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괴물' 고은의 충격적 性도착행태 직접 폭로
최영미 시인, '괴물' 고은의 충격적 性도착행태 직접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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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술집에 누워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 주무르면서 여성시인들에게 '여기 좀 만져달라'고 했다"
동아일보에 보낸 '고발장'에서 직접 목격한 '성적 난행' 전해
복수의 문학계 인사들 "고은,女대학원생 성추행하며 신체 주요부위 노출"
최영미 시인(연합뉴스)
최영미 시인(연합뉴스)

좌파 문학인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고은 시인(85)의 성추문을 처음 폭로했던 최영미 시인(57)이 1993년경 서울의 한 술집에서 직접 목격한 고은의 충격적인 성추행 행태를 27일 오후 동아일보를 통해 공개했다.  

동아닷컴에 따르면 최 시인은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며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에서 목격했던 고은의 충격적인 성적 일탈행위를 폭로했다.

최 시인은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와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천정을 보고 누운 그가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며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이어 "'니들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며 "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고 고백했다.

최 시인은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묻고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라고 반문했다.

동아일보는 앞서 이날 오전 복수의 문학계 인사 증언을 토대로 고은이 불과 10년 전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20대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고도 보도했다. 

고은 시인(사진=연합뉴스)
고은 시인(사진=연합뉴스)

문인 A씨는 지난 2008년 4월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고은이 뒤풀이 자리에서 옆에 앉은 20대 여성 대학원의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부위를 만졌다고 밝혔다. 술에 취한 고 씨는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까지 노출했다고 전해진다. A씨는 “그는 이(문단)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 추태를 보고도 제지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꼈다”고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또한 50대 문인 B씨에 따르면 고은은 자신의 시집 출판 계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소 출판사 여직원을 성추행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2000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일어났다. 고 씨는 여직원의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일부를 더듬었지만 당시에도 B씨와 출판사 대표 등 함께 있던 사람들은 고은의 영향력에 감히 항거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B씨는 “당시 출판 계약이 잘못될까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당시 그저 자리를 피해 눈을 감아버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라며 “그 후로 나는 고은의 시를 읽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인들은 고은의 성추행을 보고도 어쩔 수 없었던 심정을 털어놨다. 고 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이며 매년 노벨상시기마다 언론에서 아낌없이 띄워지며, 문단 내에 확고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러한 그의 위상 탓에 수십 년간 이어온 추태에 대해서도 ‘시인의 기행’으로 포장되며,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고은은 지난해 3월 16일 SBS 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문단내 성폭력 이슈는 “참 슬픈 일”이라며 “현대 초기의 문인들은 사회적인 일탈성이 있었으나, 이제는 문인들도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강하게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으며,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시인들과 시집 ‘천만 촛불바다’(실천문학사·2017)를 출간하는 등 따뜻한 이미지로 유명세를 탔다. '거짓 명성'을 누리던 고은이 말년에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다음은 최영미 시인이 27일 동아일보에 공개한 고은 시인의 충격적인 성추행 목격담이다.

최영미 시인 원고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시인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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