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세상만사] 북핵 해결? 결국 한국의 핵무장밖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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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09 11:02:07
  • 최종수정 2019.12.0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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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맞고 죽을 것이냐, 아니면 전쟁을 각오하고 북핵을 제거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핵무장을 하라. 박정희의 정책과 의지를 생각하라. 우리는 오래 전에 핵무기를 개발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기술도 자금도 풍부하다. 망설이다가 기회를 잃으면 죽음뿐이다.

김정은이 또 다시 백마 타고 백두산에서 설쳐대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소개되는 것을 보니 뭔 일이 곧 벌어질 것 같다. 보다 진화된 ICBM, 혹은 수소폭탄 실험을 예측하는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ICBM이건 수폭 실험이건 이제 올 데까지 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우리는 몰려 있다. 제네바 핵 합의, 6자회담, 북한에 경수로 원전 건설, 중유 50만 톤 제공, 영변 핵시설 폭파 쇼, 싱가포르 미북 회담,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남북 정상회담….

그 동안 북한 비핵화라는 미명하에 숱한 회담과 합의가 진행되었다. 모두가 시간 벌기, 북한에 돈 퍼주기, 에너지 제공으로 결론이 났다. 한 마디로 북핵 사기극이 수십 년 간 진행되었고, 북한은 합의·협상의 커튼 뒤에서 열심히 핵무기 고도화에 성공했다.

누가 뭐래도 핵심은 뻔하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 대적할 경우 핵무기에 맞아 죽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다. 수많은 핵 전략가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북핵개발 이적행위의 주범

오늘 대한민국 국민의 운명을 북핵의 노예로 전락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이 나라의 대통령과 정책결정권자, 그리고 정치인들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을 북한에 퍼주어 핵무기 개발을 도운 이적행위자들이다. 이들을 역사의 법정에 고발한다. 누가 뭐래도 이들은 북한 핵 개발을 용인한 죄로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가 되어야 마땅하다.

김영삼부터 문재인에게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국민 세금을 북한에 퍼주어 북핵 개발을 도운 이적행위자들이다. 이들을 역사의 법정에 고발해야 한다(사진 연합뉴스).
김영삼부터 문재인에게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국민 세금을 북한에 퍼주어 북핵 개발을 도운 이적행위자들이다. 이들을 역사의 법정에 고발해야 한다(사진 연합뉴스).

미국의 정책 변화고 나발이고, 세계 여론이 어떻고 저떻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핵폭탄 맞아죽은 다음에 지옥에 가서나 따지기 바란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북핵을 제거하는 길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두 차례 미국의 무지막지한 반대를 무릅쓰고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박정희 핵개발은 모두 미국의 정책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아시아 나라의 안보는 스스로 알아서 지켜라”라고 선언했다. 그 즉시 주한미군을 철수하자 박정희는 “미군은 갈테면 가라”고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에 돌입했다.

박정희는 1970년대 초 프랑스와 손잡고 핵무기 설계 개발을 끝냈으며, 프랑스로부터 재처리 기술을 들여오고, 캐나다가 제공하는 연구용 원자로(NRX)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71년 3월 19일 고리1호기 기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는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하자 "미국은 갈테면 가라"고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에 돌입했다. 박정희의 원자력발전 사업은 핵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사진 연합뉴스).
1971년 3월 19일 고리1호기 기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는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하자 "미국은 갈테면 가라"고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에 돌입했다. 박정희의 원자력발전 사업은 핵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사진 연합뉴스).

1974~75년 무렵 미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핵연료 재처리시설 도입계획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압력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미 CIA의 서울 주재 책임자로 3년 간 근무하고 귀국한 도널드 그레그는 심지어 “박정희가 핵 개발을 계속할 경우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여러 차례 할 정도였다. 결국 미국 정부는 프랑스·캐나다에 압력을 넣어 재처리 기술과 NRX를 한국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했다. 그 결과 1단계 핵개발이 좌절되었다.

박정희가 2단계 핵개발에 돌입한 것은 카터 덕분이다. 미친 듯이 인권 쌍나팔을 불어대던 카터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 또 다시 주한미군 철수, 핵무기 철수 정책을 선언했다. 박정희가 1976년 11월 또 다시 핵무기 개발에 돌입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58년 물리학자와 기술자들을 소련에 파견하여 핵개발 관련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고, 1959년에는 소련·중국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과 의정서를 교환했다. 1962년 김일성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한인석이 핵개발 연구논문이 발표됐고, 1965년에는 소련으로부터 2MW급 소형 시험용 원자로를 도입했다. 북한은 자체기술로 이 원자로를 8MW급으로 확장했다.

