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수도권 인구 50%'에 대한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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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1.13 11:36:43
  • 최종수정 2020.01.1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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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거대 도시로 혁신 드라이브, 한국은 이념적 균형론으로 나라 들쑤셔
총선 앞두고 ‘아니면 말고’ 정책 남발한 포퓰리즘 정부 또 무슨 일 벌일지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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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로 수도권 인구가 전체 한국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주민등록 통계가 나오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체 50.002%가 수도권 인구라고 한다. 일부 단체들은 ‘국가 비상사태’라며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수도권 과밀과 집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 집중은 나쁘고 분산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구시대적이다.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도시화 현상이 지구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의 도시 인구는 점점 늘어나 2010년에 전체의 50%를 돌파했으며 현재는 55%인 42억 명이 도시에 살고 있다. 2050년에는 7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화가 확산될수록 ‘스타 도시’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글로벌 기업과 돈, 인재들이 몰리고 높은 경제적 가치가 창출되는 곳이다. 지금 단계에선 뉴욕, 도쿄, 런던이 여기에 속한다. 유럽 중국 중동의 여러 도시들이 세 도시를 따라잡기 위해 맹추격 중이다.

뉴욕에는 195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도쿄 수도권에는 3700만 명이 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국토의 3% 면적에 해당하는 도시에 미국 인구의 79%인 2억 4300만 명이 산다. 한국의 수도권 과밀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인구 절반인 2500만 명이 사는 것은 재앙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성공적인 도시들과 비교하면 이런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한국에서 수도권 집중에 ‘극약 처방’을 내린 정권은 현 정권과 맥을 같이 하는 노무현 정권이었다. 세종시를 만들고 10개 시도에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조성해 공공기관을 강제 이주시켰다. 혁신도시가 첫 삽을 뜬 것이 2007년, 세종시가 출범한 게 2012년으로 각각 13년과 8년이 지났으므로 그 성과를 점검해볼 때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정책은 실패였다. 무엇보다 현 수도권 인구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늘어난 것이 결정적 근거다. 노무현 정부의 간판 정책이었던 혁신도시의 기업 입주율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분양 면적의 35.7%에 그치고 있다. 3분의 2가 비어 있다는 얘기다. 입주 기업 중에서 수도권에서 내려온 기업은 15.6%에 불과하고 같은 시도 안에서 이전한 기업들이 70%를 차지한다. 수도권 분산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업들은 생산 시설의 지방 이전보다는 해외 이전을 택했다. 시작한 지 13년이 경과하도록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기대난망이다.

세종시의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세종시 출범 이후인 2014년부터 2018년 사이에 인근 대전에서만 8만 명이 세종시로 빠져나간 것이다. 지역 내에서 더 나은 주거 여건을 찾아가는 행렬이었다. 대전 구도심은 활력을 잃었다. 충청남도에서도 유출이 발생했다. 공주 시내도 썰렁해졌다. 공무원들은 세종시로 갔으나 수도권 분산 측면에서는 효과가 미미했다. 

일각에서는 더 강력한 정책을 펴고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달리 말하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잘 안 먹히니까 돈을 더 풀어서 끝장을 봐야 한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수도권 분산과 관련해 남은 수단은 서울에 있는 나머지 공공기관들을 또 한 번 강제 이전시키는 정도다. 이건 일종의 분풀이에 불과하다. 조금 침착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에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존재한다. 지금은 장점에 더 무게중심이 실리는 시대다. ‘도시의 승리’를 저술한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그 장점에 대해 ‘인접성의 가치’라는 말로 요약한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면 협력적 생산 활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똑똑한 아이디어들이 서로 자극을 받으며 또 다른 똑똑한 아이디어를 낳는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같이 혁신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도시가 혁신을 얻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단언한다. 역사적인 예로 고대 그리스에서 서양문명이 태동한 장소는 아테네라는 도시였고, 중세시대 르네상스의 혁신이 이뤄진 것은 피렌체의 거리였으며, 산업혁명은 영국의 버밍엄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쪽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표를 모으기 위한 ‘노무현 시즌 2’ 정책들을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으로 경기 부양은 하지 않는다고 번번이 떠들었던 사람들이 4.15 총선을 앞두고 25조 원짜리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과 10조 원짜리 생활 IOC 사업을 거침없이 내놓았다. 실현 가능성도 의문스러운 ‘아니면 말고’ 식 정책이다. 국민들은 조 단위 숫자 감각에도 둔감해진 나머지 별다른 경각심도 갖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3기 신도시처럼 수도권 집중을 더 심화시킬 모순적인 정책도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의 2기 신도시 사업 때 인근 강원도에서만 6만7000명의 인구가 신도시 쪽으로 빠져나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과 강원도’ 강원연구원). 3기 신도시는 새로운 블랙홀이 될 것이다. 국가예산 낭비도 큰 문제이지만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국토 개발이 초래할 결과가 더 두렵다.

그러는 사이 서울 등 국내 7대 광역시의 종합경쟁력은 갈수록 추락해 세계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에 서울의 경쟁력 순위는 2010년 세계 59위에서 2015년 74위로 밀려났고 2030년에는 185위로 떨어진다는 우울한 예측이다. 울산은 2015년 123위에서 2030년 225위로 하락하며, 대전 인천 광주 부산 대구는 비교 대상 325개 세계 도시 가운데 최하위 그룹인 250위 이하로 추락할 것으로 분석된다(‘우리나라 7대 광역시와 세계 770개 도시 경쟁력 비교 분석’ 조재호).

국가 균형 발전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년 단위의 국토종합계획 같은 장기적인 밑그림에 맞춰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균형 발전을 추구해 가는 길이다. 아울러 경제 활성화는 지역 발전에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남의 것 빼앗기 등 정치적 이념적 논리에 이 문제가 오염되고 왜곡되면 발전은커녕 나라 전체가 동반 침몰하는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걱정스러운 것은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맞아 이 정권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뒷감당을 모두 떠맡아야 할 젊은 세대들의 무거운 어깨가 자꾸 눈에 밟힌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前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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