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손오공과 문무대왕
[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손오공과 문무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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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을 바다에 뿌려달라던 20년 전 등소평 유언 화제
동해를 지키는 호국 용(龍), 문무왕 유언과 대조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 관광지 육성 번번이 실패
경주시의 문무대왕 유조비 설치 및 주변 정비사업, 반대에 부닥쳐 난항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의 반대 이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일본 규슈의 백제 축제, 1,300년 동안 성황리에 지속
중국 화궈산 서유기 탄생지 세계 관광객들에게 각광
역사와 관광은 한 뿌리, 더 이상 부끄러운 후손 되지 말아야
국회 통과한 ‘신라왕경특별법’ 새로운 천년 고도 잠 깨우는 계기 되길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20여 년 전, 중국 지도자 등소평의 유언이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파란만장한 권력 암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마침내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된 사람, 말 한마디로 천하를 호령한 절대 권력자. 그런 사람이 백년 가까이 천수를 누린 끝에 검소한 장례를 부탁하면서 화장한 뼈를 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자 대중들은 크게 감동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한 줌 재로 돌아간다.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는 평소 잊고 살아간다. 심지어 죽어서까지 억만금을 들여 호사스러운 명당을 짓고, 온갖 진귀한 석물로 무덤을 치장하려는 수많은 범부, 졸부, 갑부, 잔챙이 권력자들은 자그마한 등소평의 대인다운 풍모와 소탈한 사생관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으리라. 역시 등소평이라고 당시의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등소평이 죽자 그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중국 바다에 뿌려졌다. 비행기를 타고 남중국해를 날며 아버지의 뼈를 남중국해에 뿌리는 큰딸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앞서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은 유언을 남긴 분이 딱 한 분 계신다. 아니 등소평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크고, 더 소탈하고, 등소평의 유언 따위는 댈 바도 아닌 거룩한 유지를 남기신 분, 바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김법민이다.

지금 읽어봐도 눈물 나는 유언, 시국이 불안하고 세태가 파란만장할수록 캄캄한 밤하늘에 샛별처럼 빛나는 문무왕의 마지막 말씀, 그 요지는 등소평처럼 단순히 검소한 장례와 바다 산골(散骨)에 그치지 않는다.

‘나를 동해에 장사지내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와 후손들을 지켜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한 마디의 무게를 전달하기 위해 열 권짜리 대하소설 ‘삼한지’를 썼는지도 모른다. 긴 소설을 탈고하던 날, 나는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감포 바닷가로 달려갔다. 용이 되어 후손을 지키는 대왕의 수중릉에 참배하고 졸작 탈고를 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 대왕암 바위가 보이는 바닷가 주변은 눈을 의심할 만큼 초라했다. 사방에는 다 쓰러져가는 횟집과 허름한 평상들이 즐비했으며, 심지어 무속인들까지 가세해 형형색색의 무구(巫具)를 잔뜩 늘어놓은 채 끔찍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날 하루만 그런 게 아니라 상시 굿판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주민을 붙잡고 사연을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여기는 본래 무속인들 굿하는 데라예. 대왕암 기가 세서 굿발이 잘 받는다고, 딴 데서 백만 원 받을 거 여기서 하면 오백만 원을 받는다 아입니꺼?”

감포 문무대왕암
감포 문무대왕암

이 황당하고 참담한 일은 그로부터 20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계속되고 있다. 감포 문무대왕 수중릉 주변은 여전히 믿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고 너저분하며, 굿판을 벌이는 무속인들 역시 그대로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하며 살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유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문무왕이 누군지도 모르는 국민도 허다하다. 많은 국가에서 수시로 국민에게 자국의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가르치지만 우리 공영 채널들은 언제부턴가 이쪽 일손을 아예 놓아버렸다.