1968년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10만kW의 원자력터빈 발전기를 도입하여 북창화력발전소에 설치했다. 이 발전기의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경우 연간 10㎏ 정도의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할 것으로 파악됐다.

박정희는 왜 두 차례나 핵개발을 시도했나?

1970년대에는 북한 핵물리학자들이 소련의 두보나 핵연구소에 파견되었고, 중국에도 미사일 전문가를 보내 연구를 진행했다. 북한은 자체기술로 30만MW급의 제2시험용 원자로 개발계획을 세웠다. 이 원자로가 정상 가동될 경우 연간 핵폭탄 한두 개를 만들 정도의 플루토늄 확보가 가능해진다.

게다가 북한은 영변에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추진했다. 우리 정보기관은 이것이 상업용 발전소가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공장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의심했다. 당시 북한은 과학원 산하의 원자력연구소, 핵물리연구소, 핵전자연구소, 방사화학연구소에서 극비리에 원자폭탄 제조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는 핵무기 보유가 가능할 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 외에 사정거리 900㎞의 전술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것이 1990년대 초에 완성되면 핵탄두 운반수단까지 보유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박정희는 자신이 준비한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여 1982년에 핵개발을 완성하면 북한과의 핵개발 경쟁에서 10년 정도 앞서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또 다시 핵개발을 추진한 근본 이유다. 이번에는 1단계에서의 실패를 냉정하게 분석한 후 재처리와 플루토뇸 획득을 위한 연구용 원자로를 독자 개발하는 방식으로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핵연료개발공단은 극비리에 ‘화학처리 대체사업(일명 핵연료 국산화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재처리 관련 프로젝트의 위장 명칭이었다. 재처리 프로젝트는 1981년 완성이 목표였다.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 확보를 위한 연구용 원자로 국산화 개발은 ‘기기장치 개발사업’이라는 위장 명칭으로 원자력연구소의 장치개발부가 담당했다. 계획에 의하면 1978년까지 설계 완료, 1979~1981년 사이에 건설 완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연구용 원자로가 완성되어 사용 후 핵연료를 얻고, ‘화학처리 대체사업’을 통해 재처리시설을 확보하면 핵폭탄 제조용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핵폭탄 제조는 시간 문제였다. 당시 원자력연구소와 핵연료개발공단은 1981~1982년 무렵 핵무기 보유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박정희가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철없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닉슨·카터 같은 자국 이기주의자, 철부지 인권옹호자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하니 이 나라 국민들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기 위해 그 모진 가시밭길을 걸은 것이다. 그는 결국 핵무기 완성을 보지 못하고 김재규의 흉탄에 서거했다.

믿을 수 없는 미국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와 미국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이제부터 우리는 확실하게 따지고 가야 한다. 미국은 우방국인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그토록 가혹하게 핵개발 봉쇄하기 위해 별 짓 다하면서도, 적국인 북한 핵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너그럽고 아량 있게 대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김재규는 왜 하필 1979년 10월 26일 밤에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을까?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와 미국은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대체 미국은 왜 우방국인 한국의 핵개발은 그토록 가혹하게 봉쇄했으면서, 북한 핵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아량있게 대하는지 우리 국민들은 따져야 할 때가 왔다.
김재규는 왜 하필 1979년 10월 26일 밤에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을까?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와 미국은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대체 미국은 왜 우방국인 한국의 핵개발은 그토록 가혹하게 봉쇄했으면서, 북한 핵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아량있게 대하는지 우리 국민들은 따져야 할 때가 왔다.

닉슨, 카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분석해 보면 미국은 언제라도 한국을 왕따시키고 북한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대한민국 지도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핵폭탄 맞고 죽을 것이냐, 아니면 전쟁을 각오하고 북핵을 제거하느냐. 전쟁이 부담이 된다면 우리도 핵무장을 하여 남북 간에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라. 

박정희의 정책과 의지를 생각하라.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핵 관련 기술 수준 정도면 몇 개월이면 북한 핵무기보다 훨씬 고도화 된 핵무기 보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오래 전에 핵무기를 개발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기술도 자금도 풍부하다. 망설이다가 기회를 잃으면 죽음뿐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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