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보수통합 말은 좋은데 황교안 대표 헤게모니까지 '네다바이' 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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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1.13 13:32:23
  • 최종수정 2020.01.13 22:1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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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론적 정체성 없이 ‘이념을 떠난 중도실용’만 가지고 모여라 하는건 뭐하자는 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념을 떠나자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실용’이라 한다면, 이건 보수의 해체이자 부정이지 통합 아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어찌 됐던 4. 15 총선에서 이기기는 해야 하는데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사람은 먹어야 산다. 추우면 털옷을 입어야 하고, 더우면 반팔 옷을 입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표 계산 상 보수는 통합돼야 한다. 이 말에 “아닌데, 보수는 분열해야 하는데...”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보수는 보수 나름의 일정하고 분명한 가치론적 정체성을 가지고 모여야지, 보수라는 것의 근본이 뭔지 본질이 뭔지도 분명히 하지 않는 채 그저 손쉬운 대로 ‘이념을 떠난 중도실용’ 운운만 가지고 모여라 하는 건, 그렇게 해서 “뭐하자는 건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보수는 현 시점에선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의 이유’ 즉 자유주의 가치관, 철학, 세계관, 정책을 소위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변혁’으로부터 수호하고 복원시키고 재생시키자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이 이념을 떠나자고 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실용’이라 한다면, 이건 보수의 해체이자 부정이지 통합이 아니다. 길게 논의할 시간은 없지만 단 며칠이라도 따질 건 따져봐야 한다.

중국의 덩샤오핑도 ‘실용’을 주장해 대성했다. 그렇다고 그와 중국 공산당이 공산주의 이념을 떠났던가? 천만에다. 요즘위 시진핑 중공을 보면 알 일이다. 베트남 공산당도 개혁(도이모이)를 내세워 시장경제로 가고 있지만 그들은 이런 말도 반드시 곁들인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유자본주의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는 몽상조차 하지 말라”고. 그런데 한국 야권에서는 뭐? “이념을 떠나서 어쩌고 어떻다”고? 이념을 왜 꼭 추상적 신기루로만 치는가?  

이념이라는 건 공리공담이 아니다. 이념을 공리공담으로 만든 사례도 물론 있다. 조선조 때의 주자학이 그러했다. 그러나 국가의 근본을 어떻게 짜고 운영을 어떻게 한다고 하는 데 대한 가장 원칙적인 노선이란 의미의 이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보수의 전통적인 정책에서 나아가 보다 ‘전향적인(이게 뭔지 필자는 잘 모르지만)’ 복지-젠더-노동 정책을 가미한 보수로 가자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고 “이념을 떠나 중도실용으로 가자”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렇게 ‘전향적’으로 나가는 것도 또 다른 이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도실용’ 운운이 결코 해당할 수 없는 분야도 많다. 예컨대 “공수처냐 아니냐?” “남-북 9. 12 군사합의냐 아니냐?” “평양의 야만적 신정(神政) 체제냐 아니냐?” “히틀러의 아우슈비츠냐 아니냐?‘ “스탈린의 수용소 군도냐 아니냐 ” 같은 문제에서 ’중도-중간‘ 또는 ’이도 저도 아닌‘이 있을 수 있는가? 없다. 우리 국내적으로도 이런 사항은 적잖이 산재해 있다.

매사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매사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럼에도 일부 논자들은 매사 그렇게 하는 게 마치 공자님이 말씀하신 중용인 양, 그리고 그걸 자기들만이 특허나 낸 것처럼 입에 중도를 달고 다닌다. 그러나 실은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건 중용이 아니라 자막집중(子莫執中)이란 것이다. 공자님 제자 자막이 그랬대서 생긴 말이다.

어떻든, 어느 날 갑자기 보수통합이란 말이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웬 난데없이 구 MB계가(필자는 계파에 얽매이진 않는다) 툭 튀어나와 황교안 자유한국당으로부터 보수통합 움직임의 헤게모니를 ‘네다바이’ 해가게끔 됐는지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필자 나이의 인생으로서 이런 문제에 너무 깊히 개입하는 게 괜찮을진 의문이다. 알아서들 하겠지. 잘 되겠지. 다만, 의자에 비스듬히 졸고 앉았다가 갑자기 “박형준 통추위원장이 중도실용주의를...” 어쩌고 하는 방송 멘트가 귓가에 휙 스치고 지나기에 “뭐라?” 하고 눈을 떠 물었을 뿐이다. 그 '중도실용주의'와 청와대 뒷산의 '아침이슬'  때문에 MB 시대가 NL 운동권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를 허비한 게 아쉬웠던 모양인가? 하긴 꿩 잡는 게 매라고, 어찌 됐던 4. 15 총선에서 이기면 되겠지만... 

류근일(언론인, 前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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