노예가 되었던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동정하고 연민하고 분노하지만 왜 그들에게는 집단주의에 저항하여 자신을 지킬 강한 개인의식이 없었는지, 안타깝고도 착잡한 마음이다.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보수적 가치의 우위성을 새삼 깨달으며,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교육이 시급함을 느낀다.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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