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60년 맞은 14일, 脫北 재일교포 등 40여명 ‘첫 북송선 출항’ 니가타港에 모였다
“친형제 임종이라도 지켜볼 수 있도록 하루속히 재회 이뤄지기를” 호소
영국 BBC 한국어판 '재일교포 북송 60년' 특집기사 보도
北 ‘로동신문’은 “김일성, 민족적 차별과 멸시를 받은 재일동포들에게 재생의 길 열어줘” 강변

지난 1959년 12월14일, 첫 재일교포 북송선이 출항한 일본 니가타항(港)에서 북한 현지에서 사망한 재일교포를 위한 추모식이 ‘재일교포 북송 사업’ 개시 60년만인 14일 열렸다.(사진=연합뉴스)

이른바 ‘북송(北送) 사업’으로 북한으로 보내진 재일교포들을 실은 첫 ‘귀국선’이 일본 니가타항(港)을 떠난 지 꼭 60년이 된 14일, 니가타항에서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북한 현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넋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북송 사업’이란 국제적십자연맹(ICRC)이 중개(仲介)하는 형식을 빌어 북한 정권과 일본 정부가 상호 협력해 ‘북한행(行)’을 원하는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보내는 사업을 말한다. 지난 1959년 12월14일, 재일교포들을 실은 첫 여객선이 니가타를 출항한 이래, ‘북송 사업’이 종료되는 1984년까지, 약 9만3000여명의 재일교포들과 그들의 아내 약 6000여명이 북한으로 보내졌다.

지난 2004년 기밀 해제된 국제적십자연맹(ICRC) 문서를 검토한 후, 테사 모리스-스즈키 박사는 자신의 저서 《북한으로의 탈출》(2007)을 통해 일본 정부가 배후에서 ‘북송 사업’을 적극 지원했다고 주장했다.(이미지=아마존 도서 정보)  

《북한으로의 탈출》(Exodus to North Korea, 2007)의 저자인 테사 모리스-스즈키 박사는 지난 2004년 기밀이 해제된 ICRC 문서를 검토하고 ‘북송 사업’의 배후에 일본 정부가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1956년 당시 ‘북한행’을 원한 재일교포의 수는 대략 2000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1955년 ‘최소 60만명의 북한 출신 재일교포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폭동과 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ICRC에 제출했음이, 기밀 해제된 문서들을 분석한 그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즉, ‘북송 사업’은 형식상 ‘인도주의 사업’이라는 외관을 취했지만 그 실질적 내용은 ‘재일조선인 청소’였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행’을 택한 재일교포들은 ‘직업과 의식주를 제공받게 될 것’, ‘북한은 지상 천국’ 등의 선전·선동을 그대로 믿고 북한행을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 ‘북송’됐다가 북한을 탈출한 이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증언과 자료들을 살펴보면 처음 북한 청진항에 도착했을 때의 실망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은 또 북한 사회에서 ‘적대계급’으로 분류돼 최하층의 삶을 살았으며, 북한에서 사는 동안 일본에서 겪은 차별과 가난보다도 더한 경험을 겪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 체제에 불만을 가진 이들 가운데에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들이 부지기수라고 북한 탈출에 성공한 북송 재일교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북송 사업’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니가타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 재일교포들 가운데 아직도 북한 현지에 생존해 있는 이들이 있고, 일본에 남겨진 ‘북송’ 교포들의 가족들도 존재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들의 자유로운 일본 왕래를 허가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북송 사업’의 현장이 된 일본 니가타항(港)에서는 지난 14일 ‘탈북’ 재일교포 40여명이 모여 북한 현지에서 죽어간 이들을 추도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사망한 가족이나 동료, 친구들을 향해 묵도(默禱)를 올리고,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은 친형제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 한다”며, ‘북송 사업’으로 헤어지게 된 사람의 재회가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호소했다.

일본 NHK의 14일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일본인 아내’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간 사이토 히로코 씨는 이번 집회에 참석해 “(북한) 현지에서 죽은 4명의 자식을 떠올리고 있었다”며 “지금도 (북한 현지에) 남아 있는 자식도 있기에 이 상황을 어떻게든지 해결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밖에도 NHK는 관련 기사에서 ‘북송 사업’의 실태를 비교적 심도 있게 보도했다.

북한 현지에서 사망한 북송 재일교포들을 추모하는 집회 소식을 알린 일본 NHK의 14일 기사.(이미지=NHK 공식 뉴스 웹사이트 캡처)

이와는 정반대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북한에서 15일 ‘북송 사업’을 찬양하는 기사가 북한의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 실린 것이다.

오형진 재일조선인력사연구소(在日朝鮮人歷史硏究所) 상임고문은 <귀국선의 고동소리는 우리 재일동포들의 영원한 신념의 메아리입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60년 전 12월의 그날에 울려퍼졌던 배고동 소리가 다시금 쟁쟁히 들려오고 그날의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마음이 마냥 설레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해당 기고문에서 “살아서 못 가면 넋이라도 안기고 싶었던 조국, 그 소원을 여한으로 품고 이역땅에서 생을 마친 령혼들도 자손들과 함께 귀국의 길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우리 동포들 누구나 감심(感心)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해당 기고문에서는 북한 김일성(金日成)을 찬양하는 문장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오 고문은 “민족적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어렵게 살아야만 하는 재일동포들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주신 분은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이었다”며 “공화국 정부는 재일동포들이 조국에 돌아와 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보장하여줄 것이라고 하시며 하루빨리 그들을 조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필요한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시었다”고 했다.

‘북송’ 재일교포들을 싣고 일본 니가타항을 떠나 북한 청진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환송하는 장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적힌 팻말이 여객선 난간에 걸려 있다. 사진 하단의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적힌 횡단막이 눈에 띈다.(사진=재일본대한민국민단)

그는 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혹은 ‘총련’)이 주도하는 소위 ‘민족 교육 학교’인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일본 정부가 중단한 것을 놓고 북한이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일본 반동들이 전대미문의 반(反) 총련 탄압책동을 감행할 때마다 총련의 합법적 지위를 굳건히 지키기 위한 국가적조치들을 연이어 취해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서 오 고문은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 적용대상에서 조선학교의 유치반들을 배제하는것과 같은 일본 반동들의 민족교육말살책동, 반 총련 탄압책동이 열백번 계속되여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일교포 북송 60년’은 제3국에서도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영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 BBC는 한국어판에 북송선 첫 출항일인 14일 해당 사업의 실태를 자세히 쓴 <재일교포 북송: 60년 전 오늘, 975명이 배를 타고 북한으로 이주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BBC는 해당 기사를 통해 테사 모리스-스즈키 박사의 주장과 함께 탈북에 성공한 ‘북송’ 재일교포들의 증언을 자세히 소개했다. BBC는 또 “일본 정부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다르게 북송 재일교포 문제는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며 “이것(‘북송 사업’의 일본 정부 측의 책임 문제)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면 북송 재일교포에 대한 인도적 범죄를 시인하는 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태경 재일북송피해가족협회 회장의 말을 인용하며 ‘북송 사업’과 관련해 일본 정부 측의 책임을 물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