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새해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이인호 칼럼] 새해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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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은 주권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빼앗겨 버린 상태
자유의 절대가치 재확인, 사회적 힘으로서의 양심과 이성에 대한 신뢰, 역사의 심판에 기대
어쩌면 이미 정치적으로 고아의 신세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 각오해야
자유와 평등이 받쳐주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황금률 지켜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도 민족도, 인간다운 삶도 없다
이인호 객원칼럼니스트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대개 비슷한 듯하다. 지난해 보다는 새해가 어느 모로나 좀 더 좋은 운을 가져다 주기를 기대하며 희망을 걸어 보는 것이다. 21세기의 첫 번째 10년대를 마감하며 21세기 두 번째 10년대에 진입하는 우리에게 운이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간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족의 경우가 150건이 넘고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자살을 하거나 자살을 “당했다고” 의심 되는 사건들이 제법 발생했으니 획기적인 변화 없이 이대로 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살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 아니라 무슨 일이 어떻게 닥칠까 무서워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에 대한 갈구는 절실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데 대한 희망적 예측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특히 해를 넘기기 전에 여당과 군소야당들간의 야합으로 밀어붙인 요상한 선거와 공수처법은 이제 자유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는 조종이 울렸으며 집권세력에게서 정책이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불가능 할 것이라는 비관적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문재인 체제 출발 직후부터 바로 착수한 국가권력의 사유화는 거의 완성단계에 온 것이다. 불과 2년 반 사이 청와대 근무자들의 소득이 평균 3억원씩 증가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사적 조직 같이 패거리 정치를 하는 정권 편에 서서 각종의 혜택을 엄청나게 누리는 극소수와 문재인에게 설사 표를 던졌었다 하더라고 실제로는 그의 정책의 희생자가 되어 피눈물 나게 일을 해도 결국 점점 더 가혹해지는 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거나 아예 일자리를 상실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각기 거리 집회에 매달린다.

일찍부터 무지와 기회주의에 찌들어 쉽게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과 과거 민주화투사임을 자처했으면서도 이제는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제도를 하나 하나 파괴하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집권여당과 그 지지 세력은 말 할 것도 없고 여, 야 할 것 없이 구 정치권 전반이 상식이나 이성, 양심 등의 낱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단지 “권력”과 “돈,” 그리고 그것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 되는 “표” 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하다. 정치인으로 자기들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고 자기들은 어떤 자격이 있기에 이 나라 국민을 대표할 권리를 가지며 하물며 “영구 집권” 까지 기도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생각조차 해 보지 않는 듯하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등 이미 그 역기능이 환히 들어낸 정책을 계속 고집하고 반미, 반일 종족주의가 마치 진정한 독립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장이나 되는 듯 단골 메뉴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북한이나 중국, 심지어는 일본의 먹이 감으로 내 바치는 ‘반역’죄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은 전혀 생각지 못한다. 역사는 문재인 시대를 어떻게 기록 할지, 자기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유산은 과연 영예로운 것일지에 관해 잠시라도 생각해 본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부터 지금까지 국회에서 그들이 벌여온 자살적 행위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희망을 버려야 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삶은 계속될 것이며 국민이 주인인 것이 들어나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 곧 나라는 망해도 자신들의 권력과 영달만 챙기면 된다는 듯 행동하는 정치인들의 손에 자기들의 소중한 주권이 짓밟히고 있는 것을 깨닫는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자기 집을 지키려는 사람은 아무리 남이 저지른 사고였다 하더라도 해도 자기 집을 제대로 고치는 책임은 스스로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주권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거의 다 빼앗겨 버린 상태에다. 100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나와 한 목소리로 아우성을 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거나 오히려 역공을 펴는 것이 현 집권세력이다. 각종의 법적, 도의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을 기어코 법무장관으로 임명할 때 이 정권의 부도덕한 민낯은 들어났고 놀란 국민들이 아우성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그 후 달라진 것은 없다. 집권세력이 더욱 표독해 졌을 뿐이다. 윤석렬 검찰 총장이 지금 유일하게 버티고 있지만 추미애 장관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공수처법 통과로 검찰을 무력화 시켜 정권의 비리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만드는 것도 부족해서 사법부에 대한 임명권 까지도 '인민권력'에 위임하려는 법안까지 상정하려 한다니 문재인 세력의 탐, 진, 치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탐진치(貪瞋癡)의 극단을 들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이 민주주의의 형식논리에 속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찬탈 당했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 아니 회복의 불가피성을 말 해준다. 그와 동시에 자유시민으로서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무기가 무엇인가도 분명히 말해 준다.

