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敵 영접논란 묵살, '국빈급 초월' 대우에 이어 비판 자초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의 지난 25일부터 2박3일간 방한 강행으로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국군 장병 유가족들이 연일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문재인(왼쪽) 정권이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직책을 들어 대화 파트너로 김영철을 맞이한 데 이어 대부분 공개 일정을 비밀리에 부치고, 김영철 측 입장을 '대신 전하는' 행태로 추가적인 비판을 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의 지난 25일부터 2박3일간 방한 강행으로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국군 장병 유가족들이 연일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문재인(왼쪽) 정권이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직책을 들어 대화 파트너로 김영철을 맞이한 데 이어 대부분 공개 일정을 비밀리에 부치고, 김영철 측 입장을 '대신 전하는' 행태로 추가적인 비판을 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북한의 대남(對南)도발 총책을 맡아온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비판 여론까지 묵살하고 한국에 들인 문재인 정권이 정작 김영철의 '대나무숲'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화에서 유래한 대나무숲은 누구든 익명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상징,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유행하는 문화다. 

문재인 정권은 김영철 등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북한 대표단의 방한 이래 이들의 행적을 사실상 전부 비밀에 부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1시간여 회동하고도 대화 내용은 '미-북 대화 용의'가 있다는 간접 전언 말고 공개된 게 거의 없다.

김영철이 문 대통령과 실제 대화하는 모습이나 그 내용도 공개된 게 없고, 핵·미사일 포기 문제 관련 북한의 입장을 '직접 표명'하는 일도 없이 청와대는 "대신 전해드립니다" 식의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김영철 방한 이틀을 앞둔 지난 23일 통일부는 설명자료를 내 그가 "현재 북한에서 남북 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책임있는 인물"이라고 방한 당위성을 내세웠다. 대남도발부서인 정찰총국의 장(長) 출신이자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도발·목함지뢰 도발의 주범이라는 논란을 무마하려는 주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25~27일의 김영철 방한 기간, 한국 측 당국자들과 구체적으로 어떤 협의를 했는지에 대해선 정부는 대부분 함구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김영철을 한국 땅에 데려와서 국민 모르게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고 중앙일보는 27일 전했다.

김영철이 한국 땅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담긴 사진조차 찾기가 어렵다. 지난 25일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당일 오후 8시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고 이동했던 장면 외에 공개된 현장도 없다. 일정도 최소한만, 그것도 대부분 사후에 공개했다. 

김영철은 직책상 한국 측 당국자들과 깊이 있는 협의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남북 관계의 특성상 비선(秘線) 접촉 또는 비공개 회담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으나, 그렇다면 주적 영접 파문까지 초래하며 '방한을 강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철은 25일 방한해 평창 모처에서 문 대통령과 1시간여 비밀리 만났는데, 청와대는 회동이 끝난 지 약 2시간30분 뒤에야 김영철 측이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를 연계해야 한다는 문재인 정권 논리에 공감했다며 "미국과의 대화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대신 전달'하는 데 그쳤다. 당일 저녁에는 조명균 장관을 비롯한 통일부가 김영철과 만찬을 가졌는데, '남북 간 화해협력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원론적 전언 이상으로 알려진 게 없다.

방한 이틀째인 26일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북한 대표단 숙소인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북측과 비공개 오찬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김영철이 "미국과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했다는 전언을 또 가져왔다. 김영철의 언급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대신 미국을 향해 언론플레이하느냐'는 의혹을 사는 지경이다. 미국에서는 핵 포기 의지를 전제하라는 '조건부 대화'를 재차 강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27일에도 정부는 김영철 등 북한 대표단과 호텔 공동조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오전 9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된 공동조찬에는 조 장관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외에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참석했고, 북측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 등 대표단 8명 전원이 참석했다. 역시 '남북간 협력과 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 정착' 등을 위해 노력해 나간다는 데 공감했다는 원론적 전언이 나오는 데 그쳤다. 북측 대표단은 이날 다시 경의선 육로로 북한에 귀환한다.

한편 문재인 정권은 25일 방한 초기 때무터 김영철에게 국빈급을 초월한 대우를 선보여 이해하기 어렵다는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다. 25일 경의선 육로로 국경을 막 넘어 CIQ에 당도한 김영철을 천해성 통일부 차관으로 추정되는 당국자가 고개를 조아리며 영접했다.

정부는 또 자유한국당이 하루 전부터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을 위해 통일대교 남단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을 감안, 김영철을 배려해 '지도에도 없는' 군 작전도로 전진교를 내어 줬다. 입경(入京) 후에는 초호화급인 워커힐 호텔에 투숙시켜주며 김영철이 이용 중일때는 경찰력으로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부 언론 기자들의 취재를 막고자 경찰 인력으로 '인간벽'을 쳐서 감금까지 한 것도 모자라, KTX 미(未)정차역인 경의중앙선 덕소역에 혈세를 들여 KTX 특별열차를 별도 편성해 일반열차 운행 지연마저 초래했다. 

평창 진부역 도착 50분 만에 문 대통령이 직접 김영철 등 북한 대표단 8명을 찾아가 1시간 여 회동하는 등 일련의 특급 비호와 대접을 선보이면서, 내놓고 '구멍'을 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빈 방문 때와도 대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영철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개막식 참석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가원수인 문 대통령을 '내려다 보며' 악수하는 결례를 드러냈다.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그랬듯 김영철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김영철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개막식 참석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가원수인 문 대통령을 '내려다 보며' 악수하는 결례를 드러냈다.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그랬듯 김영철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김영철은 당일 오후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한 것이 CIQ 통과에 이어 유이(維二)한 공개 행보였다. 이 자리에서 김영철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개막식 참석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가원수인 문 대통령을 '내려다 보며' 악수하는 결례를 드러냈다.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그랬듯 김영철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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