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운영위에서 "개헌안 속도 내야"라며 국회 압박
청와대 들어간 뒤에도 개인 페이스북 통해 여과없이 의견 표명
'대통령의 그림자'로 조용히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역할 알고 있는지
일각에서는 '文대통령보다 더 위에 있나' 비판의 목소리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언대에서 말하고 있다.(사진=국회방송 캡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발언대에서 말하고 있다.(사진=국회방송 캡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6·13 지방선거-헌법개정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위해 개헌안 마련에 속도를 내라고 국회에 직접 요구했다. 개헌 시한은 수차례 못박으면서도 개헌안 타결의 책임은 국회에 있다는 투로 에둘러 압박하는 한편 대통령 독자 개헌안 발의를 사실상 예고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21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 모두발언을 통해 "국회가 동의하고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개헌안을 만들어 올해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지난 대선 기간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께 드린 약속이었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에서 속도를 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최소한의 물리적 마지노선은 언제라고 보는가'라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는 "실무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으니 2월말까지는 국회가 의견을 모아줘야 한다"는 요구로 답변을 대신했다.

준비 중인 대통령 개헌안의 국회 논의 여부에 대해서는 "확정한 바는 없다"면서 "국회 합의 수준과 속도에 따라 국회와 같이 의논해야 할 것 같다"고 국회에 '공'을 넘겼다.

그는 "다만 저희는 대통령이 발의를 해야한다면 그런(국회 논의) 가정 아래 필요한 준비는 하겠다"며 "국회 논의를 다 보고 들어가서는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할 방법이 없어서 자문특위를 구성해 준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청와대가 구성한 국민헌법자문특위(위원장 정해구)가 개헌안 조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는 "저희가 직접 조문작업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성태 국회 운영위원장(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은 대통령 독자 개헌안 마련을 시사한 점을 두고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회에서 개헌이 이뤄지도록 활동을 존중해줘야 한다"면서 "국회 논의는 논의대로, 청와대는 청와대 대로 개헌을 준비한다면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임 실장은 "청와대만의 독자적인 개헌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걸리고, 개헌에 대한 많은 의견이 있어서 간담회와 토론회를 통해 수렴 과정에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오후까지 이어진 전체회의에서는 청와대가 한국당 운영위원들이 오전까지 달라고 요청한 자료 제출 미비로 김성태 위원장과 '언쟁'을 벌였다. 김 위원장이 자료 제출 문제로 발언하는 중 청와대 실무 직원이 비웃음을 보였다며 항의 차원에서 임 실장에게 발언대로 서라고 하자, 그는 "여기서도 가능한데 따로 나가서 서야 하느냐"고 불만을 표출했고 김 위원장은 거듭 "서시라"고 요구했다.

임 실장은 자료제출 미비에 관해서는 "월요일(지난 19일)부터 집중적으로 요청이 들어와서"라고 변명했으며, 김 위원장에게 그는 "왜 화를 저에게 푸시는지 모르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김 위원장으로부터 발언기회를 부여받지 않았는데 "그런데 위원장님, 왜 저에게 이러시는지 진짜 모르겠다"며 거듭 입씨름을 벌였다.

'대통령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한두 건이 아니다.

비서실장으로 등용된 이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것도 역대 어떤 청와대 비서실장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현 정권 출범 전 친문(親文) 트위터리안으로 유명하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 트위터를 폐쇄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올해 2월18일 평창 동계올림픽 응원에 나선 문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공유하며 김정숙 여사를 "유쾌한 정숙씨!"라고 지칭하는 '가벼움'을 여지없이 노출했다. 

같은날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의 은메달 소식이 들렸을 때는 완연한 '반말'로 "이상화, 잘했다. 울지마. 긴 시간, 니 맘 다 알아. 너 진짜 멋있어. 우리한텐 니가 견뎌 온 시간이 항상 금메달이었어. 고마워......"라고 적어올리면서, 적지 않은 시민들이 "뜬금없다" "건방지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일부 지지자들 중에서도, 페이스북 친구만 달 수 있는 댓글란에 "(이 선수와) 서로 아시는 사이시냐. 반말을 쓰신다"고 적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 20일까지도 그는 자신의 '캐리커쳐'와 함께 '인생 50 십계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반이라도 지켜보려 한다"고 부연하는 이미지 관리 행보를 보였다.

앞서 지난해 5월18일 피우진 보훈처장 임명 당시 "우리 딸에게 희망을 안겨줘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추어올리는가 하면, 나흘 뒤인 22일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외교부 장관"으로 지칭하며 은발을 가리켜 "정말 멋지지 않나요?"라고 지지를 유도하기도 했다.

8월6일에는 탈원전 정책에 유리한 '폭염에도 전기 남아…전력 설비예비율 14년 만에 최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는 정치적 행보를 표출했다. 9월9일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공유하며, "왜 일본은 사과를 하지 못할까?"라며 반일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같은달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된 다음날인 26일에는 '독립적인 사법 개혁'을 기대한다며 "원장님! 반대보다 기대가 더 무섭습니다"라고 홍보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5월10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를 보조하는 모습(왼쪽)과 임 실장의 올해 2월 페이스북 일부 글 캡처(오른쪽).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5월10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를 보조하는 모습(왼쪽)과 임 실장의 올해 2월 페이스북 일부 글 캡처(오른쪽).

 

임 실장은 지난해 10월17일 직접 브리핑에 나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겨냥한 이른바 '7시간 의혹'이 '7시간 30분 의혹'이라는 취지로 언론에 공표하는 등 민감한 정치 현안에 직접 나서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작년 12월 '국교 단절설'까지 거론됐다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특사로 파견을 가 하루 뒤에야 언론에 해당 사실이 알려지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올해 2월11일에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상대로 환송 만찬을 주재해 '비서가 아닌 부통령이라도 되느냐'는 여론이 일었다.

임 실장의 거침없는 행보가 계속되면서 그가 소리없이 대통령을 보필해야 할 '비서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과 그가 함께 있는 사진 중에서 상하(上下)를 헷갈리게 만드는 몇 가지 장면들을 거론하면서  '문 대통령보다 임 실장이 더 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로만 넘기기 어려운 비판도 적지 않다. 그의 '오버'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대표적인 친북 단체였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으로 '임수경 불법 방북 사건'을 주도해 실형(實刑)을 산 전력이 있지만 그 이후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한 적이 없다.

임 실장은 지난해 11월6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가운데 '전대협 강령'에 대한 입장을 묻는 전희경 한국당 의원에게 "모욕적"이라는 감정적 언사로 응대했다. 지난 2014년 말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 등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해산시킨 구 통합진보당의 강령 내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전대협 강령에 대해 국가 수뇌부의 일원이 된 지금도 여전히 찬성하냐는 취지의 물음에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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