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국립박물관의 문재인發 대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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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17 10:38:01
  • 최종수정 2019.12.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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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주문 생산 위해 수치스러운 왜곡과 과장
‘문화는 불온한 것’이라는데 충성파만 넘치는 시대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야본성-칼과 현’ 전시회에 다녀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가야사 복원’을 지시한 뒤 그 뜻에 따라 마련한 행사다. 대통령 코드에 맞춘 문제투성이의 전시회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구경해 보니 너무 심각했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 먼저 말해두지만 나는 가야의 역사가 소외 받고 있고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멸망한 나라들이 흔히 그렇듯이 신라와 백제의 좌우 협공을 받아 6세기 사라진 가야는 우리 역사에서 걸맞는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야사가 실제 이상으로 과장 왜곡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적 학술적 권위의 최고 위치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라면 더욱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이 전시회의 가장 큰 실패는 ‘공존’과 ‘화합’을 가야사의 핵심 주제로 내세운 데서 비롯됐다. 가야는 서기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여러 소국들을 말한다. 이들이 연맹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한때 제기됐으나 자료 연구와 발굴 조사가 많이 진전되면서 지금은 부정되고 있는 상태다. 가야 소국들이 그때그때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각 움직였다는 것이 주류 학설로 대체됐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에 대한 ‘지시 사항’은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것이었다. 가야는 영남뿐 아니라 남원 장수 등 호남 지역에까지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지금도 영호남이 같은 공동체 아니냐는 발상이었다. 국립박물관은 ‘공존’과 ‘화합’을 내세워 권력 최상부의 요구에 화답했다. 그 결과는 전에 없던 ‘대참사’ 수준의 전시회였다.

‘공존’이라는 전시회 주제는 전시장 이곳저곳에 목소리 큰 구호처럼 붙어 있었다. ‘가야는 하나가 아닙니다. 그리스 고대국가처럼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쳤습니다. 가야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공존의 가치입니다.’ 하지만 가야와 관련된 어떤 사료(史料)에도 가야가 공존과 화합을 모색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외부의 적에 가야 소국들이 힘을 합쳐 싸웠다는 문헌은 없으며 오히려 고구려 광개토왕의 공격을 맞아서는 각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나올 뿐이다. 또 ‘삼국사기’는 서기 209년 포상팔국 전쟁에서 아라가야(현재의 경남 함안)를 인근 8개 국가가 공격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 ‘공존’을 내세우려면 최소한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내부끼리 싸웠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번 전시회는 ‘공존’에서 더 나아가 ‘다문화’까지 내세우고 있다. ‘다문화’란 가락국(금관가야, 현재의 경남 김해)의 시조 김수로왕과 인도 출신의 공주 허황옥의 결혼을 말한다. 전시회는 ‘이 만남은 최초의 국제결혼이자 다문화 가족의 시작입니다’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학계에서는 김수로왕과 허황옥 설화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우리의 마음을 울리지만 어디까지나 설화일 뿐이고 역사와는 별개의 것이다.

한 가야사 전공 학자는 김해시의 김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이 같은 자리에 있지 않고 서로 1.2km 떨어져 위치한 점을 들어 이들의 결혼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이 지역을 대표했던 김 씨와 허 씨 양대 세력의 결합을 상징하는 설화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합리적 근거를 갖고 움직여야 할 국립박물관이 전설과 판타지를 역사적 사실로 포장하는 데 앞장섰다. 

‘영호남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도 주저 없이 이뤄졌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부산의 복천동과 경남 창녕의 유적 발굴에서는 신라 양식의 토기 등 신라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가야 영역으로 볼 수 없다는 학설이 지배적인데도 가야 영역으로 표시해 놓았다. 해당 유물들도 전시장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라도 지역에 위치한 남원과 장수의 가야 유적은 원래부터 가야 영역이었던 게 아니라 대가야가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복속시킨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엉뚱하게도 ‘영호남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었다. 이렇게 범위를 넓혀 나가다가는 일각의 잘못된 주장처럼 대구와 경산까지 가야 영역으로 편입될 판이다.

문제의 시발은 세계 어느 나라 대통령도 차마 하지 못했던 특정 시기의 역사 연구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국립박물관 역시 해도 너무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꼭 1년 전 ‘대(大)고려전’을 개최했을 때도 톡톡히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사연은 이렇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대고려전에 북한 유물을 출품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었다. 박물관 측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전시회 때 “끝까지 기다리겠다”면서 북한 유물을 전시할 자리까지 비워놓았으나 끝내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은 다른 문화시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이 꼽히지만 서로 자존심을 앞세우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박물관 측은 “영국 대영박물관이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고 큰소리 치지만 소장품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대 때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것 아니냐”며 “우리 소장품은 약탈 없이 모두 우리 돈으로 수집한 것”이라고 자랑했다. 세계적인 국립박물관 중 하나인 대만의 고궁박물관은 장개석 총통이 중국 대륙으로부터 쫓겨나올 때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를 갖고 있는 곳이 중국의 정통성을 갖는다”며 필사적으로 실어온 유물들로 꾸며졌다. 그만큼 국립박물관은 그 나라의 자부심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 그 자체와 맞먹는 곳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탄생한 우리 국립박물관은 힘든 고비를 넘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6.25 전쟁의 인천상륙작전 때 북한은 이북으로 퇴각하면서 국립박물관의 소장 유물을 몽땅 북한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박물관 직원들이 소장 문화재들을 포장했다가 잘못 포장했다며 다시 푸는 등의 방법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 북한군들로 하여금 시간에 쫓겨 유물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김재원 전 국립박물관장 자서전 ‘박물관과 한평생’에서 인용). 그만큼 초기 국립박물관 직원들의 사명감은 투철했다. 

오늘날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외형적인 규모 면에서 세계 6대 박물관에 꼽힐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국립박물관은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당분간 회복 불능의 치명상이다. 어느 시인은 “문화는 권력에 대해 늘 불온하다”고 외쳤지만 이번 정권 들어 그런 사람들은 찾기 어렵다. 충성파들의 목소리만 어지럽게 가득하다. 한번 망가진 문화는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려운 법인데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前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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