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날 한은 "11개월째 수출 감소" 발표했는데 "11년 연속 무역흑자, 경제 기초 튼튼" 강조하기도
직접적 親北코드 발언 없었지만...아세안과 "보호무역주의 반대" 공동입장 관철시킨 연장선 행보
美中무역분쟁 도전과제 지목해놓고..."1조달러 이상 무역-제조업 흑자국 獨·中·韓 3개국 불과" 中띄우기
"日 수출규제 이겨내" 강조는 하고, 1965년 對日청구권 인정 따른 5억불 원조는 "1960년대 해외차관" 뭉개기
"공업화 추진"과 "수출로 (차관)원금 상환" 떼어놓고 주장...부자연스러운 '공업화 따로, 수출 따로' 논리
"1964년까지 원재료 수출국"과도 아귀 안 맞아...관심사인 러시아, 新남방 지역 수출증가는 적극 부각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무역의날 기념 축사에서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파고"를 "새로운 도전"으로 지목하는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 반대'를 거듭 주창해왔는데,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를 겨냥한 구호로 해석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채택한 공동비전선언문·공동의장성명에서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 반대" 구호를 아세안과의 사상 첫 공동입장으로 채택한 데 이은 행보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문 대통령은 "강대국 간 경쟁이 격화되고 보호무역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의 날' 기념식 전 유공자들과 환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의 날' 기념식 전 유공자들과 환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6회 무역의날 기념식 축사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고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파고를 넘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며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출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미·중 무역분쟁과 세계 경제 둔화 속에 세계 10대 수출국 모두 수출이 줄었으나 우리는 올해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고 11년 연속 무역흑자라는 값진 성과를 이뤘다"고 했다.

나아가 "무역 1조달러 이상을 달성한 국가 가운데 제조업을 기반으로 흑자를 이룬 국가는 우리나라와 독일, 중국 3개 나라에 불과하다"며 "그만큼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주력 산업의 경쟁력도 빠르게 회복되는 등 저력이 발휘되고 있다"면서 "자동차는 미국·유럽연합(EU)·아세안에서 수출이 고르게 늘었고, 선박은 올해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90% 이상을 수주해 2년 연속 세계 수주 1위"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기차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수소차는 세 배 이상 수출 대수가 크게 늘었다"며 "바이오 헬스는 9년 연속, 이차전지는 3년 연속 수출이 증가했고 식품 수출은 가전제품 수출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11년 연속 무역흑자'라는 언급은 나왔지만 우리 경제는 최근 '11개월째 수출 감소'를 겪은 것으로 같은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터다. 장기간 수출분야 성장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임기 중 급격하게 대두된 국내 경제위기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의 날' 기념식 전 유공자들과 환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의 날' 기념식 전 유공자들과 환담하던 중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이날 축사에는 통상적으로 외교무대 등 공식행사에서 반복해 온 친북(親北) 코드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정권의 반미(反美)·반일(反日)성향이 반영된 듯한 언급이 일부 있었다.

미국을 겨눈 듯한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파고" 레토릭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은 "우리는 기업인과 과학기술인, 국민이 단결해 일본의 수출규제도 이겨내고 있다"면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를 이루며 오히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일본과 각을 세우는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무역이었다"며 수출 증가를 연신 치하하는 대목에서는 "1960년대 해외 차관으로 공업화를 추진할 때, 수출은 원금 상환과 새로운 차관 도입의 발판이 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로 무상원조 3억달러·저금리 차관(유상원조) 2억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아내고 이후 포스코(옛 포항제철) 건설 등 중화학공업 투자로 경제개발에 힘쓴 역사가 있으나, "1960년대 해외 차관으로 공업화를 추진"했다고만 표현한 것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이번 축사에서 "1964년, 수출 1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의 날'을 처음 만들 때 우리는 철광, 중석 같은 원재료를 수출하는 나라였다"고 공업화의 시점을 1960년 중반대로 시사한 점을 미뤄봐도, 일본으로부터의 무상·유상 원조 사실이 빠진 "해외 차관" 언급은 위화감을 자아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가장 최근 '이겨내고 있는' 대상으로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우대 철회를 언급한 셈이다. 무역·경제 성장의 역사에서 '공업화'와 '수출'을 별개인 양 취급한 것도 경제원리 상 자연스럽지 않다.

반면 문 대통령은 "무역 시장 다변화도 희망을 키우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포함한 구(舊)소련연방 국가로의 수출은 지난해보다 24% 성장했다"고 대러시아 무역규모 확대를 강조하는 한편 관심현안인 '신(新)남방'에 대해선 "지역 수출 비중이 올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고 아세안은 제2의 교역상대이자 핵심 파트너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는 무한한 협력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대 규모 다자 FTA(자유무역협정)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인도네시아와의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정과 함께 말레이시아·필리핀·러시아·우즈베키스탄과 양자 FTA를 확대해 신남방, 신북방을 잇는 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1초대 부팅 블랙박스를 개발한 '엠티오메가', 자가혈당측정기를 개발해 100여개국에 수출한 '아이센스' 등의 업체를 호명하며 "중소기업의 약진도 두드러졌다"고 치하하기도 했다.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 협력으로 경쟁력을 높여 변화의 파고에 흔들리지 않는 무역 강국의 시대를 열고 있다"며 "중소기업은 미래 수출의 주역이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보증지원을 올해보다 네 배 이상 늘어난 2000억원으로 늘리고 무역금융도 30% 이상 늘린 8조2000억원을 공급해 신흥시장 진출을 돕겠다"고 공약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영호엔지니어링 김기현 대표 등 10명의 무역유공자에게 산업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을, 수출 5억불을 달성한 솔브레인을 포함한 10개 수출기업에게 수출의 탑을 수여했다. 이날 정부 포상을 받는 무역 유공자는 산업 훈·포장 64명, 대통령 표창 77명 등 모두 597명이다. 수출의 탑을 받은 수출기업은 총 1329개사(社)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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