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탈북민 김태희 씨, 통일부 앞 12일째 노숙 단식 중 의식 잃은 채 구급차에 실려가
[르포] 탈북민 김태희 씨, 통일부 앞 12일째 노숙 단식 중 의식 잃은 채 구급차에 실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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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20대 탈북여성에게 자신의 간 70% 이식...文정권 탈북민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 결심
건강 악화되자 유서남겨...“며칠 전부터 수술한 간 부위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 느껴져”
“북한에서 오빠와 함께 식량이 없어 3일 굶을 때도 이렇게 하염없이 잠만 잤다”
탈북민 김태희 씨가 통일부 앞에서 12일간 노숙 단식을 하던 중 17일 오전 구급차에 실려갔다(사진=양연희).
탈북민 김태희 씨가 통일부 앞에서 12일간 노숙 단식을 하던 중 17일 오전 구급차에 실려갔다(사진=양연희).

17일 오전 서울 종로 광화문. 통일부가 위치한 정부 청사 앞에 도착하자 북한인권단체 물망초 재단의 박선영 이사장이 보였다. 박 이사장은 어두운 얼굴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구급차를 부르는 중이었다. 노숙 단식 12일째를 맞은 탈북민 김태희 자유와인권을위한탈북민연대 대표의 몸 상태가 간밤에 급속하게 악화됐다고 했다. 물만 먹어도 토한다고 했다. 잠시 인터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화를 하기 힘들다고 했다. 텐트 안에 누운 김 대표는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며칠 전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자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기 시작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난 6일부터 통일부 앞에서 노숙 단식을 시작했다. 탈북민 이동현 씨(9일)와 주일룡 고대트루스포럼 대표(4일)에 이어 세 번째 릴레이 단식이었다. 김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면서 “탈북여성이 두 번씩이나 목숨을 내 놓은 이유”라는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고(故) 한성옥 김동진 모자 아사 사건과 강제북송된 두 청년의 죽음, 베트남에서 탈북자 14명의 추방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모두 ‘가만히 있어라!’였다”며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우리 탈북민들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두 명의 청년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며 “이번에 북송시킨 청년들 말고도 국민 모르게 북한에 인신제물로 바쳐진 탈북자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될지 누가 알겠냐”고 했다.

또한 “한성옥 모자를 굶겨 죽이고도 뻔뻔스럽게 탈북자들이 마련한 분향소에는 격식 운운하며 조문 한 번 오지 않은 청와대와 통일부를 강력하게 질타한다”며 “나보다 앞선 탈북민 이동현 씨의 목숨을 건 9일 간의 단식과 23살 아들 뻘 되는 주일룡 군의 단식을 보면서 힘을 합쳐 자유와 인권,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지켜야 하는 용사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요원들은 김 대표의 혈압과 체온 등을 재보더니 급히 그녀를 들것에 실었다. 곧이어 응급차가 출발했다. 박 이사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너무 가슴이 아파요. 어제 출장갔다 왔는데 상태가 안 좋아서 의사를 불렀더니 의사가 ‘당이 너무 떨어져서 당 수치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병원으로 당장 옮기라고 했어요. 그러나 김 대표가 ‘아직 의식이 있는데 병원에 갈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했어요. 야비하고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 문재인 정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김 대표가 떠나고 난 텅 빈 텐트 안에는 성경책과 물병, 침낭이 남아 있었다.

김 대표는 4년 전 자신의 간의 일부를 다른 탈북 여성에게 이식해줬다. 남한에 연고가 없는 20대 탈북여성이 간경화로 고통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자 자신의 간 70%를 선뜻 떼 준 것이다. 2015년 11월 기자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던 김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녀는 긴 생머리에 두 볼에 보조개가 옴폭 패는 앳된 얼굴이었다. 김 대표는 탈북 후 10년 동안 중국에서 3번이나 강제북송 당했지만 끝내 남한에 올 수 있었던 과거를 담담히 털어놓으며 “인간은 한번 자유를 맛보고 나면 다시는 속박되고 싶지 않은 법”이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내 간밖에 없다는 상황이 매우 가슴이 아프다”며 간을 이식해준 탈북여성이 남자친구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를 처음 만났던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 대표는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유서같은 편지를 남겼다.

그는 이 편지에서 “당초 5일을 넘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온 것이 나 스스로 대견하다”며 “하지만 한계점이 임박했다는 것을 몸이 스스로 알리는 듯 며칠 전부터 수술한 간 부위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고 손끝도 저려온다”고 했다. 이어 “가슴이 답답하다. 텐트 입구를 비닐막으로 막은 것조차 숨이 가빠온다. 오늘은 화장실을 가는데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매일 가던 곳인데도 방향을 헷갈려 빙빙 돌기도 했다"며 "북한에서 오빠와 함께 식량이 없어 3일 굶을 때도 이렇게 하염없이 잠만 잤고, 그러다가 이미 영양실조에 걸렸던 오빠는 영영 눈을 감고 말았다. 나도 어쩌면 편안하게 잠들다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탈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내가 쓰러져서 나의 단식이 여기서 막을 내린다 해도 우리의 아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심장을 대변해 줄 대한민국 국민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키워주고, 철없는 어린 아들을 받아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해군 부사관으로 키워준 남편에게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드린다. 엄마를 지키려면 나라가 있어야 한다고 군 입대를 지원한 아들에게는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로서는 늘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심은 적 없는 저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주시고 아낌없는 성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다운 인생을 살아서 감사합니다”

김 대표를 실은 구급차가 떠난 뒤 주일룡 고대 트루스포럼 대표는 “통일부 앞에서 단식을 하다 구급차에 실려 간 탈북민이 벌써 두 명”이라며 “통일부 안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앞서 그는 통일부 앞에서 4일 간 노숙 단식을 했었다. 이날은 통일부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다. 주 대표는 “탈북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때까지 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김태희 대표가 금방 회복되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지금은 국민 저항권을 행사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제 우리는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주권이 무엇인지, 국민의 정부는 어떠해야 하는지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 저항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저항권은 헌법이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저항권을 행사해주시길 바랍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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