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 41] 18세의 선거권에 반대한다
[유니샘의 교실이야기 41] 18세의 선거권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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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31 11:02:17
  • 최종수정 2019.12.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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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선거권', 국내 현실적 여건상 고교 졸업 후 대학생 되거나 취업해 사회 일원이 되는 '법적 성인부터' 의미
특정 정치인・특정 정당 정책 지지하도록 강요하는 교사들이 버티는 학교서 냉정한 판단 가능할까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 깊이 각성할 나이 되기 전 권리만 부르짖는 자유는 엉뚱한 비용 요구할 것
조윤희 부산 금성교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교 교사

법은 통과되었다. 18세의 선거권. 심지어 선거권을 16세까지 낮추자는 정치인을 본다. 제정신인가.
그럼 차라리 10세는 어떤가 되묻고 싶다.

고3 교실에 던져진 선거권!

선거를 한다는 건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한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이고,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일에 고등학생이 참여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단지 1년? 18세와 19세가 다른 이유

성년과 미성년. 18세와 19세. 단지 1년 차이라고하기엔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그 1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18세. 

‘18세 아이들’의 주 관심. 그리고 당장 눈앞의 과업은 진학과 취업이다.

사회적 문제에 책임지는 선택을 할 여유가 없다.

인문계고 고3교실의 1학기는 막바지 내신을 확보하고, 수시에 대비하기 위한 비교과 영역의 동아리 활동이나 독서 기록 등을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시기이다. 4월이면 중간고사 대비로 더욱 정신이 없을 시기 이고 6월이면 6월 모의 평가와 자기소개서에 채워 넣을 여러 가지 스펙의 정리 등으로 더욱 그러할 시기이다.

전문계고는 또 어떤가. 취업에 대한 생각으로 골머리가 아플 시기이고 좀 더 좋은 조건에 자신들이 일하고 싶은 일터를 찾느라 정신없이 바쁠 시기이다. 그런 고3 교실에 ‘표’를 던지라고 표를 주었다.
이 나이는 아직 판단이 미숙하여 누군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나이 혹은 상태이다. 그것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부모든 교사든 외부의 어떤 존재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자신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 외의는 다른 일에 깊이 숙고할 시간이 없다. 물론 청소년이라고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문제에 일찍 눈뜨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그런데 일정한 연령을 절대적 기준으로 투표권을 부여한다? 그들의 개인적 숙고와 고민과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지기. 그것을 인지하고 갖춘 나이를 선거권 행사 기준으로 삼자면 사실 19세도 빠른 나이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19세. 

지금까지의 ‘19세 선거권’은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상 고교 졸업 후 대학생이 되거나 취업을 하여 사회일원이 되는 법적 성인부터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그나마 충분히 현실을 고려하고 선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폴란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도 대학생이 되는 만 18세(우리 나이 19세)부터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 권리이며 동시에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연령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19세는 그런 여러 가지 사회적 함의와 합의를 전제하므로 단지 1년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신중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18세’에 힘주는 이는 왜 다 정치인인가

모 교육청에서는 내년 초중고교 40개 학교에서 '모의 선거 프로젝트 학습'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교실 안에 작은 선거장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선거 백신(?)’을 맞히겠다는 것이지만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는 선거 교육만큼은 교사들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전문가가 중립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등장한 것도 일견 일리가 있다. 객관성과 중립성이 전제되지 않은 채, 학교에서 교사들이 실시하는 ‘선거교육’은 가르치는 이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도 있고 선거교육 총괄을 정파성이 뚜렷한 인사로 채울 경우, 결국 정치교육으로 변질돼 여러 시비와 갈등에 휘말릴 수 있고 '교실의 정치화'가 우려 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또 모 정당의 대표는, 18세로 하향된 선거권을 장기적으로 16세까지 낮추는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공언까지 했다. 그러면서 “청년 정치 참여 활성화에 족쇄 되는 것이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이라며 “곧바로 위헌 소송을 내는 등 청년들의 기본권, 참정권 확대를 위해서 00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갈 것”이라고 했다. 18세 남짓의 청소년들조차도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라고 추켜세우는 것도 모자라 16세까지 선거장에 몰아넣겠다는 발상이 과연 청소년의 인권, 기본권을 함양 하는 배려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청년의 기본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투표귄을 손에 쥐어주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이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자신들이 가고 싶은 학교도 선택할 권리조차 주지 않는 나라가 정치참여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하나. 당장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은 듯 착각이나 일으키도록 사탕발림을 하려는 ‘표팔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특정 정당의 정책을 지지하도록 학생들에게 한 목소리로 외치도록 강요하는 교사들이 독버섯처럼 버티고 있는 학교에서, 18세 아이들에게 냉정한 판단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의도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진실에 눈떠야할 18세에게 바란다 

천진난만 18세.

대다수 아이들의 일상은 그날 급식메뉴가 뭔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지 안 하는지와 주말이면 실컷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할 생각에 부풀어 있다.

지금 정치 현안이 무엇이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올 파장과 끼칠 피해나 이익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 덜 여문 그 아이들의 생각은 그 만큼 스스로 채워갈 여지가 있는 것이며 충분한 학습과 경험을 통해 완성시켜가야 할 부분인 것이다.

현재의 고통이나 불편도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견디거나 참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미래지향적 인간을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이익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만 손 흔들어 환호하는 즉물적 인간으로 치환시키는 정책이 바로 ‘18세 선거권 부여’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어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깊이 통감할 줄 아는 성인이 된 다음이어도 늦지 않는 ‘정치참여권’을 입시와 취업의 전장에 풀어놓아 경황없는 수험생과 취준생에게 과잉 정치의 혼란까지 가중시키는 성인들의 검은 속내를 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8세 선거권이 국회에서 계류 중일 때 강력하게 비판하며 선거권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단체들을 보자.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상정을 보류하기로 한 것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야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는가 하면,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활동가는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넘어 당사자로서 시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니 한 명의 시민으로 대우받길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선거연령 하향 법안의 국회통과를 촉구했다.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활동가도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정치개혁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즉자적 지식을 달관한 현인이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로부터는 학습되었거나 지식을 전수받았을 것이다. 이들로부터 퍼지는 목소리는 참으로 일관되었고 한 가지로 수렴된다.

18세의 청소년. 간혹은 자신들과 직접 관련 있는 입시 정책이나 교육 정책 등에는 눈과 귀를 열고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꼭 한창 학업에 열중하고 자신의 진로에 막바지 최선을 다해야할 그 나이인 고3, 18세여야 하는지는 숙고해 주길 바란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깊이 각성할 나이가 되기 전에 권리만 부르짖는 자유는 설익은 자유로 엉뚱한 비용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Freedom is not free.  이 격언은 이 아침에도 유효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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