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힘’ 믿던 우파 세력, ‘힘의 논리’로 상대편 말살하는 좌파 파시즘 세력에 밀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지난 3년간 완전히 붕괴...선거법과 공수처 날치기 무력 통과
올해 총선은 좌파의 ‘힘의 논리’ 이겨낼 우파의 ‘자유의 힘’ 증명할 싸움 될 것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도대체 시간은 흘러나 가는 것인가 하던 세월은 그래도 흘러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밝았다. 자유 시민들의 새해 덕담 속에서 흐르는 울분과 분노는 새해가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우리가 믿어왔던 그리고 옳다는 것이 증명됐던 가치들이 전체주의 파시즘 세력들에 의해서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 가는 것을 목도해왔다. 2019년 말은 그 절정이었다. 현 집권세력은 헌법을 바꿔 전체주의로 가려던 헌법 개정 시도가 불발되자, 헌법기관의 구성 절차인 선거법을 바꿨다. 헌법을 무력화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법이 아닌 오직 ‘총통’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공수처법도 국민을 속이고 무력으로 통과시켰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타협과 양보조차 없었다.

여당의 밀어붙이기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지만, 자유 시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대상이 하나같이 전부 국체를 공격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간 소위 ‘보수’세력은 여당 갑질을 한 적은 있어도 반대편을 영원히 말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 선을 넘는다면 스스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은 논리에 의해서만 뒷받침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심지어 ‘보수’세력은 스스로 소위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어서 소수세력이 버틸 수 있는 안전판까지 마련해줬다. 그것이 자신들이 소수가 됐을 경우에 안전판이 될 거라는 ‘깜냥 안 되는 사고’의 발로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저변에는 역시 문자 쪼가리만 만들어 놓으면 그게 힘이라는 생각이 바탕이었다.

오류였다.

이것은 생각이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유 민주주의라는 국체와 경기의 룰(rule)을 공유하는 집단 속에서나 기능한다는 것을 우리는 착각했다. 상대는 헌법 위에 힘이 있다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한 세력이었다. 즉 힘이 논리를 만드는 것이지 논리가 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상대는 법에 따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은 목적을 위해 기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내재적 신념을 가진 세력이었다.

좀 더 먹물스럽게 얘기한다면, 자유민주주의자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국민이 원해도 독재는 할 수 없다’라는 내재적 한계이론이 이제 대한민국에서 거의 사라졌다. 사실은 우리가 애써 외면했을 뿐이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광우병 난동, 민노총으로 대표되는 시위세력들이 힘의 논리로 계속 밀어붙여 왔을 때 번번이 그 힘의 논리를 받아주었다. 개인이 범법을 저지르면 일벌백계 되나, 힘의 논리를 가지고 밀어붙이면 타협을 해주었다.

국민은 끊임없이 학습했다. 민중이 원하면 법을 바꿀 수 있고, 대한민국은 법으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디서든 ‘힘의 논리’가 ‘논리의 힘’을 압도한다는 것을 말이다.

옳고 그름이 드러나면, 예를 들어 조국 사태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태 등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범죄 의혹이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 국민은 옳은 쪽으로 생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자유 시민들의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는다.

역시 오류였다.

‘힘의 논리’가 ‘논리의 힘’을 앞선다는 것을 오랫동안 학습한 국민은 ‘힘의 논리’를 보고 뒤따르지 ‘논리의 힘’을 보고 따를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시민들은 아쉽게도 여전히 관성에 젖어있다. ‘논리의 힘’이 작동하는 세계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를 ‘힘’으로 제압한 다음의 문제이고 모든 세계 자유국가가 이 기본 전제를 달성한 후에 운용되고 있음에도, 그 전제가 무너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논리의 힘’이 작동된다고 착각한다.

여전히 “이랬어야해, 저랬어야 해”라고 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묻는다. “도대체 이렇게 하면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을 할 것인가요. 이렇게 하면 저렇게 가게 하는 그 힘은 누가 갖고 있나요? 그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막무가내로 거부하면 그다음 방법은 무엇인가요?”

2016 총선의 결과는 소위 ‘보수’세력이 삽질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이었다. 단 1석. 그 단 1석의 힘의 차이가 우리가 엊그제 봤던 국회의장의 무소불위 권력의 창출로 이어졌다. 소위 ‘보수’세력이 2012 총선에서 과반수에다 27석이나 많았던 시절에도 아무것도 못 했던 것과 비교하면 ‘힘의 논리’가 ‘논리의 힘’보다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다.

새해는 운명의 한 해가 되리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 운명은 자유세력이 자유의 ‘힘’을 회복할 여부에 달렸다. 무엇이 더 옳은가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실질적으로 유리한가에 포커스를 좀 맞췄으면 한다. 후방의 도덕군자보다 우리 편인 전방의 양상군자가 하나라도 우리의 명분을 달성한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우리에게 남은 총알이 올해 총선이란 ‘한 방’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옳은가는 우리 모두 속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힘이 없어 당했지, 명분이 없어 당한 적은 없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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