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PenN 정치사회부 기자
이슬기 PenN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수사’ 장기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한 굵직한 시국 사건의 1심 판결이 대부분 마무리 됐지만, 아직도 재판정 앞에는 청산 대상에 이름을 올린 ‘적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재판장에 섰다. 주 대표는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본인은 물론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돼 있는 서초동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미 편집된 인쇄물을 출력해 나눠준 것만으로 실형이 내려진 게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의 재판 결과도 낙관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좌파 인사들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의사 양승오 박사에게 “돌팔이 박사님. 의사 면허 반납하시죠. 대학교수의 아이큐가 일베수준이니 원. 편집증에 약간의 망상기까지. 그 병원 정신과에서 진료 한 번 받아보세요.”라고 비난한 진중권 교수는 지난 2016년 11월 무죄를 선고 받았다.

소위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처벌은 더욱 ‘엄중’했다. 탄핵 사태를 촉발했던 최서원은 징역 20년을 받았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징역 4년)‧조윤선 전 정무수석(징역 2년)‧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징역6년)‧우병우 전 민정수석(징역 2년6월) 등도 모조리 실형을 받았다. 과거 막강한 권력으로 ‘소통령’이라 불린 YS의 아들 김현철씨, DJ의 세 아들 ‘홍삼 트리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봉하대군’ 등 역대 정권에서 ‘실세’로 불린 이들 중에는 2년 이상 실제 수감생활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문재인 청와대는 집행유예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재판에 대해서도 “국민의 비판을 새겨들으라”며 사실상 사법부를 꾸짖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되면 보수를 불태우겠다”던 문재인 당시 후보의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은 22일 아예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형사합의부를 증설키로 했다. 소위 ‘국정농단’ 재판으로 사건이 쌓이면서 업무 부담이 늘었다는 게 이유다. 문 정부는 기어이 ‘보수 궤멸’이라는 약속을 지키려는 것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 청와대 수석들과 각료들, 우파 시민단체 대표에 이은 다음 청산 대상은 일반 시민들인가.

시민들은 정초부터 날아든 금융정보 제공 통지서의 기억을 생생히 갖고 있다.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나갔던 우파 시민들은 금융 정보 사용 목적에 적힌 ‘사건수사’라는 글자를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다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촛불 시민’ 사건에 대해서는 금융정보 조회는커녕 제대로 된 수사도 없이 종결처리한 사실이 밝혀져 냉가슴을 앓았다.

법원과 검찰, 경찰은 ‘우파엔 쇠방망이, 좌파엔 솜방망이’라는 커져가는 비판 앞에서 당당한가. 판검사들은 최소한의 형평성도 없는 ‘정치 보복’이라는 역사의 평가가 두렵거나 지금 자신들의 행위가 부끄럽지 않은가.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식 적폐 청산' 구호를 충실히 뒷받침하는 사법부와 수사기관의 말도 안 되는 이중잣대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이 기자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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