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그들의 ‘지상낙원’은 바로 지옥이더이다
[김석우 칼럼] 그들의 ‘지상낙원’은 바로 지옥이더이다
  •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19.12.03 14:13:44
  • 최종수정 2019.12.04 08:33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후 北, 재일동포들에 자신들을 지상낙원으로 선전...귀국동포들 최하위 노동계층으로 전락
北의 허위 선전은 여전히 계속돼...文정부는 김정은 정권 붕괴 막으려 도와줘
文,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립, 헌법서 ‘자유’ 삭제 몰두...北과의 연방제 밀어붙이나?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지금부터 60년 전 1959년 12월 14일 975명의 재일동포를 태운 북송선이 니이가타 항에서 청진항으로 출항하였다. 이후 1984년까지 총 9만3340명의 재일동포가 북한 정권과 조총련의 선전에 속아 ‘지상낙원’이라는 북한 땅으로 이주하였다. 그중에는 이주하는 재일동포의 일본인 처나 자녀도 최소 6,839명이 포함되었다.

제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열도에는 약 200만 명의 한반도 출신 재일동포가 체재하였으나 전후 140만 명이 귀환하였고, 60만 명이 잔류하였다. 일본은 패전의 고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6.25전쟁 특수로 재건의 동력을 얻었으나, 전후 복구와 민생안정을 위해서는 아직 재정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통치 기간 재일동포의 노동력을 이용하였지만, 전후 복구기간 중 가난한 재일동포들을 부담스럽게 여겼다. 가뜩이나 단일민족 신화(神話)에 쩔은 일본사회는 재일동포가 동화(同化)하지 않는 소수민족(ethnic minority)으로 남는데 거부감을 가졌고, 식민지 시대의 우월의식이 재일동포들에 대한 법적 사회적 차별로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일정책을 펴고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이 파행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안정된 거주권의 인정, 그리고 각종 차별철폐를 촉구하였다.

북한에서는 1953년 7월 한반도의 정전협정 이후에도 중공군이 평양시 재건 등 전후 복구작업을 담당했다. 1956년 8월종파 사건으로 연안파가 숙청된 후 40여만 명의 중공군도 1958년 북한 땅을 떠났다. 이에 더해 김일성의 중공업 우선 정책 추진으로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포로 교환에서 유엔 측이 공산 측에 8만 3천여 명을 송환한 데 반해, 공산 측은 유엔 측에 1만 3천여 명만을 송환시켰다. 5만 명 내지 7만 명의 국군포로들을 비밀로 숨겨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 지역으로 끌고 가서 강제노역을 시켰다. 전쟁범죄였다.

이렇게 노동력이 부족한 북한정권은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기획하여 국제적십자사를 매개로 실행에 옮기면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에 대하여 “지상낙원 북한 땅으로 오라! 무상으로 집도 주고, 직장도 주고, 의료혜택도 준다”는 선전 삐라로 융단 폭격하였다. 당시 60만 재일동포 중 9할 이상이 일찍이 1955년 결성된 조총련 영향권 하에서 북한 정권의 교육지원금과 사업자금의 혜택을 받는 상황이라서 크게 동요하였다. 전후 공산주의에 동정적이던 일본 지식인 사회를 반영하여 ‘아사히 신문’과 같은 주요언론들도 북한을 파라다이스라고 대서특필하여 맞장구를 쳤다.

북송선이 청진항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북한주민들은 일본의 하층민에 속하던 귀국동포의 눈에도 측은할 정도로 거지꼴이었다. 지상낙원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걸 귀국동포들이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귀국동포들은 3대계층 51개 분류의 성분 중 최하위 적대계층으로 온갖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째포’, ‘반쪽발이’라고 놀림감이 되었다. 일본에서보다 더 심한 차별대상이 되었다. 통제와 감시 속에서 그들은 일본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자유롭게 서신 교환하기도 어려웠고 자유 왕래는 물론 불가능하였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것이다. 그들은 결국 인질이 되어 일본 내의 가족들로부터 송금을 받아내는 앵벌이 역할을 하였고, 이는 북한의 주요 외화공급원이 되었다. 조총련계가 북한에 보낸 송금총액은 1조 엔이 넘는다.

물론 극히 일부의 조총련의 핵심간부는 일반 귀국 동포와는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오사카 출신 고용희처럼 아버지 고경택을 따라 10살에 북송선에 타고 가서, 무용단원으로 활동 중 김정일의 눈에 들어 김정은을 낳게 된 특이한 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국동포는 차별대상이기에 김정은은 자신의 어머니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아직도 공표하지 않고 있다.

재일동포에게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선전선동한 것은 전형적인 속임수의 예다. 북한정권은 외부정보를 차단한 채 주민들에게 지상낙원이라는 선전 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도 외부정보가 스며 들어가고 있다. 주민들이 지상낙원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김정은은 권력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현 정권이 김정은 정권을 붕괴하지 않도록 도와주려 한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자유는 안중에도 없다. 최근 북한어부 2명의 강제송환 조치가 그러하다.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비호 한다. 북한 정권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를 완화 시키려는 변호인 노릇을 한다.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단숨에 일본을 능가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선전한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속임수를 쓴다.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데도 말이다.

문재인 정권의 떼쓰기나 속임수가 북한 정권과 유사한 사례는 넘치고 찬다. 볼셰비키적 수법에 익숙한 DNA를 공유하는 것 아닌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그 수단이 아무리 속임수라도 정당화된다는 의식이다. 개혁 개방을 기피하는 북한 정권과의 협력이나 연방제는 최악의 선택이다. 그나마 이룬 대한민국의 성취를 작살 내는 지름길이고, 공산화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제 연동형비례제 선거법 개정에 몰두한다.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제1야당과 합의 없이 선거법을 개정한 예가 없다. 아울러 무지막지한 독재형 수법을 쓰려 한다. 대통령과 대법원장까지도 구속 기소한 검찰조직을 놔두고 대통령의 뜻대로 임명할 수 있는 공수처를 새로 설치하여 나치의 게슈타포나 소련의 KGB, 중국의 공안, 북한의 보위부와 같은 공포조직을 만들려 한다. 바로 다음 선거에서 최소한 과반을 확보하고 나아가 개헌선까지 확보하여 독재의 길로 가려는 것이다. 실패한 헌법개정을 다시 시도하여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는 개정을 통해 북한과의 연방제를 밀어붙이려는 준비다. 이념이 다른 집단이 연방을 이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조가 장악한 주요언론은 그런 음모를 애써 외면하여 국민을 우민화하고 있다.

74년 전인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에서 3500명의 중학생이 의거를 일으켜, 기관총, 탱크는 물론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진압되었다. 소련 공산 치하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저항운동이었다. 그때 처형과 박해를 피해 많은 인사가 남한으로 내려와 소련 공산체제의 모순과 횡포를 알렸다. 그것이 1950년 6.25 전쟁에서 유엔군과 함께 나라를 지킨 원동력이 되었다. 1953년 휴전으로 한국전쟁은 공산침략에 대항해 승리한 전쟁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서 냉전체제에서 자유진영이 승리하는 전초기지가 되었다. 공산진영의 속임수를 일깨우는 첨병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지금 정권을 장악한 세력은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동한다.

60년 전 지상낙원의 꾐에 빠졌던 재일동포들의 피눈물을 보고도 또다시 허황한 지상낙원의 속임수에 놀아날 것인가?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장, 前 통일원 차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