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대한민국, 기어코 비극의 역사를 열 것인가
[오정근 칼럼] 대한민국, 기어코 비극의 역사를 열 것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0년 전, 하루 세끼 해결하지 못했던 나라...1인당 소득 3만 달러로 올라서
최근 들어선 국내기업들의 해외 탈출, 국내주력산업 붕괴 등 좌파사회주의 정책으로 미래 알 수없어
'자유'를 위협하고 '평등' 추구했던 국가들, 역사적으로 모두 몰락...정부가 자원배분 개입하면 오히려 불평등해져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꽃피워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의 역사가 반만년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이 먹고 살만한 정도의 경제적 풍요를 구가한 시기는 불과 지난 4~50여 년 정도에 불과하다. 서구와 같은 산업화를 하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 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세끼 호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가구가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1970년대 초반 까지는 흥남비료공장 수풍발전소 등 일제가 건설한 공업시설과 자원이 많았던 북한에 비해 남한은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낮아서 남북 체제논쟁에서  어려움을 겪기 까지 하였다. 바로 이 무렵에 등장했던 것이 북한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른바 386 주사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남한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자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1968년)과 문세광의 박 대통령 저격사건(1974년)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중화학공업정책과 쌀보리 통일벼 등 식량증산 정책에 힘입어 소득수준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반만년 국민들을 괴롭혀 온 보릿고개라는 말도 사라졌다. 세계는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하기 시작하고 한세대 만에 기적같이 빈곤을 퇴치한 한국의 경험을 배우기 위한 후진국의 발길도 이어졌다. 여세를 몰아 1986년에는 경상수지도 사상처음 흑자로 돌아서고 1988년 올림픽도 개최하면서 명실공히 중진국대열로 올라섰다. 이제 한국경제는 바야흐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 대로 올라서서 선진국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던 한국경제가 속절없이 붕괴되고 있다. 일본형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음은 물론 심지어 남유럽이나 남미 국가들과 같은 만성적 위기국가로 추락할 우려마저도 이제는 새로운 지적이 아닐 정도다. 미국 일본이 전후 최장 호황을 기록하는 등 세계경제 호황 속에서도 한국경제는 나홀로 추락을 지속하고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연간 5백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해외탈출러시이고 국내주력산업은 붕괴되어 산업공단에는 빈공장이 즐비하고 가동률은 60%대 까지 하락하고 있다. 자영업 영세기업도 부도행렬이 이어지면서 웬만한 상가에는 권리금마저 포기한 빈가계가 속출하고 있다. 일자리참사가 이어지고 그 결과 중산층도 붕괴되고 가계는 빚더미에 오르는 등 민생도 파탄나고 있다. 원전 4대강보 해외자원 등 국가경제의 기본인프라마저 파괴되고 있다. 과도한 복지포풀리즘으로 국가부채는 급증해 재정위기를 앞당기고 있고 무조건 앞당겨 쓰고 보는 각종 연기금의 고갈시기도 바로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경제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참담하게 붕괴되고 있다. 두 말 필요없이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반기업친노조, 큰 정부 정책 등 좌파사회주의 경제정책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좌파사회주의 경제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인류는 역사적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문제로 싸워왔다. 특히 기업가와 노동자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산업혁명이후 자유와 평등은 좌우이념대립으로 격화되면서 핵심 정치경제문제로 대두되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의지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다. 홉스나 로크와 같은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이 이를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이라고 주창해 미국의 독립 선언이나 프랑스 인권 선언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으며 오늘날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12조에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여 국민들의 기본적인 자유권을 천명하고 있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가치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11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여 평등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의로워 보이는 평등이 정치경제적으로 자유와 배치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데서 문제가 잉태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처럼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모두 평등하면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처럼 모두가 평등하면서도 모두가 자유로운 이상적인 사회를 그린 것이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주장이다. 핵심적인 주장이 불평등의 기원이 사유재산이므로 생산수단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발전시켜 맑스(Karl Marx)는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명명한 『자본론』 (1867년)을 출간하게 된다. 그 후 1917년에 레닌, 트로츠키에 의해 러시아 공산혁명이 일어나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되고 중국에서도 1949년 공산정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는 동유럽 쿠바 북한 등 전세계적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핵심은 모두가 평등하게 살기 위해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것이다. 