그 무기란 다름 아닌 자유의 절대가치에 대한 재확인과 사회적 힘으로서의 양심과 이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역사의 심판에 대한 기대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이미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지니고 있지만 현재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포진 되어 있는 현재의 좌파 전체주의적 여권 핵심세력과 그들에게 기생하고 있는 일부 과거 민주화 투사들은 상실한지 오래인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 보수정권 시절에 진보로 분류되었던 인사들 가운데서도 진정한 의미에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알고 아끼며 이성과 양심을 관리해 온 인사들은 문재인 정권의 전체주의적 성향을 꿰뚫어 보고 그 위험에 대한 경고와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동안 문재인 집권세력이 발휘해 온 파괴력이 너무도 컸고 현재 그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권력의 도구들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판세를 뒤집고 새해를 기해서 길운을 탄 듯 우리가 순항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 뿐더러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새로 태어나 독립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자유민주 공화국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무시하며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대통령으로 선출한 우리 국민도 설사 그것이 오해에서 나온 소행이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정치적 무지와 무책임에 상응하는 쓰라린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제 코앞으로 닥쳐 온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재인 정권이 저지를 수 있는 폐해를 최소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내란 같은 끔찍한 과정을 치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다시 바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일 뿐 약속은 아니다. 그 뒤로도 산 넘어 산을 넘고, 강 건너 강을 건너는 투쟁과 인고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겨우 우리가 한때 차지했던 평화와 번영의 고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인내심 있는 노력의 가시밭길을 건너지 않고 자유를 회복하는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함정에 빠지는 결과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을 김정일 또는 시진핑으로 대치 할 가능성 같은 것 말이다. 장기집권을 꾀하는 자는 스스로 망하게 되어 있다. 미국의 옛 서부할극에서 보듯이 못된 짓으로 승리를 거둔 세력은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멸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공멸이 아니라 공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인내심이 요청되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각오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모두는 어쩌면 이미 정치적으로 고아의 신세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의 집단이익을 챙기는 테두리 역할을 하기위해 부모 같이 헌신할 정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붕이 없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끼리 부터 서로서로를 챙기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해서는 안 될 짓은 하지 않는 다는 각오를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습성을 기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서 민족 전체가 다시 이민족의 노예 같은 처지로 전락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 할 수는 없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 내야 할 정신적 무기는 황금률 이외에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나와 남의 처지를 바꿔 생각하며 느낄 줄 알고,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부과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기독교, 유교 할 것 없이 문명사회에서는 어디에서도 공통으로 만날 수 있는 가르침이다. 그것이 존중되지 않고는 어떤 인간관계, 사회관계도 원만하게 운영되고 유지 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중심’을 항상 외치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이 황금률에 대한 이해나 존중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정부는 정부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라는 테두리의 보호가 없을 때 일수록, 예를 들어 6.25 동란이나 제주 4.3 사건 때처럼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운 싸움의 난장판이 벌어졌을 때 가장 마지막 까지 우리가 기대를 걸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는 우리가 다 같은 인간임을 서로 상기함으로써 파괴와 학살의 규모와 그것이 나을 후유증을 최소화 하는 일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일 뿐 도덕이 아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 두 개의 기둥으로 떠 받쳐지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황금률이 잊혀진다면 그것은 어떤 독재체제 보다도 더 흉폭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다 조국 일가처럼 행동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조국 지키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새해에 길운이 든다는 것은 바로 우리 국민과 위정자들 사이에서 이 황금률에 대한 의식이 다시 살아남으로써 정치나 이념에 상관없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지금보다 좀 더 넓어지고 길어지지 결코 줄지는 않는 것이 아닐까 한다. 황금률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는 민주주의도 민족도, 인간다운 삶도 없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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