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도약, 경제가 필요조건이라면 공정한 법 집행, 전문가 우대, 높은 직업윤리 등은 충분조건
우리나라 정치 현실, 조국 사태로 ‘한국은 불공정 사회’라는 트라우마 안겨
'공정' 불똥 잘못 튀어 '평준화 교육 강화'로 이어져...공정의 가치를 오독(誤讀)한 결과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 청와대의 지자체 선거 개입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거짓말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O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

우리 정부는 지난 10월 25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의 위상, 대내외 여건, 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에 “미래 협상에 대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새로운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개도국 특혜는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으며, 미래 협상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도국 졸업을 선언해도 선언적 의미 외에 당장은 큰 불이익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선언적 의미로서의 불이익 밖에 없을 거라는 정부 주장은 현실을 호도(糊塗)하고 있다. 새로운 협상이 아니더라도 기존 WTO체제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순간 까다로운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WTO 개도국' 지위를 기반으로 국내 농산물 시장을 고율 관세로 보호하고, 농업부문에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전체 농산물의 17% 이상을 특별·민감 품목으로 지정함으로써 관세 및 이행 기간 등에서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개도국 지위를 면하게 되면 전체 농산물의 4%만 특별·민감 품목 지정이 가능하고 그 외는 관세를 인하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농업을 ‘산업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는 소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형 시설농인 ‘동부팜’은 농민단체의 반발로 좌초됐고, 농업생산성을 제고시키지 못해 농업은 노인과 부녀자가 종사하는 산업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이상 농업의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 국가 보조에 의존한 기존 자급자족 기반에서 탈피해, 첨단 4차 산업 기술을 접목하고 연구개발(R&D)을 통해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해야 한다. 

O 경제적으로 한국은 이미 선진국 

한국은 2018년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한국은 4대 스포츠 제전(하계·동계올림픽, 축구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을 모두 개최한 다섯 번째 나라가 됐다. 2018년에 한국은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해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에 일곱 번째 멤버로 안착했다. 명실상부 ‘G7’에 합류한 것이다.

개별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미국 경제지 포천이 발표한 ‘2018년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15위에 랭크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215억794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IT기업 가운데서는 미국 애플(11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 외 한국 기업으로 ‘SK그룹 지주사인 SK㈜, 현대자동차, LG전자, 한화 등’ 총 16개가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한국은 선진국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국제기구인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와 국제 채권국가 협의체인 ‘파리클럽’의 회원국이다. 

2016년 기준, 전 세계 GDP의 합은 73조 달러이며 전 세계 인구는 77억 명으로 전 세계 1인당 GDP는 1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한국은 2018년에 일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었기 때문에 약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한국의 1인당 GDP는 전(全)세계 1인당 평균 GDP의 3배에 해당한다. 전인류를 모집단으로 삼았을 때 한국은 평균적으로 ‘최상류층’에 속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WTO 개도국 졸업기준은 4개로 “OECD 가입국이면서 주요 20개국(G20) 회원이고,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세계 상품무역에서 비중이 0.5% 이상 되는 국가”이다. 한국은 이들 4개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선진국에 진입한 것이다. 개도국을 주장하면, 선진국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전(全)지구적 의무와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나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O 한국은 경제 외적으로 선진국인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을 정의하기는 쉽다. 분명한 지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산다고 선진국은 아니다. 화려한 건물이 즐비한 중동 산유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에선 공통점이 발견된다. 고도화된 경제력 바탕 위에 안정된 정치제도, 특권 불용, 공정한 법 집행, 축적된 신뢰자본, 전문가 우대, 높은 직업윤리와 문화적 소양, 배려와 관용, 다양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경제력이 선진국의 필요조건이면 정치·사회·문화적 성숙은 충분조건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 가. 지난 11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전반기 성과에 대해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 국가를 정상화했고,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시켜 나갔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같은 날 검찰은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을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남편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물론 장관으로 재직할 때 심지어는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진 날에도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사실이 적시돼있다.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전(全)영역으로 확산시켜 왔다는 문재인 정부 임기 전반기에 이 같이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국 일가의 부정과 편법은 덮어 둔 채 정의와 공정을 외쳤기에 국민적 공감과 울림이 있을 리 없다. 공정은 ‘구두선’일 뿐이다.

