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도록 쳇바퀴 도는 것처럼 보이는 우파의 외양간 고치기
그 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맞았고 우파는 뒤늦게야 현실 파악
정권 변한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결국 우리 자신이 바뀌어야
실천할 대안을 제시해도 원론적 문제만 외치던 올드보수들의 민낯
방어보다는 선공, 선공은 그저 ‘행동’이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마치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힌 기분이다. 영화판에서 좌파들과 싸우다 영화계에서 최초로 우파선언을 한 이후 10년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한번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필자는 10년이 넘도록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고, 그런 경험보다 더 많은 같은 얘기를 많은 이들에게서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반복보다도 더 무서운 건, 행위의 반복이었다. 마치 뇌의 일부 기능을 상실한 실험실의 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행위의 반복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잔인하게 필자에게 다가온다.

‘김원봉’ 이후, 우파는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가?

수년 전부터 필자는 좌파들의 역사왜곡에 대해 경고하며 김원봉을 막아야 된다고 했고, 홍범도를 막아야 된다고 했고, 박상실을 막아야 된다고 했다. 시간만 되면, 여건만 되면 어디서건 입안에 단내가 나도록 반복해서 외쳤다. 하지만 우파 누구도 그런 얘기에 관심이 없었다. 반복해서 들리는 것은 여전히 ‘민노총 나빠요’와 ‘전교조 나빠요’였고, ‘빨갱이 때려잡자’였고, 정치에 함몰되어 그저 정권만 가져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거라는 헛소리뿐이었다.

그 사이……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맞았고, 김원봉은 독립유공자 서훈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우파는 김원봉 서훈이 말이 되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때 필자는 다시 외쳤다. ‘김원봉’은 늦었고, 다음은 홍범도가 대기 중이니 그것을 막아야 된다고, 나아가서 홍범도 뒤에 박상실이 나올 것이니 지금 홍범도를 막아야 박상실도 막을 수 있다고 외쳤다. 그 다음은 대상은 꺼내기에도 너무 멀어 차라리 못하고 있을 뿐 줄줄이 준비 중이다. 하지만, 우파는 그 말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김원봉 서훈 막아라만 외치고 있었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 황인희 역사 칼럼니스트가 필자의 말을 이해하고 펜앤드마이크에 ‘김원봉 소동 이후, 우파는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가?’란 칼럼을 올렸다. 역시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항의하고 욕하고 이후 그들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정치에 함몰되어 거대담론만을 집어 삼키고 있었고, 아무런 문제없이 홍범도는 다시 대한민국을 사회주의로 물들일 상징물로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김원봉 역시 그 어디도 아닌 국회헌정기념관의 로비에 떡하니 대한민국 국회의 시작이라는 임시의정원 멤버로 사진 속에 살아 움직이며, 이승만 박사의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것들이 그 사진을 보며 감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본 서비스 제공이다. 김원봉과 홍범도, 박상실, 그리고 그 다음의 인물들은 모두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지우고 사회주의 역사로 바꾸는 상징들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역사가 자유에서 사회주의로 바뀌고 있는데 우파는 언제까지 이미 작업 끝난 김원봉만 잡고 화만 내고 있는 것일까?

어제도 필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외쳐댔지만 그 소리는 공허했고, 우파는 그저 정치에만 함몰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펜앤드마이크 사무실 앞에는 홍범도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떡~하니 자리하고 자유와 시장을 지키려는 펜앤드마이크와 구독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워져 있다.

(공영주차장을 없애고 들어선 ‘3.1독립선언광장에 홍범도 비석 단 하나만 세워져 있다.)

권력(정권)만 잡으면 대한민국이 지켜집니까?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사회주의 영웅들이 하나 둘 한국의 역사를 대체해가고 있는 속에서 우파는 여전히 정권만 바꾸면 대한민국의 정상이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은 한마디로 글쎄올시다 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날 때 똑같이 외쳤던 논리, 그게 또 반복된다. 그래, 그렇게 해서 우파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었는가? 필자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좌파들은 정권의 교체와는 상관없이 이미 완벽하게 구축한 진지 안에서 그람시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런 진지들을 쳐부숴야 할 시간에 MB는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불렀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권력과 탐욕만을 추구했던 기득권자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통합이니 연대니 뭐니 하며 수구꼴통들의 악령을 소환 중이고, 자아(개인)을 상실한 올드보수들은 사분오열하며 나타나지도 않을 현실의 메시아를 기다리며 남 탓만 해대고 있다. 예수가 재림해도 돌 맞을 게 뻔한 지금의 대한민국 우파의 현실 속에서…..

건방지게 필자가 생각하는 걸 말하자면 정권이 변한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은 권력이고, 권력은 그 자체로서 세상과는 별개의 생존본능으로 진행된다. 그건 좌파도, 우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세상을 바꿔야 되는 건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 우리 자신들이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켜야 된다고 외치면서도 자유와 시장에 대해 모르고, 진실을 외치면서도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바로 자신의 옆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그저 감당도 못하는 거대담론만을 내세우는 정치우선주의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 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내가 바뀌어야 주변이 바뀌고, 주변이 바뀌어야 시민의식이 바뀌고,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필자는 믿는다. 솔직히 질문해 보자.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그 동안 우파는 무엇을 했는가? 이건 필자가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부역자들1’을 본 외국인들(미국, 일본, 독일 등)이 감독인 필자에게 던진 질문이었고, 필자는 그 질문에 차마 답을 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우파는 말만 했고 행동하지 않았고,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은 행동에 대해 질문했다. 그 사이 좌파는 행동했고, 그렇게 역사를 바꾸고 문화 진지를 통해 일반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대한민국의 근간을 바꿔 버렸다.

