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퍼주기식 지원사업 전방위 확대
가난 입증하려 갖은 편법과 꼼수 난무
나라빚 눈덩이, 국민 1인당 부채 1,400만 원 돌파
각계각층 온 국민에게 병자, 약자, 앵벌이 코스프레 부추겨
제도권에서 성실히, 열심히 산 사람들 되레 역차별
자국민을 병들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해괴한 정책
사회 근간과 개인의 가치관 함께 무너져 회복 불능 우려
독배 남발하는 무분별한 선심 행정 당장 그쳐야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89년에 소설가로 등단해 지난 30년간 전업 작가로 글을 쓰고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문인에게 주는 나랏돈을 받지 않았다. 오늘 이 시간까지 문인으로서 정부나 기관의 그 어떤 혜택도 받은 사실이 없다.

정부에서 주는 돈이 필요 없을 만큼 잘살아서 그런가?

천만에다. 나는 세상이 다 아는 무일푼이다. 게다가 10년간 10권짜리 대하소설에 매달리면서 사정은 최악으로 내몰렸다. 그 10년 동안 돈을 번 건 딱 두 차례, 하나는 신동아에 <나당대전>이란 신년 부록으로 1,500매가 넘는 원고를 써주고 받은 특별 원고료와 연재소설 원고료, 모두 합해서 연봉 1백만 원쯤 될까? 그러니까 월수입으론 10만 원도 채 안 되었다는 말이다. 그 외 수입은 전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왔는지, 지금 돌아봐도 아슬하기만 하다.

10년 고행 끝에 드디어 책을 내고 팔자에도 없는 무슨 감투 하나를 쓰게 되었을 때다. 뒷날 문체부 장관이 된 한 유명인사를 우연히 회의장에서 만났는데, 자신이 당시 어떤 지자체의 문화재단 이사로 있다면서 혹시 문인들을 지원할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일단은 그런 뜻 자체가 너무도 고맙고 반가워서 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 번 생각을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1시간여, 회의는 뒷전이고 나는 지난 10년간 피눈물 나게 가난했던 나의 고행을 객관적 모델로 삼아 어떻게 하면 가난한 글쟁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온갖 궁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마지막에 내가 내린 결론은 뜻밖에도 <없다>였다.

내가 주무장관이라도, 아니 대통령이라도 가난한 문인을 도울 방법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왜냐고? 글은 궁극적으로 돈을 벌려고 쓰는 게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해도 책이 많이 팔려서 돈을 벌어야지, 정부나 기관에서 돈을 주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정부가, 기관이, 단체가 가난한 문필가를 물질적으로 도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을! 한발 더 나아가 물질적으로 도와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가난한 문필가가 결국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꺾여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든 생각은 지원에 대한 반감이었다. 감히 누가 글 하나로 살아가는 문인의 고고하고 새파란 독기에 돈을 던져주려는가? 어떤 자가 그런 가소로운 발상을 하는가? 그 자체가 얼마나 건방지고 주제넘은가?

회의가 끝난 뒤 나는 그분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인을 도울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우리 국민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랄 뿐이죠. 그러면서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내 길을 가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한테 이유 없이 도움을 받는가? 아니, 도대체 문인을 뭘로 봅니까?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주변 문우들이 정부에서 적게는 5백만 원, 많게는 1천만 원씩 돈을 탔다면서 나한테도 신청을 해보라고 부추겼다. 무슨 돈이냐고 물으니 신청서만 써내면 시집이나 소설책을 내는 조건으로 나랏돈을 주는데, 1년 안에 아무 데서나 책만 내면 되니까 공돈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대뜸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싶었다. 공돈이 생겼다며 밥과 술을 사겠다는 문우들 틈에서 내 기분은 왠지 심란하고 착잡했다. 줄 세워 돈 퍼주는 그따위 같잖은 행정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공무 선상에 제대로 예술을 알고, 예술을 존중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구나! 5백만 원, 천만 원, 이런 오만한 시혜자가 베푸는 푼돈의 단맛을 본 문필가, 예술가들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정말 큰일 났구나!

그로부터 다시 13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엊그제 일 때문에 찾은 남도의 한 마을회관, 요즘 시골에선 복지가 하도 좋아서 노년층에 돈이 흘러넘친단다. 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시행하는 이른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사업의 유형과 종류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데, 예를 들어 ‘스쿨존 교통지원 봉사’의 경우 애들 등하굣길에 교통안전 팻말만 들고 1주에 3번, 한 번에 3시간만 서 있으면 27만 원을 준다고 한다. 또 ‘공공시설 봉사’라는 건 해당 공공장소에 가서 한두 바퀴 돌고 시간만 채우면 돈이 나오고, 학생들한테 책만 읽어주어도 몇십만 원을 준단다. 그밖에도 노노케어, 상담 안내 활동, 학습 지도 활동 등 노인들이 돈을 버는 일은 중앙정부에서부터 각 지자체에 이르기까지 가히 널리고 널렸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우리가 원체 잘사는 ‘아주 부자나라’고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라서 그런가 싶은데, 사정을 좀 더 알고 나면 기가 막힌다. 통장에 2천만 원 이상 있는 사람은 제외,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서 얼마 이상 연금을 받는 사람도 제외, 도무지 우리 대한민국 체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역차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노인들은 통장 잔액을 맞추려고 자식들에게 돈을 보내고,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온갖 재주를 부린다.