이런 와중에 최근 경주시가 문무대왕릉 주변에 유언비를 세우고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계획한 것은 뒤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유언비의 크기를 6,76미터로 결정한 건 문무왕이 <나당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해인 서기 676년을 상징하는 뜻에서란다. 그렇게라도 문무왕의 정신이 알려져서 많은 이가 우리에게 이런 자랑스러운 임금이 있다는 걸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식을 듣고부터 나는 줄곧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소문에 이 반가운 사업이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난항을 겪는다고 한다. 비석의 크기가 광개토대왕비의 크기를 넘을 수 없고, 현재의 자연스러운 경관을 인위적인 조형물로 훼손할 수 없다는 게 반대의 이유란다. 귀를 의심할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누가 그따위 생각을 하는가? 문무왕의 유언비가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광개토왕비의 크기를 넘을 수 없다는 건가?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빈다. 둘 다 말 같지도 않은, 그야말로 미친 자의 잠꼬대보다 못한 이유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난고손(南鄕村)에선 백제 왕족이 도래한 사실을 소재로 ‘시와스마츠리(師走祭り’라는 축제 행사를 만들어 무려 1,300여 년 동안 꾸준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의 협력을 얻고 한국에서 장인을 초청해 백제관(百済の館)을 건립, 관광 상품으로 만든 건 비교적 근년의 일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한국인이라고 한다. 만일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축제가 천년 이상을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이런 게 우리가 축구는 이길지 몰라도 진짜 중요한 건 일본에게 지고 사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화궈산(花果山)’에 소설 서유기(西遊記)의 탄생지를 관광지로 만들어 대대적인 ‘손오공 팔이’에 나서고 있다. 유적과 유물이 스토리를 만나면 가공할 관광 무기가 된다는 건 우리나라 학자나 공무원들만 빼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게 없어서 못 파는 게 현실인데 우리는 있는 것도 온갖 이유를 대면서 어떻게든 안 하고, 안 판다. 적어도 이런 부분에선 무속인이 학자나 공무원들보단 한결 윗길이다. 그네들은 그래도 ‘문무왕의 세고 영험한 기(氣)’를 다섯 배나 받고 팔 줄 아니까 말이다.

화궈산-손오공이 돌을 깨고 나온 바위
화궈산-손오공이 돌을 깨고 나왔다는 바위

우리가 입만 열면 자랑스럽게 여기는 5천 년 역사에는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있지만 아무도 이 원석들을 발굴해서 가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국민은 너도나도 해외 관광에 나서서 남의 집 손오공 팔이에나 동원되고, 우리나라 백제는 놔두고 남의 나라 백제 팔이에 줄을 선다.

대대적인 문무왕릉 주변의 정비 사업은 이제라도 서둘러야 옳다. 믿고 싶지 않지만 반대하는 문화재위원들이 정말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문무대왕릉 앞에 서본 적이 있느냐고! 한국인으로, 관광객으로, 구경꾼으로 초라하고 스산한 바닷가에 서서 대왕암을 바라본 적이 있느냐고!

그래도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경주시장에게 주문하고 싶다. 세상 물정 모르는 몇몇 학자들의 반대에 휘둘리지 말고 중앙 방송에 나와 전 국민을 상대로 호소해보시라고! 그리고 그땐 반대하는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의 성명과 소속과 반대하는 이유도 반드시 만천하에 밝히시라고!

영웅은 모두 후대가 만든다. 중국 소설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이 훌륭한 게 아니라 그네들을 훌륭하게 만든 영특한 후손을 두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관광지도 모두 후대가 만든다. 사서에 기록된 감동적인 문무왕의 유조비 건립을 두고 행정과 학계가 왈가왈부하는 사이 허구의 결정판인 손오공을 소재로 수십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중국을 보고 있노라면 허탈감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이제라도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꾸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인적인 견해인데 차제에 감포 해변의 무속인들은 자신들이 팔 상품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주면 어떨까? 요즘 경주의 가장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의 최고 히트상품도 1천 원짜리 <운세 보는 기계>가 아니던가? 무속 역시 엄연한 우리 전통문화이므로 관람실을 짓고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주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간단한 무속 상품들을 개발해 판매한다면 얼마든지 공존(共存)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

스스로 모르는 역사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역사를 남에게 자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삼국지와 손오공은 멋진 관광 상품이 되어 후세로, 세계만방으로 팔려나가는데, 우리 문무왕은 자손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고, 무시당하고, 온갖 같잖은 시빗거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우리 역사가 대를 이어 자꾸만 초라해지는 까닭이다. 문무왕의 감동적인 유언은 엄연한 사실임에도 허구의 손오공보다 허접한 대접을 받는 현실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신라 왕경의 부활을 꿈꾸며 홀로 분투해 온 경주의 김석기 국회의원이 여야 동료의원 181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신라 왕경 복원정비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가뭄에 단비처럼 기쁜 소식이다. 총사업비가 1조 원에 육박하는 대형 국책사업인 만큼 부디 고증에 고증을 거듭해 천년 도시 <서라벌>을 제대로 일깨워주기 바란다. 그래서 경주를 색과 문화와 이야기가 강물처럼 흐르는 화려하고 특이한 국제도시로 만들고, 우리의 영웅호걸과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되살려낸다면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는 그야말로 <동양의 로마>가 되고,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만한 자산을 보유한 보석 같은 도시가 경주라고 나는 믿는다.

삼한지를 쓴 작가로서, 또한 지난 30년간 경주를 내 집처럼 들락거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주의 부활을, 아니 천년 고도 서라벌의 부활을 절절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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