하지만 현재 지금 이 시각에도 우파는 10년도 훨씬 전에 들었던 똑 같은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우파는 ‘전교조 타도’를 외쳤지만 결국 일반국민들에게 전교조의 폐해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건 어린 인헌고의 학생들이었고, 그 자리에서 외친 ‘빨갱이’ 발언은 왜 그 동안 전교조가 활개쳤는지의 원론적 문제에 대한 올드보수들의 민낯이었다. 전교조와 민노총과 문화계와 좌파들의 역사를 비판하면서도 그 대안으로서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기사 그렇게 존경한다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재단 하나 만들지도 못하고, 김대중이 만들어준 재단에 기념동상 하나 세우지도 못하는 올드보수들에게 무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법치국가에서 행한 매우 잘못된 행위였기에 분명한 반대의 입장이지만, 그 탄핵의 책임은 몇몇 정치인들이 아닌 우파라 말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필자의 칼럼에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무조건 취조하듯 탄핵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 글이 답변이 되었길 바란다. 당신은 필자에게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 필자는 최소한 ‘부역자들’이라도 만들어 해외에 탄핵의 부당성을 알린 ‘행동’했던 사람이니까.

자, 이제 필자가 질문해 보자. 당신은 그럼 무얼 했습니까?

방어보다는 선공, 선공은 그저 ‘행동’이다!

무한 반복되는 쓸데없고 허무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구호는 이제 필요 없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기득권 마인드는 그만 내려놓고 광야로 나가 싸워야 할 때다. 하지만, 올드보수는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고 싸울 의지도 없다. 그저 입으로만 떠들다가 때가 되면 권력에 빌붙어 생존만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남탓이나 해대고 자신들의 비겁함을 감추려 내부총질만 해대면 될 테니까.

그래서 계속 반복되는 Again and Again and Again and Again and Again……..

더더욱 슬픈 건 이 무한 반복되는 매우 쓸모 없고 허무한 구호들이 당분간은 더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은 자들은 행동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행동하는 자들을 경계한다는 것이 더 큰 원론적인 문제다. 행동하지 않는 자들의 내부총질에 의해 행동하는 자들(‘선수’라고 부른다)이 제대로 된 선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이고, 그런 자들이 아직 우파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상의 공격은 방어가 아닌 선공이라는 말은 우파에겐 아직 꿈 같은 얘기일 뿐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의 승리 따위(?)는 필자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필자가 원하는 것은 행동하는 선수들이 얼만큼 많이 마음껏 선공을 퍼부을 수 있냐는 거다. 그래야 정권이 바뀔 때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을 가차없이 정리할 테니까. 그게 아니면, 우파는 또 정권을 잡더라도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이나 부르는 짓거리를 또 ‘반복’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간단하다. 감당도 안 되는 거대담론은 감당 되는 선수들에게 맡기고, 우파라 불리는 개개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주변을 변화시키는 행동을 하면 된다. 인헌고 학생들처럼 학생인권을 위해 싸우고, 필자처럼 영화판과 싸우며 문화전쟁을 치르고, 수많은 어르신들이 손에 태극기를 든 것처럼 남 탓하거나 손가락질하고 있을 시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만큼 행동하면 된다. 부모님들이라면 좌파로 사는 자녀들의 용돈을 끊어 버리는 방법도 좋다. 돈이 피 같다는 걸 알아야 쓸데없는 사회주의 허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와 시장경제를 공부하시길 바란다. 그 두 가지는 단지 태극기집회에서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자유우파라 말하는 사람들이 가슴과 머리에 피로 새겨가며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대한민국의 근간이다. 태극기집회를 비롯해 올드보수들의 모임 그 어디서고 필자는 슬프게도 자유와 시장경제의 진정한 외침을 듣지 못했다. 자신들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문화계 1호 자유시장경제 강사의 자격으로 충고 드린다.

그나마 필자가 요즘 ‘희망’을 말하는 것이 생겼다.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해보자고 달려들었던 자유진영의 첫 미술 전시회인 ‘자유하라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자유진영에도 문화진지의 구축이 넓게 이루어질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고, 필자가 운영하는 ‘TEAM작당들’ 말고도 우파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도 보이는 것이 또 다른 희망을 필자에게 얘기해주고 있다. 반드시 꼭 만들어서 싸우다 지친 우파에게 위로와 휴식이 되는 영화가 되길 기도하리라. 물론 지금까지 영화 만든다고 하면서 사기만 쳤던 게 우파영화의 자멸을 가져왔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필자가 지쳐가는 마당에 가져보는 희망이기도 하겠다.

인헌고 학생들을 보면서도 희망을 갖는다. 좌파시위꾼들을 백어택 제대로 먹이는 안정권 대표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자신의 역할을 하는 이은택 대표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 우파들이 하는 행사에는 모두 나와 애국가를 멋지게 부르는 이계희 원장님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자유우파의 화가 그림이라면 무조건 사주고 도움이 되냐고 묻는 모 갤러리 분의 눈망울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렇게 작은 행동들이 모여 승리하고, 그 승리들이 모여 큰 승리를 하면서 더 큰 희망이 만들어지길 기도한다. 우파라 말하는 모든 분들의 가슴에 아주 작은 승리 하나씩 자리할 때 세상은 바뀌고, 대한민국은 지켜질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게 내년 4월 전이면 좋겠지만, 욕심은 버린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영화감독 / (주)작당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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