예컨대 애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노인이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평생 농사짓고 밭일만 하면서 책이라곤 읽은 적도 없는 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교육자로 정년을 마친 노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책을 읽어준다면 누가 더 적임자일까?

그런데 먼젓번 노인은 급히 통장을 비워서 스스로 가난하게 보이는 데 성공했고, 교육자로 정년을 마친 노인은 매달 수령하는 연금 액수가 많다는 이유로 아예 일할 자격이 박탈되었단다. 이게 현 정부가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 약자들을 위한답시고 전국 각지에서 다반사로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 세상에서 국민의 혈세를 내 돈처럼 아끼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 세금은 그냥 집행하는 것이고, 예산이 배정되면 어떻게든 써서 없애야 하는 게 모든 공무원의 신념이다.

이런 작태가 어찌 노년층에만 국한돼 일어나겠는가? 지금 각계각층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복지사업의 규모는 우리가 땅만 파면 석유가 콸콸 쏟아지는 중동의 산유국이라고 해도 걱정스러울 정도다. 청년, 무주택자, 신혼부부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려고 혈안이 돼 있고, 지원 자격을 얻으려고 멀쩡한 부모와 좋은 집이 있음에도 자식들이 가출해서 셋집을 얻는다, 무소득, 무주택자 신청서를 낸다, 아주 야단법석을 떤다. 심지어 위장 결혼을 하는 커플도 있다고 들었다.

자, 일이 이렇게 되면 인생의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이 바뀌고, 가치가 전도되고, 국민은 서로 더 가난해지려고, 악착같이 서로 더 약자가 되려고, 어떻게든 불쌍하게 보이려고 기를 쓰면서 병자, 약자, 앵벌이 코스프레에 몰두하게 된다.

소득과 수입은 어떤 경우에도 정정당당한 노력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게 신청과 지원, 혜택의 산물이 되면 그 사회는 지탱력을 잃고 반드시 무너진다. 1만 명 신청자를 지원하겠다면 그 1만 명을 뺀 나머지 모든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이 성난 민심으로 돌아오는 건 한순간이다. 어차피 전 국민을 모조리 다 지원하지 못할 바엔 복지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무분별하고, 선택적이며, 다분히 역차별적인 흥청망청 돈 잔치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 모든 국민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푼이라도 더 공돈을 타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병든 세상, 이런 비상식적이며 몰상식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저의가 과연 무엇인가?

전국 도처에서 온 국민이 병자, 약자, 앵벌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집이 없다. 나는 옛날에 피해를 보았다, 나는 병자다고 악을 쓰며 울부짖는다. 그 사실을 입증하려고 증명서를 떼고, 편법을 동원하고, 꼼수를 부린다. 우리 국민을 이처럼 개떡으로 만들고 있는 건 일본도 미국도 북한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 정부다.

반면에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제도권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고군분투한 우리 시대의 우등생, 모범생들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 역차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마치 그 옛날, 내가 열심히 글을 써서 원고료 몇 푼을 받고 감개무량해 있는데 정부에서 공돈 1천만 원을 받았다며 웃던 문우의 모습, 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그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세상이 한번 이래놓으면, 그래서 국민 정서가 타락하고 나면 정권이 바뀐다고 곧바로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데 더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번 불로소득의 단맛을 본 사람들은 좀처럼 그 중독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취미로 배운 노래나 악기로 공연단을 꾸려 노인복지시설 같은 곳에 가서 공연을 해주면 또 돈이 나온다고 자랑하면서 마을회관의 한 노인이 내게 슬쩍 말한다.

“우리야 돈 많이 받으니께 당장은 좋지만서두 나라가 걱정이우. 흥청망청 이래 퍼주고 과연 얼마나 버틸까? 국고가 거덜 날 게 뻔한디라, 우리 자식, 손자들은 나중에 괜찮을까, 두셋만 모이면 다들 그 걱정을 한다니께요.”

13년 전에 공돈을 탔다며 좋아하던 문우들, 그들 가운데 좋은 글을 써서 이름을 남긴 이는 아무도 없다. 다들 몇 푼 돈에 취해 술 사 먹고 밥 사 먹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네들을 위해, 한국 문학을 위해 쓴 돈들은 전부 똥이 된 셈이다. 문학은 절대로 그런 돈으로, 그런 식의 지원으로 살찌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판에 이상한 풍조를 만들어서 문우들의 정신세계를 망쳤다는 게 내 지론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돈과 글은 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그렇지 않으랴.

같은 이치로, 돈을 받은 사람들이 되레 걱정할 정도의 이런 해괴한 마구잡이 퍼주기식 지원이 국민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리 만무하다. 가난하면 공부하고, 일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정정당당하게 잘살 꿈을 꾸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그 꿈을 잃지 않고 세대를 이어 가꾸어가게 하는 것, 그게 궁극적인 복지다. 지금처럼 많은 국민이 다투어 약자, 병자, 앵벌이 코스프레를 하려 든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는 자가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망국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공돈을 주는 건 마약을 주는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겐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나머지 절대다수의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위험하고 무서운 독배도 없기 때문이다.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