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소수민족 집단학살 합리화..."합법적인 대(對)테러 활동"
국제사회 일제히 경악..."국제사회 비난 빗발치더라도 내년 총선 압승 위한 길 선택"
미얀마 민주화 운동 주도한 수치 고문...동질감 느낀 한국인들이 호평해오던 인물

ICJ 법정에 변호인단장으로 출석한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사진 =AFP 연합뉴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이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전면 부인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가 국제사회에서 소수민족 집단학살을 합리화하는 순간이었다. 과거 수치 고문은 군부 정권에 맞선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그러나 이젠 군부에 편승해 소수민족 집단학살을 對테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과 AFP 통신에 따르면 수치 고문은 11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로힝야족 집단학살’ 재판에서 “군부의 진압 작전은 로힝야족 테러 집단을 소탕하려는 합법적인 대(對)테러 활동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재판은 감비아 법무장관이 이슬람국가기구(OIC) 53국을 대표해 미얀마 군부를 2016~2018년 로힝야족 인종 학살(genocide) 혐의로 제소하면서 열린 것이다. 수치 고문은 로힝야족 집단학살 사실을 반박하기 위해 헤이그까지 날아가 직접 재판에 참석했다.

미얀마는 90%의 국민이 불교도이다. 하지만 로힝야족은 미얀마 내의 이슬람 소수민족이다. 따라서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로힝야족은 불법 무슬림으로 배척받았다. 수치 고문은 대다수 미얀마인들과 더불어 ‘로힝야족 인종 학살’을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는 학살을 주도한 장군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우리는 당신과 함께 한다”라는 글귀까지 넣은 포스터를 제작했다. 가디언은 “미얀마 양곤 시내에는 그의 해외 변론 성공을 기원하는 옥외광고판이 즐비하다”고 국내 사정을 전했다.

피소된 군부를 대신해 피고석에 앉은 수치 고문은 국제사법재판소의 이날 재판에서 “로힝야족의 무장 세력은 사전 조율을 통해 전면적으로 무장 공격을 했고, 이에 미얀마 정부군이 대응을 한 것일 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에 국제사회는 일제히 경악했다. 국제사회는 수치 고문이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다시 압승하기 위한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단적으로 워싱턴포스트는 “수치 고문이 국내 정치를 의식해 로힝야족에 대한 강경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치 고문은 미얀마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아웅산의 딸이다. 그는 군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가로 15년간 가택 연금을 당하면서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기 전후로 많은 한국인들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면서 수치 고문을 지도자로서 호평해왔다. 수치 고문은 지난 2015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NLD)의 압승으로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가 이제는 소수민족 집단 학살의 주범인 미얀마 군부를 적극 변호하는 역할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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