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언론 포럼 기조강연서 "정치 현주소 한심...주된 원인은 선거구제 개편때문" 발언
'밥그릇 싸움' 규정한 선거법 개정 방향성 제시는 않고 "개헌과 함께 공정한 게임의 룰 만드는 게 시급"
"100년 역사의 대의민주제 제 기능 못하고 광장정치 판친다" 국회의장 출신의 '제 얼굴 침뱉기'?
의장시절 탄핵정국 위세 떨친 '장외 촛불'은 "혁명" "미라클" 받들고 '대의제' 언급 자체 없던 인물
'판치는 광장정치'엔 촛불 후신 격인 "조국 지지" 親文집회도 포함...장외 위세 약해지자 '팽'하나
한국당 "탄핵 국면서 대의민주제를 '촛불'에 반납한 의장이...본인 총리지망생 행보부터 고치라"

헌정사상 초유의 '국회의장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야합 선거법 논란과 관련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는 국민의 말이 맞다"고 직설했다.

정세균 총리 후보자는 19일 국민일보가 주최한 '국민미션포럼' 기조강연에서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정치 현주소가 한심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주된 원인은 선거구제 개편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정 후보자는 "개헌과 함께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우회했다. 제1·2야당 교섭단체 대표자들과의 합의를 건너 뛴 선거법 야합을 '밥그릇 싸움'으로까지 지칭해놓고 시정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 오히려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자인 자신의 관심사인 헌법 개정으로 논의의 방향을 튼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12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 후보자는 "현재 우리 사회가 유례없는 '초(超)갈등 사회'라는 데 저도 동의한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면서 "임시정부 이후 100년의 역사를 지닌 대의민주제가 제 기능을 못하니 광장 정치가 판을 친다"고 탓했다.

나아가 '광장 정치가 판을 치는' 예로 "광화문, 서초동, 여의도"를 들면서 "집회하는 그룹들이 다 다른 주장을 하는 상태로는 대의민주제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광화문 광장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말~2017년초까지는 민노총 등이 주축이 된 자칭 '촛불'세력의 것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의 '고무줄 잣대'로 시(市)의 허가 없이 설치된 세월호 참사 관련 불법 천막 등이 즐비한 장소였기도 하다.

하지만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 전후로, 광화문광장에선 국회의 '언론기사-공소장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촛불 받들기 식 답정너 탄핵'에 반발하는 '태극기 민심'이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태극기 항쟁' 의미 부여가 가능한 ▲3.1운동 ▲8.15 해방·건국일마다 광화문광장에선 '태극기 민심'이 대규모로 결집했고, 올해 들어서는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 강행 사태를 계기로 10.3개천절·10.9한글날 '국민총궐기'가 일어나기까지 했다.

지난 10월3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열린 조국 전 법무장관 구속-문재인 대통령 퇴진 촉구 국민총궐기 집회 당시 인파.(사진=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 인파를 넘어서는 '역대급' 인파를 목도한 뒤, 줄곧 "촛불 혁명" "직접민주주의" 레토릭에 집착하던 집권세력은 대규모 반문(反문재인) 집회마다 '폭력시위 프레임'을 씌우려 들거나 시민의 정치 직접참여를 지상가치로 삼는 주장을 줄였다. 

정 후보자가 언급한 '서초동'은 조국 전 장관 일가 범죄혐의 수사를 거부하는 친문(親문재인)세력의 검찰·사법부 압박 집회로, 탄핵 촛불의 후신 격 움직임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200만명 결집"을 함부로 단언하는 여권·관권의 전폭적인 지원이 그 배후에 있었다. 

지난 9월2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친문세력의 조국 전 법무장관 지지-검찰 수사 반대 집회.(사진=연합뉴스)

하지만 '10월 항쟁'이라는 평가마저 나온 일반시민 주류의 '조국 구속-문재인 퇴진 집회'와 세(勢)대결에서 밀려 여권 내 위상이 퇴색한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정 후보자가 "광장 정치가 판치는" 사례 중 하나로 치부할 수준이 됐다. 

'여의도'는 친문·친조국 세력의 집회 무대가 됐었다가, 한국당이 최근 '패스트트랙 2대 악법 저지' 국회 내 규탄대회를 시민사회단체의 장외집회와 연계 투쟁에 활용하면서 우파가 주류인 무대로 바뀌었다.

'장외 촛불이 꺼져가는' 상황이 이어지자, 여권 내 유력인사인 정 후보자로부터 "대의민주제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는 정 후보자의 처신은 '제 얼굴에 침뱉기'에 다름없는 이중잣대를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지난 2017년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지난 2017년 3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 후보자는 2016년 12월9일 '장외 촛불의 위세'에 편승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시킨 국회 수장으로서, 본회의 사회를 봤던 인물이다. 이듬해 10월26일 원광대에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개헌'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국민의 촛불은 혁명에 비유될 만 하다"며 "경제성장과 촛불혁명은 미라클(기적)"이라고 대의민주제 부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또 같은해 12월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탄핵소추안 의결은) 촛불시민의 민주적이고 질서정연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혁명이 일어났다"고 촛불을 극찬하고, 2018년 1월15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개헌 주장 관련 "10차 개헌 또한 촛불 시민혁명의 정신을 담아 미래지향적 개헌이 돼야 한다"고 공언했었다.

실제로 그가 국회의장일 때 각종 개헌론 관련 공식발언에서 '대의민주주의' 혹은 '대의민주제'가 등장한 바는 없다. 하지만 경제·안보·정치안정·사회통합·환경 면에서 모두 '낙제점'으로 드러난 문재인 정권에 저항하는 민심이 확산되자, 대의민주제의 중요성을 이제 와 앞세우는 자기부정에 가까운 모습이다.

정 후보자의 주장 관련 19일 한국당의 장능인 상근부대변인은 "전직 국회의장(총리 지망생)의 국회 비난은 제 얼굴에 침뱉기"라며 "지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회의장을 맡았던 정세균 의원은 대의민주주의를 자칭 '촛불 세력'에게 반납한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장능인 상근부대변인은 "전직 국회의장으로서 국회의 권위를 촛불에 반납한 정 후보자는, 문재인 정권의 2인자를 자처하며 총리 지망생을 자임하고 있다"며 "정 후보자는 지금이라도 제 얼굴에 침뱉기 식의 발언에 대해 돌이켜보고, 국회가 건전하게 행정부를 견제하는 헌법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부 2인자 직에 대한 욕심을 버리길 바란다. 멀리 있는 개헌을 외치기 전, 가까이 있는 자신의 행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후보자 직 사퇴를 촉구했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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