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세상만사] 정치란 본질적으로 지도자 혼자서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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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13 14:05:48
  • 최종수정 2019.12.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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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선택도 믿을 수 없고, 언론들은 선동질만 해댄다. 지식인·지성인이라는 학자, 교수 양반들은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해대느라 날을 지새는 동안 국민들은 쫄쫄 굶는다. 자유민주 체제는 언제 숨통이 끊어져 사회주의·공산 전체주의로 굴러 떨어질지 모르는 경계경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후세에 ‘쿠데타의 원흉’이라고 ‘적폐’라고 욕먹을 각오하고 나라부터 구해놓고 봐야 하는가?

‘박정희와 나비의 꿈’이란 주제로 펜앤드마이크가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와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및 기념관, 박정희 대통령이 교사 시절 하숙집이었던 문경의 청운각을 돌아보는 코스다. 중간에 금강휴게소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비 답사도 포함되어 있다(http://penntour19.com/33에 접속하면 관련 내용 확인 가능).

이 나라를 ‘사회주의의 길’로 맹렬전진하게 만들 패스트 트랙의 통과가 엄중한 시기에 ‘적폐의 원조’로 꼽히는 인물의 생가를 찾다니, "지금이 그렇게 한가할 때인가?" 하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시리라 믿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유·시장·진실’을 사훈(社訓)으로 내건 펜앤드마이크가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를 찾는 이유가 있다. 그 분의 재임 기간 한국 사회에 진정한 ‘근대화 혁명’이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결정적인 힘이 되고 있음을 독자·시청자 여러분과 현장에서 재삼 확인하기 위해서다.

체제변혁의 광란

한국을 사회주의화, 혹은 공산 전체주의화하기 위한 시도는 문재인 정부에서만 시도된 것은 아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 임시정부가 결성될 때부터 집요하고 조직적으로 시도되었다. 일제하에서도 그랬고, 해방 후에도 그랬다. 그들은 해방된 38선 이북에 들어선 소련 추종 공산 위성국가의 영역을 38선 이남까지 확장하기 위해 폭동·반란·게릴라 남파·간첩 공작을 마다하지 않았다. 급기야 6·25 남침전쟁까지 벌여 한반도를 국제전쟁터로 만들었지만, 그들의 의도는 실패했다.

그 후 이승만·박정희 시절을 비롯하여 소위 민주화 시절에도 체제변혁 시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망령과도 같은 주사파 집단, 친중·종북 집단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면서 체제변혁의 광란이 이 땅을 휘감고 있다.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 부근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 펜앤드마이크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탐방하며 그 분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사진 연합뉴스).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 부근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 펜앤드마이크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 육영수 여가 생가, 박정희 대통령이 교사 시절 하숙을 했던 청운각을 탐방하며 그 분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사진 연합뉴스).

사회주의, 공산 전체주의의 특징은 ‘개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집단(국가)을 위한 부속품으로서의 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오죽했으면 구호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을 위하여”이겠는가. ‘전체’를 위하여 ‘하나(개인)’은 희생·봉사·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의 끔직한 내면은 조지 조웰의 『1984년』이란 소설 작품을 통해 실감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 중에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란 게 있다. 더없이 완벽한 ‘국가주도’를 외치는 슬로건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질 필요가 없어졌다. 국가가 다 책임을 져주는 데 골이 비었다고 아등바등하는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공부분의 성과급이 폐지되었고,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해서 이익이 나면 빈둥빈둥 놀다가 적자가 난 조직과 공유를 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야근을 하고 싶어도 불법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며, 기회의 공정을 뛰어넘어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사회로 돌변했다.

국민의 선택마저 믿을 수 없다면?

이 정부 출범 이래 경제적 자유, 시장원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 이제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마저 사회주의, 전체주의 일당독재의 칼날이 번득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미친 듯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공수처는 중국 감찰위원회를 그대로 옮겨온 무소불위의 기구다. 이미 망해 나자빠진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실천을 위해 법률·도덕·인권·양심·사회적 통념 따위는 이미 폐기처분한 지 오래인 집단이 이런 미치광이 기구를 자유민주 국가에 도입하려고 칼날을 번득이고 있다.

이런 집단과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참으로 애처럽고 안 된 이야기지만 ‘투표권’과 ‘사실 추적(fact finding)’ 밖에 없다. 하지만 자유민주 체제에서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없다. 깨어 있는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하고, 각성한 언론들이 제 역할만 성실히 수행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민주 체제는 훌륭히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과 언론이 미몽을 헤매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 나라 유권자들은 조봉암에게 216만 표를 던져 2위로 만들어주었다. 조봉암이 누구인가? 그는 ‘좌우합작’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 아니던가. 6·25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년 후에 이 나라 유권자들이 내린 투표의 결과가 이랬다.

