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행동은 처음...항의 피켓을 들고 오게 된게 “참담"
희생장병 예우차원에서 '청와대 초청' 받았어도 안 올라왔는데...
유가족 “나라 위해 희생한 자식, 슬프지만 영광으로 알고 살고 싶은데...나라가 없었던 일처럼 행동”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토를 방위하는 전 장병을 자신의 가족 형제 자식같이 생각하는지 의문”

천안함 유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가족이 희생된 천안함 유가족 및 생존 장병들은 24일 서울 광화문 및 청와대 앞에서 연이어 ‘김영철 방한’에 대한 항의·규탄 집회를 열었다. 천안함 유족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천안함 유가족 측은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부터 지난 8년 간 ‘나라를 지키며 희생된 장병’에 대해 ‘국가 책임’으로 전가하지 않고 명예롭게 생각해왔지만, 오늘날 ‘희생 장병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와 예우’조차 외면하는 현 정권의 행보에 대해 성토했다.
 

사진=조준경
(사진=조준경 PenN 기자)

故손수민 중사의 아버지인 손강열 씨(60)는 아내와 함께 울산에서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왔다. 손 씨 부부는 앞서 천안함 용사들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청와대에서 여러번 초청받았지만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에 올라온 첫 걸음이 정부에 대한 항의 피켓을 들고, 이런 일로 오게 된 것에 대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손 씨 부부는 “자식이 나라를 지키며 희생한 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하고 살려는데”라며 “정부는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출했다. 오히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제재를 하고 우리 정부는 북한의 행태를 묻어가려는 듯 보인다며 개탄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보에 대한 의식이 이렇게 바뀌어 버리면, 국군 장병은 누구를 믿고 나라를 지켜야 하는가"라며 분개하기도 했다.

이어 손 씨는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 중요한 지 국가 안보에 대한 것이 먼저인지”라며, 현 정부가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해서 북한의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촉구하지도 않는 행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또한 손 씨는 “사전공지도 받지 못하고 (김영철 방한 소식을) 언론을 통해서 들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평화적인 모습 연출을 위해서 유가족을 배려치 못하고, 오히려 언론을 통해서만 유가족에게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해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 ‘답답함’이 엿보였다.

故서대호 중사의 아버지 서영희씨(62)도 “정부가 김영철을 초청하는 것에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자신의 아들 직급인 중사 마크가 표기된 모자를 쓰고 시위에 참여했다. 실제 아들의 군모는 집에 간직하고 있다며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서 씨도 자식의 희생에 대해 누군가의 탓을 하기보다는 ‘나라를 지킨 아들’로 기억하며, 자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나 “정권 바뀌고 나서부터는 섭섭한 일만 일어난다”며 서운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서 씨 또한 갑작스럽게 진행된 김영철 방문 소식에 급하게 올라오느라 기차표를 구하지 못하고 경남 창원에서 입석으로 3시간 동안 올라와야 했다고 설명했다. 서 씨는 올라오는 동안 그동안 꾹꾹 눌러온 마음들을 흔들리는 기차에서 작은 메모지에 적었다.

메모지에는 “안타깝게도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토를 방위하는 전 장병을 자신의 가족 형제 자식같이 생각하는지 의문”, “평화와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해도 기본상식과 도리가 있는데...”이라며 현 상황을 규탄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어 “우리 대한민국 모든 장병의 원수인 살인범죄자 김영철을 깍듯이 국빈으로 맞아들이는 건 애국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사람으로써 이해가 안가며 분통이 터지는 마음에 가만히 보고 앉아 있을 수만 없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억울한 마음을 고하기 위해 멀리 창원에서 상경하게 되었다”고 서울로 올라온 심경을 토로했다.
 

故서대호 중사의 아버지 서영희씨(62)가 상경할 당시 기차 안에서 쓴 메모지(사진=조준경 PenN 기자)

유가족들은 울산, 창원, 부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다. 

성명 규탄에 힘을 실으러 왔다는 한 시민은 “김영철이 평화의 사절단처럼 방문하고, 정부는 국빈처럼 초대하는 행태에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가?”라며 “이 일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일에 분통을 터뜨려야 하냐”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날 천안함 유가족과 생존 장병 등 50여명은 광화문 광장에 이어 청와대에서도 '김영철은 유족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 '북한은 천안함 폭침을 사죄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김영철 방문을 철회하라"며 구호를 외쳤다. 희생된 장병에 대해 언급할 때 눈시울을 붉히며, 아직까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희생된 장병)들이 생각난다고 밝혔다.

청와대 앞에서 이루어진 집회에 국정상황실 당직 행정관이 나왔다고 밝히자, 소홀한 대응에 오히려 유가족 측의 분노가 격앙되기도 했다. 이후 국가안보실 선임행정관이 다시 내려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가족 측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주범인 김영철의 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반대하며, 정부측의 참석 수용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북한측에 폭침 만행을 인정하고 사죄하길 규탄했다. 

이들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에 대해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비뚤어진 시각으로 부정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먼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입장을 명명백백히 국민 앞에 표명해서 국민 갈등의 소지를 없애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또한 정부 관계자가 “천안함 폭침이 현 정부의 뜨거운 감자다”라고 밝힌 것에는 “명백히 드러난 사건이 왜 갈등의 이념이 되어야 하는가"라며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승적 차원에서 북한의 방한을 이해해 달란 말을 하기 전에,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이 먼저 선행했어야 한다”며 “천안함 희생을 묻어 두고 묵인하는 남북대화는 진정성 전혀 없는 가식”이라고 지적했다. 집회 참석자 중 한 명은 “희생자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다시 한 번 박는 꼴”이라며 흐느끼기도 했다.

한편 유가족 측은 이번 ‘김영철 방문’ 관련 항의ㆍ규탄 메시지가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나라를 지키다가 희생한 가족들을 자랑스러워 해왔는데, “자식들 명예에 혹시나 누를 끼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아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조용한 모습에 ‘북한의 폭침사건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유가족의 심정을 외면하고, 무분별한 평화적인 장면 연출에 매몰된 정부의 행보에 배신감이 더 커진 모습이다. 유가족들은 “국가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병의 명예를 지켜야 하지 않나”며 분개했다. 김영철이 방문하려면 정부측에서 먼저 북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죄를 촉구하는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이같은 모습조차 결여된 것에 유가족 측은 격앙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사진=조준경 Pen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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