‘공정’은 일종의 ‘당위’이기 때문에, ‘왜 공정인가’는 질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왜 ‘지금’ 공정’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정의와 공정’ 주창이 국면전환 용(用)이어서는 안 된다. 이미 권력형 비리 부정과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문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며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은 사회주의자면서 자유주의자’라고 했다. 그런 그를 체제 수호자 역할(gate keeper)을 수행하는 법무장관에 임용했다. 그 점에 대해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O ‘한국, 불공정 사회’라는 트라우마 안 긴 조국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은 공정한 사회가 아니었구나’라는 자괴감을 준 조국 전(前)장관은 지금도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다. 조국은 지난 11월 11일 배우자 정경심이 기소된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감당해 보려 하였지만, 제 가족과 지인들을 대상으로 전개되는 전방위적 수사 앞에서 가족의 안위를 챙기기 위해 물러남을 택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족과 지인을 향한 전방위적인 수사’의 원인 제공은 누가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정의(不正義)한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는 당연한 것이다. 조국 장관이 물러난다고 ‘가족의 안위’가 챙겨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지금도, 저와 제 가족 관련 사건이 검찰개혁을 중단하거나 지연시키는 구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기술은 적절치 못하다. 이는 ‘자신이 검찰 개혁을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하려해도 가족 수사로 인해 그렇지 못했으니 양해해 달라’는 견강부회인 것이다. 검찰개혁에 속도가 붙지 않는 것은 ‘공수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아서이지 조국 가족 수사로 그런 것은 아니다. ‘개혁’을 붙인다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조국은 마치 ‘자신이 검찰개혁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듯이’ 말하고 있다. 공수처을 신설하고 검·경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이 개혁인 가. 국민 모두에게 이로워야 개혁이지 집권세력에게만 이로운 것은 개혁일 수 없다. 조국이 그토록 부르짖는 검찰개혁은 ‘개악’일 수도 있다.

“저의 모든 것이 의심받을 것이고, 제가 알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 하는 일로 인해 곤욕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저에 대한 기소는 이미 예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치민다. 그렇다면 사모펀드는 ‘알지 못하고’ 서울대 인턴 허위증명서는 ‘기억 못 한다’로 방어할 셈인가. “기소는 이미 예정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자신이 마치 속죄양이나 된 것 같은 약자 코스프레를 떠는 것이다. 
  
O 공정의 불똥 잘못 튄 평준화 교육 강화 

정부는 전국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를 오는 2025년에 일반고로 일괄 전환키로 했다. 조국 사태로 드러난 교육의 불평등·불공정 문제의 뿌리가 마치 자사고·외고·국제고에서 연원한 것처럼 몰아 이들 고교의 폐지를 강행하고 있다. 불공정은 조국의 반칙과 비행(非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 고등학교는 죄가 없다. 공정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잘 못 튄 것이다.

자사고와 외고 등을 폐지해야 한다는 쪽의 논리는, 학생 선발권을 갖는 자사고와 외고 등이 학교 간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교육의 불평등을 일으켜 ‘공정의 가치’를 해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선발권을 박탈해 추첨에 따라 학생을 배정하면 교육 불평등이 해소될 것인가. 그렇게 믿는다면 착각이다. 고등학교 평준화가 확대됐을 때 나타난 현상이 ‘강남 8학군’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헌법에서의 교육받을 권리는,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을 권리와,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교육환경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는 2중적 의미에서의 권리이다. 

시행령 하나를 개정해 그동안 나름 뿌리를 내려온 각종 특목고 등을 일시에 폐지하는 것은 징치권의 폭력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교육은 생태계여야 한다. 다양한 설립 목적과 다양한 선발기준의 학교가 공존해야 하며 그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획일적인 교육을 통해 수월성을 포기하고 교육을 배급하는 나라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에 기초과학 노벨상 수상자는 한명도 없다. 일본은 2018년 말 현재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25명이다. 공정의 가치를 오독(誤讀)한 나머지 불평등 해소라는 위선과 허언으로 백년대계인 한국의 교육과 교육제도를 후퇴시키고 있다. 