혁명 후 가장 먼저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집단노동을 하고 모두 똑 같이 배급으로 생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그렸던 이상향과는 달리 개인의 자유도 사라졌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모든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집단농장인 인민공사를 2만4천개 설치해 평균 8천 명, 많은 곳에서는 최대 2만 여명을 수용해 공산주의 이상사회로 가는 길을 단축한다는 명분으로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대약진운동’을 실시했다. 그러나 보고되는 생산량은 증가하는데도 실제 생산량은 줄어들어 기근이 확산되어 3~4천만 명이 대약진운동 기간 중에 아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열심히 일한 결과 창출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평등은 유지되었나. 그렇지 않다.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생산을 위한 자원배분과 생산물의 분배를 시장이 아닌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에는 인간의 속성상 그 권한을 가진 기구나 사람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에서 당간부들과 주변인사들은 보통 인민들과 차원이 다른 부를 향유하면서 인민들에게만 평등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독점하고 일방적인 선전선동을 극대화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독재체제가 필요하게 된다. 대부분 공산국가들이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연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평등을 주장하며 세워진 공산주의 국가가 가장 불평등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생산을 위한 자원배분과 생산물의 분배를 시장이 아닌 정부가 개입하면서 무소불위의 독점적인 권력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도 생산물의 사유가 인정되지 않아서 생산성이 오를 수가 없다. 결국 국가경제는 붕괴하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70여년이 지난 1989년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붕괴, 1990년 구소련의 붕괴, 심지어 정치적으로는 공산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1978년, 베트남은 1986년에 개혁개방으로 경제는 시장경제요소를 대거 도입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좌우 이념논쟁은 끝났다는 취지의 『역사의 종언』(1989년)이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에 의해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쿠바도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 지구상에서 북한 정도만이 개혁개방도 하지 않고 공산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반면 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자유를 기본가치로 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창달해 오고 있는 미국경제는 1인당 소득 6만 달러대에도 불구하고 2010년 이후 잠재성장률이 올라가고 있다는 놀라운 보고들이 잇다르고 있다. 이는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잠재성장률이 하락해 온 추세를 역전시키는 것으로 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자유를 기본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얼마나 강력하게 경제적 자유를 증대시켜 주고 있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실업률도 사상 최저수준으로 하락하고 사람을 구하는 구인율은 사상최고로 오르면서 경제적 평등도 향상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공산주의에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꽃피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이제 선진국을 비릇한 많은 국가들은 이념논쟁은 접고 새로운 산업혁명에서 앞서가기 위해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매진해도 부족한 때에 철지난 좌우 논쟁으로 수십만 인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대한민국에서 시대착오적인 좌파사회주의 정책이 대한민국 경제를 붕괴시키고 있으니 40년 넘게 경제학을 연구해 온 경제학자로서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한국경제가 50년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기업들의 무더기 신용강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수출의 1/4를 보내고 있는 중국경제도 위기경고등이 나오고 있는 때에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미 한일관계는 때 아닌 이념논쟁으로 경색되면서 한미 한일 통화스왑 등 위기돌파구 마저 막히고 있다. 무차별적인 복지포퓰리즘으로 마지막 위기방파제인 재정건전성도 훼손되고 있다. 세계가 배우려던 ‘한강의 기적’에서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위기의 그림자 마저 엄습해 오고 있다.

경제가 이처럼 붕괴되며 민생의 비명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 때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기조의 대반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동형비례제와 같은 선거룰 개편으로 장기집권을 노리고 공수처와 같은 대통령의 직속의 무소불위 수사기구를 설치해 반대세력에 재갈을 물리며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자고 하는 것인가. 북한은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어 경제를 튼튼히 하고 안보를 강화하는 부국강병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가 검정된 좌파사회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자는 것인가. 2020년 대한민국은 중대한 고비에 직면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복원으로 미래세대에 희망을 주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대반전이 일어나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선진국을 바라보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더 이상 피비린내 나는 좌우 이념대립의 비극이 재현되어서는 안된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