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자유한국당의 혁신과 자기희생에 대한 약간 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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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13 10:28:21
  • 최종수정 2019.12.13 21:02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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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자유한국당이 현역 의원 50% 이상을 물갈이 하겠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솔직히 말씀드려 그게 가능할지 그리고 무조건 숫자로 딱 찍어놓고 밀어붙이는 것이 합리적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50%에 해당하는 뛰어난 인재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야훼와 딜deal을 한다. 처음에는 선한 사람 백 명을 면책조건으로 했지만 그게 줄고 줄어 열 명까지 내려왔고 그나마 그 열 명도 채우지 못해 도시는 불길에 휩싸이고 만다. 성경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자유우파의 실력이 그렇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라. 신선하고 전문가인데다 대중의 심리적인 저항을 받지 않는 동시에 이념에 충실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라도 있는지. 그게 가능할 정도로 한국당의 인재풀이 든든했으면 이렇게까지 몰리지도 않았다. 절대, 쉽지 않다. 어찌어찌해서 반을 갈아치웠다고 치자. 학교에서, 사회단체에서, 기업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떠들던 것과 현실정치는 많이 다르다. 의회정치라는 틀 안에서 실존하는 정치적 반대세력과 맞붙는 일은 실력과 자세와 노하우라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제대로 된 경험자가 받쳐줘야 하는데 이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으면 오합지졸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나쁜 50%가 더 나쁜 50%로 바뀌지 않는다고 절대 보장 못한다. 어항 물을 갈아줄 때도 3분의 1만 새 물로 채운다. 물을 맑게 하겠다는 욕심으로 그 이상으로 갈면 정작 물고기들이 견디지를 못한다. 숫자로 정해놓고 무조건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불출마 선언이 능사일까

자기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불출마 선언을 하는 한국당 의원들이 늘고 있다. 더 나와야 한다고 한다. 무조건 바람직한 일일까. 불출마 선언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생각이 아예 없거나 뻔뻔하게 참고 이 시기만 넘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인간들은 절대 그런 액션 안 취한다. 그러면 결국 생각 있는 사람은 다 나가고 욕심 있는 사람만 남는다.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 대신 문제 있는 사람만 남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온다. 자꾸 부추겨서 그나마 양심 있는 사람들까지 필요 이상의 결단을 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물론 지은 죄가 있는 분들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건 좋지만(본인이 제일 잘 안다) 단지 개혁과 헌신이라는 측면에서 자신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사람까지 미리 짐을 쌀 이유는 없다. 무조건 불출마를 조장하는 이상한 분위기는 이제 좀 그만 자제했으면 좋겠다.

문제는 공천혁명이다

문제는 50% 물갈이 방침이나 불출마 선언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울림을 줄 수 있는 공천만이 유일한 선거 전략이자 해법이다. 공천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다. 이 이벤트에서 자유한국당은 감동을 주기는커녕 내내 국민들에게 짜증과 환멸만을 안겨줬다. 미리 표를 깎아먹고 들어가는 게 자유한국당 공천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공천개혁의 수준을 넘어서 공천혁명이 없으면 내년 총선은 치루나 마나한 이유다. 일단 틀부터 왕창 바꿔야 한다. 이제껏은 당 원로나 중진이 위원장을 맡고 민간에서 이를 보조하는 형식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아는 얼굴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게 세상 이치다. 개인적으로는 공천 대상자들과 이해관계, 친소관계가 별로 없는 민간에서 위원장을 맡고 당료가 조언을 하는 것이 옳고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납득이 안 가는 인물이 내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태연하게 공천을 통과하는 일이 안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번 공천 심사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항목이 있다. ‘공감능력’이다.

호감과 공감 능력은 같은 말

정치에서 지지도보다 더 중요하고 무서운 게 비호감이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60%를 넘은 지 오래다. 60%면 이제는 뭘 해도 그냥 싫은 수준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비호감은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온다. 내 문제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자기 문제처럼 고민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이다. 2017년 12월의 낚싯배 사고를 기억하실 것이다. 당시 문재인은 사고 발생 3시간 만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방문했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는 사망자에 대한 묵념까지 했다. 웃기는 일이지만 절대 웃을 일이 아니다. 15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에서 문재인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그저 유족과 희생자들에 대한 립 서비스와 적절한 표정 관리만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기’라고 불러도 좋고 ‘쇼’라고 빈정거려도 좋지만 어쩌랴 그것이 ‘정치’인 것을. 좌익들은 이런 행동에 매우 익숙하다. 약자의 가난과 고통과 불만에 기생해서 세를 넓히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해서 이들은 억울한 상황이나 피해자만 있으면 바로 눈물부터 쏟고 본다. 자유우파는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이념 자체가 그렇다. 각자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살기를 바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내 삶의 영역에 관여하는 것도 싫다. 그러나 그건 일반인들에게나 어울리는 삶의 자세고 정치는 달라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엘리트 정당, 웰빙 정당 소리를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공감에 대한 이해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 그리고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을 골라서는 답이 안 나온다. 딴 건 몰라도 이 의견만은 좀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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