O ‘권력의 사유화’ vs ‘국가의 사유화’ 

검찰이 조국 가족 사모펀드에 대한 수사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조국을 포함한 조국 일가가 ‘미공개 정부를 이용해 사익을 편취했느냐’ 여부이다. 영어교재 사업을 영위해 온 ‘WFM’과 자동차 부품업체인 ‘익성’이 갑자기 ‘2차 전지 사업’으로 방향을 튼 과정에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공직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은 셈이다. 국민을 위해 행사하라는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한 것이다. 

청와대의 지방자치선거 개입 의혹은 차원을 달리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개입했다면 벌써 탄핵을 당했을 것이다. 닉슨대통령의 탄핵은 ‘민주당사에 비밀 도청장치가 설치됐다’는 시실의 인지 여부에 대해 거짓말을 해 탄핵 당한 것이다. 

아직은 수사 중이지만 당시 당선이 유력시되던 야당 후보 김기현에 대한 첩보를 여당 후보 송철호 측이 청와대에 건네주고 청와대가 ‘하명수사’를 통해 경찰로 하여금 야당 후보가 공천 받는 날 압수 수색에 들어가게 했다면, 그리고 지방 선거 전에 청와대 인근에서 여당 후보 측과 청와대 인사가 만나 선거 공약 조율까지 했다면 이는 명백한 선거개입인 것이다. 이는 ‘권력의 사유화’를 넘어 국기를 흔드는 ‘국가의 사유화’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청와대 관계자들이 내놓은 해명이 모두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비리 첩보를 경찰에 넘긴 후 수사 상황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노영민 비서실장은 경찰이 보고해 보고 받았을 뿐이라고 했고 경찰은 ‘청와대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첩보를 ‘소셜미디어로 제보받았다’고 했지만 제보 당사자는 ‘청와대가 먼저 물어 와서 알려줬다’고 했다. 하나의 거짓말은 10개의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 신뢰가 바닥을 칠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문재인 청와대는 거짓말 하는 DNA가 없다’고 까지 오버했다. 

이렇게 까지 일이 꼬인 것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현직에 근무하면서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임종석 전비서실장과 조국 전민정수석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문제에 대해선 그토록 열정적으로 SNS를 통해 변명하던 조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과 대통령이 아끼는 유재수 전 부시장감찰 중단에 개입했다는 세간의 ‘합리적 의심’에 대해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아니면 그 짐은 모두 최고 권력자에게로 넘어간다.   

O 에필로그

조국이 2013. 10. 28일 오후 12:51에 지인에게 보낸 리트윗이다. 내용은 이렇다. “다들 익숙하시지요. 범죄자들의 변명 기법. 1) 절대 안했다고 잡아뗀다. 2) 증거가 나오면 별거 아니라고 한다. 3) 별거 같으면 너도 비슷하게 안했냐고 물고 늘어진다. 4) 그것도 안되면 꼬리 자르기 한다.”

당시 조국은 대학교수였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정권 실세인 것이 한국의 비극일 수 있다. 2013년에 특별히 떠오르는 정치 현안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예언가’처럼 행동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예언이 그대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예언을 했다. ‘꼬리 자르기’가 그것이다. 그는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정치철학과 도덕자본이 결여된 집단에서 그는 내쳐질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10월 ‘개도국 졸업’을 선언함으로서 선진국에의 진입을 공식화했다. 경제는 압축성장이 가능했지만 관습, 지력 등 사회화를 통해 형성되는 제도와 의식은 압축발전이 안 된다. 마차로 치면 두 바퀴의 크기가 다르니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문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2020년 예산이야말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 강한 나라로 가는 발판’이라고 자평했다. 미증유의 적자국채(발행한도 60조원)를 발행해 513조원에 이르는 초팽창 예산을 편성한 것이 ‘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나라로 가는 발판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정신승리법’에 취해 있다.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이고 그 나라의 정치지력과 경제지력에 의존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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