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민 숭의여고 교사] 정의로운 역사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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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09 10:50:31
  • 최종수정 2019.12.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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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상 그 자체보다 그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view)이다. 같은 현상도 서로 다른 사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 현상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한다. 올 한 해는 한일관계에 대해 유난히도 많은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던 해이기도 했는데, 매체나 공식 문서 등에 담긴 글들을 면밀히 읽어보면, 한국 사회에 점점 더 도도하게 확산되어 나가는 좌파적(사회주의적) 역사인식의 일각을 엿볼 수 있다. 이미 좌파적 사회관을 의식도 못한 체 받아들여온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전혀 문제점을 인식하지도 못할 지도 모른다. 그 대표적인 개념 중 하나가 '역사정의'가 아닐까 한다.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도 모자라 historical justice를 들고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잘 알다시피 미국에서 social justice worriers라는 단어는 좌파 학생 및 지식인을 조롱하는 용어로 쓰인다. 많은 한국인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대한민국 사람 중 자신이 역사정의를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개인은 얼마나 될까? 아니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그러한 용어가 별 생각 없이 쉽게 쓰여지는 사회의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그 사회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공식적인 인식 수준이 몽환적인, 즉 이성적이기 보다 감성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면 그러한 가장 전형적인 사회인 북한 사회를 보면 된다.

인간이 신도 아닌 이상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정의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20세기 공산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자신들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특정 집단들을 '인민의 적'으로 몰아서 인민재판을 해서 숙청시키는 모습을 많이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정의에 집착하는 사고 경향은 전형적으로 좌파적 사회관 혹은 집단주의적 사회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을 정의롭지 못한 부패한 집단과 정의롭지만 힘이 약한 집단으로 나누는 그러한 social view는 Marxism에서 가진자(브루주아)와 못 가진자(프롤레타리아)로 인간을 바라보는 구도의 연장선에 있다. 사회주의는 바로 그러한 이분법적 사회관을 바탕으로, 정의롭지 못한 자들을 사회적으로 개조 (안되면 청소)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social control의 기제에 맞닿아 있다. 천사와 악마가 그 안에 공존하는 모순되고 복잡한, 작은 우주와도 같은 인간 존재의 난해함을 부정하는 편협한 인간관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정부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넘쳐나는 시장에 마음껏 개입해도 괜찮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인간 사회를 다양한 가치들 사이의 경쟁과 선택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우파적 시각과 달리, 정의와 악, 억압과 수탈이라는 이분화된 구도로 바라보는 것이 사회주의 인간관의 실체이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핵심가치로 하는 우파적 사회관이 대중의 민주적 지지를 획득했던 경험이 부재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학 시절 조선 후기사를 강의했던 한 강사(지금은 어느 대학교의 교수로 가 있는)의 설명이 그러한 좌파적 역사 시각을 잘 보여주었다. 그가 말했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보다 진보적인 새 정치세력이 정치 혁명을 성공시키는 그날을 꿈꾼다고.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이미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현실 사회 속 개인의 생활과 행복에 그 따위 도식적이고 단선적인 정치인식, 역사인식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딱히 좌파든 우파든 누가 옳고 그르다고 주장할 만한 지식도 지혜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단지 좌파적 시각과 우파적 시각은 같은 사회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는데, 역사 속에 정의와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에 경도되는 좌파적 역사시각이 점점 너무 노골적으로 한국사회의 hegemony를 장악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도 논쟁의 자유, 발언의 자유는 받아들여진다. 명목 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역사적 논쟁에 있어서, 가령 어떤 사람이 한국 사회의 사실상 공식적 역사 시각인 반일 논조에 거스르는 시각을 표현하게 되는 경우, 표현의 자유라는 명제조차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가 불투명하고 모호한 제재를 받거나, 심한 경우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집단주의 사회인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특정한 정치적 의견'은 어떠한 의견일까? 한국사회에서는 사실상 다수가 규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역사적 정의가 존재해서, 그에 위배되는 생각은 '특정한 정치적 의견'으로 매도된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는, 한국의 과거 역사 (20세기 전반부)는 정의롭지만 억압받았던 (핍박을 받으면서도 독립에의 열망을 잃지 않았던) 민족으로 인식되고 일본의 과거 역사는 정의롭지 못한 약탈적인 나라로 보는 시각이 '올바른 역사인식'으로 전제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내가 "한국의 국사학자들은 과연 조선시대 상민 백성들이 조선 왕조와 양반 지배층에게 약탈당한 것과 일제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 총독부에 약탈당한 것 중 어느 쪽이 더 비합법적이고 더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약탈 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 많은 한국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20세기 후반부 역시 마찬가지의 시각, 마찬가지의 내러티브 (착취와 억압에 맞서 노동자의 해방과 정치의 민주화를 쟁취)가 현대사 사관을 지배해왔다.

개인간에 역사적 시각, 그리고 국가 간에 역사적 시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의 역사 인식, 우리의 역사 인식은 올바르고 정의롭다라는 것을 내세우려 하게 되면, 자연히 너의 역사인식, 우리가 아닌 그들의 역사인식은 그렇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정의'로운, '올바른' 등의 judgmental expression을 쓰는 모습은 마치 한국사회 지성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진다. 한국인들은 지금도 정사(正邪)를 시비포폄(是非褒貶 )하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성리학적 사고의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일본에 대한 역사적 시각에 있어서 사회과학적 연구 보다 인문학적 접근이 한국의 대중 지성을 장악해온 모습이 그러한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정의'를 세우느니 어쩌니 하면서 합의된 바 없는 (적어도 나는 합의해준 적이 없는) 다수의 사회적 시각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그대로 주입되는 것을 바라보는 심경이 편하진 않다.

사람들은 역사책은 많이 보지만 당위론적 명분에 휩싸여 경험론적 지혜를 자주 놓친다. 역사에서 자유의 말살과 대량의 인명 학살과 같은 광기 어린 정치행위는 사익의 추구 보다는 민주적 권력의 우세에 의해 나타났음을 20세기의 세계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하긴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내용만 가지고 공부한 학생들은 마치 20세기 온 세계가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질 만도 할 것이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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