                                                                  제4대 정·부통령 선거 결과

4·19로 집권에 성공한 장면 정부는 무기력 정권의 표본이었다. 정치력, 행정력, 카리스마 등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결여된, 유약하고 소극적인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가치관이 없었다. 덕분에 이 나라는 사회주의·공산 전체주의를 외치는 체제변혁 세력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나라부터 구해놓고 봐야 한다

1960년 11월 초에 결성된 서울대의 민족통일연맹은 창립대회에서 공산당이 참여하는 전 한국 보통선거를 주장했고, 1961년 5월에는 남북 학생회담을 제안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1961년 1월에는 사회대중당, 혁신당, 사회당, 통일사회당 등 4개의 혁신 정당을 비롯한 16개 정당 사회단체들이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반외세 민족주의, 즉각적인 남북협상, 중립화 통일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 행정부는 1960년 11월 22일 작성한 「한국의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1961년 3월 초에는 「팔리 보고서」가 등장했다. 이 보고서 작성자인 휴 팔리(Hugh Dfarley)는 장면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통렬히 비판한 후 “이 정부가 4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사태를 내버려둘 경우 한국에서는 공산혁명이나 그와 비슷한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하루빨리 특명전권대사를 파견하여 개혁을 단행하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 CIA는 3월 21일, 「한국 상황에 대한 단기적 전망」이라는 정보평가서를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했다. 이 평가서는 “4·19 1주년의 시위사태가 극단적인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한국 정부가 장기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육영수 여사는 남편 박정희 대통령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민생을 챙기고, 청와대의 야당이었으며,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고, 국민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선물한 분이었다(사진 연합뉴스).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육영수 여사는 남편 박정희 대통령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민생을 챙기고, 청와대의 야당이었으며,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고, 국민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선물한 분이었다(사진 연합뉴스).

박정희가 마주했던 고민은 바로 이 점이었다. 국민의 선택도 믿을 수 없고, 언론들은 선동질만 해댄다. 지식인·지성인이라는 학자, 교수 양반들은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해대느라 날을 지새는 동안 국민들은 쫄쫄 굶는다. 자유민주 체제는 언제 숨통이 끊어져 사회주의·공산 전체주의로 굴러 떨어질지 모르는 경계경보, 공습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후세에 ‘쿠데타의 원흉’이라고 ‘적폐’라고 욕먹을 각오하고 나라부터 구해놓고 봐야 하는가? 박정희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총칼을 동원한 ‘쿠데타’의 방식으로 집권하여 대한민국을 진정한 혁명의 길로 이끌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제1단계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중심이 된 쿠데타군이 무력으로 막부를 쓰러뜨리고 300여 개의 번(藩)을 모두 없앤 후 중앙집권적인 통일정부를 구성하는 단계다. 제2단계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한 체제 개편 단계, 제3단계는 부국강병의 시대로 구분된다.

박정희의 국가 근대화를 위한 대장정도 세 단계로 구성된다. 그는 5·16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메이지유신의 중앙집권적 통일정부 구성단계와 비슷). 이어 경제건설을 위해 한일 수교를 추진했는데, 야당과 대학교수, 학생, 시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통한 제2의 혁명을 감행했다.(메이지유신의 근대화를 위한 체제 개편 단계와 비슷). 이어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방위산업과 전 산업의 수출산업화 완성으로 국가안보를 지켜내고 명실상부한 선발 중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10월 유신이라는 제3의 혁명까지 감행했다(메이지유신의 부국강병 단계와 비슷).

세 차례의 다단계 혁명

박정희는 역사적 고비마다 세 차례의 다단계 혁명을 통해 한국을 후발 산업국가로 변모시켰다. 박정희와 메이지유신을 결부시키는 시각은 일본에서도 존재한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정치평론가인 후지와라 히로다쓰(藤原弘達)와 작가 겸 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대담 「일본의 현 정국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바란다」에서 두 사람은 박정희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내놓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주체적 인간상을 가진 정치 스타를 고른다면 전국(戰國)시대 때 일본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명치유신의 주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명치유신 때의 주역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와 오쿠보인데 사이고와 닮은 사람은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와 중국의 모택동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사이고와 오쿠보를 혼합한 인물이라고 보여진다.…(중략)…위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정치라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지도자 혼자서 하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그렇다. 정치란 본질적으로는 지도자 혼자서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힘이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체제를 지켜냈다. 그 아름다운 흔적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구미로, 서울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관으로 간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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