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시작된 이란 反정부 시위...사망한 솔레이마니의 초상화 포스터 찢고 ‘하메네이 퇴진’ 구호 등장
시위대, “우리의 적(敵)은 미국과 이란”...시위의 목적은 ‘이슬람 형제들’의 죽음에 ‘거짓말’을 한 이란 정부 규탄이지 ‘인권존중’ 아냐
시위 격화의 원인은 이란이 맞은 최악 경제 상황...“이란 정권은 오늘날의 위기 막을 수 없을 것”

이란의 반 정부 시위대가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는 살이자이며 그의 정부는 불법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영상=미국의소리 방송 캡처)

가셈 솔레이마니의 죽음으로 ‘반미’(反美) 분위기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인 이란의 분위기가 일변(一變)한 것은 지난 12일. 이란 군부가 적기(敵機)로 오인해 격추한 우크라이나 국적 여객기와 관련, 이란 정부의 뒤늦은 시인에 항의하는 일단의 시민들이 ‘반(反) 정부’ 슬로건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에 이란 정권의 붕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제기되고 있다.

미국 CNBC는 13일(미국 현지시간) 제임스 존스 전(前)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발언을 인용해 이란 정권의 붕괴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존스 전 보좌관은 “현재 이란 정권은 지난 1979년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래 가장 취약한 상황”이라며 “솔레이마니의 사망과 여객기 추락, 국민들의 불안이 결합하면서 붕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스 전 보좌관의 분석에 따르면 이처럼 시위가 격화된 원인은 ‘경제 상황의 악화’였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이란의 젊은이들 4명 가운데 1명이 일자리를 얻지 못 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현재 이란은 최악의 경제 상황에 놓여 있다.

이같은 이란의 경제 상황은 오랫동안 서방 국가들로부터 받아온 ‘경제 제재’ 때문이다. 이에 이란은 심각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2018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이란 핵협정)를 탈퇴한 이후 이란을 향한 제재를 강화했다. 이란 정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이란이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율(率)은 40%를 초과했으며 지난 해 이란의 경제 규모는 8% 이상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 정부의 제재는 이란의 국제 시장 접근을 단절시켜 경제를 약화시키고 있다”며 “밀수마저 막혀 지난해 12월 이란의 수출량은 ‘0’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당시 이란에서 일어난 ‘반 정부 시위’는 이란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50% 인상하고 구매 가능한 휘발유의 양을 월 60리터(ℓ)로 제한한 데 반발해 일어났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문제 고문들은 “이란의 가장 큰 위험은 이란 사람들”이라며 “이란 정권이 오늘날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같은 날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란의 반(反) 정부 시위 소식을 전하며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실탄과 최루탄을 사용하는 이란 당국에 맞서며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퇴진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의 해당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우리의 적(敵)은 미국이며, 바로 여기(이란)에도 있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의 이같은 구호는 이들의 ‘반 정부 시위’가 ‘인권존중’이라든지 ‘자유세계의 실현’ 등의 보편적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펜앤드마이크는 13일 관련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국적 여객기 격추 사건과 관련해 이란 시민들은 해당 여객기의 격추로 인해 희생된 ‘이슬람 형제들’의 죽음에 ‘거짓말’을 한 이란 정부를 규탄하고 있는 것일 뿐, ‘인권존중’이라는 보편성에 의거해 이란 정부를 규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대(對) 국민 담화’를 통해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 국면이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이란 국내의 정세 악화가 중동 지역의 위기 상황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지난 12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시작된 ‘반 정부 시위’는 격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란 경찰이 실탄과 최루탄을 사용해 ‘평화적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에 향해서 강경 진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미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란 경찰 당국의 진압 장면이 담긴 영상들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시위대는 또 지난 3일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솔레이마니의 초상화 포스터를 찢기도 했으며, 그간 이란에서 금기시돼 온 하메네이 등 이슬람 시아파 법학자들의 지배 체제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도 이어졌다.

테헤란의 기자협회 회원들은 “정부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며 이란 당국에 사죄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란 정부가 자행하는 ‘정보 은폐’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등에서 근무해 온 복수의 언론인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직하기도 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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