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 칼럼]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무엇에 감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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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27 09:42:27
  • 최종수정 2019.11.2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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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조상들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번영의 터를 닦았는가?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절을 통해 지키려는 가치는?
순례자들의 지도자가 제시한 ‘인센티브‘ 제도가 인도한 풍요
가족과 자유와 시장은 미국과 서방세계에 번영의 기초를 놓았다
70년 전 대한민국 건국 때 미국적 가치를 받아들인 지도자들에게 감사해야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조금 더 가면 자유와 번영을 모두 잃게 된다. 우리는 기로에 서있다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11월 네 번째 목요일, 내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교할 수 있는 미국의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이다. 이 날은 멀리 떠나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안부를 확인하고 칠면조구이 같은 음식을 해먹는다. 이 명절은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신대륙 미국의 북동부의 해안가에 도착한 청교도 순례자(Pilgrims)들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이주한 지 3년만인 1623년에 처음으로 넉넉한 추수를 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작은 잔치를 열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은 잔치를 국가 명절로 제정한 것은 240년 후인 1863년 링컨대통령 때의 일이다. 추수감사절을 만든 순례자들과 그들의 지도자의 선택은 그들이 이주한지 300년 후인 20세기 초,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이 역할을 했으며, 그 번영은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이러한 미국의 문화를 본받았던 서방세계의 국민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순례자들과 그들의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했었나?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으로 향한 ‘순례자조상(Pilgrims fathers)’이라고 불리는 102명은, 항해 중에 폭풍우를 만나서 극심한 고통과 공포의 나날을 보냈다. 그 인원이 타고 대서양을 건너기에는 배는 너무 작고 좁았다. 화재 염려로 불을 피울 수도 없었고 요리를 할 수도 없었다. 심한 뱃멀리와 추위 때문에 항해 중 죽은 사람도 있었다. 폭풍우 때문에 목적지로 정했던 버지니아에 도착하지 못하고 66일 만에 북쪽의 해안가 지금의 플리머스 락(Plymouth Rock)에 도착했다. 상륙하자 바로 추위가 찾아왔다. 주거지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겨울을 맞아,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감기와 폐렴으로 이듬해 봄까지 약 절반이 죽었다. 선원들은 영국으로 돌아갔다. 살아남은 사람들 50여 명 중 절반은 어린이들이었다. 굶주림은 그들의 굳은 신앙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음식을 훔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선출한 지도자도 이 때 죽었다.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 1588-1657)가 두 번째 지도자로 뽑혀 이들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1620년부터 1646년까지 이들의 정착 과정과 삶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플리머스의 농장에 관하여(Of Plymouth Plantation)’라는 책을 남겼다. 그는 책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 받았던 정착 초기에, ‘어떻게 하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을 지 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라고 쓰고 있다.

순례자들의 고향에는 공동경작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그들은 고향의 풍습에 따라 지도자의 통솔 하에서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생활을 하였다. 수확한 것은 공동의 장소에 모아놓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였다. 그들은 사유물을 공동체의 공동재산으로 하면 모두 행복하고 번성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공동생산 방식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젊고 건장한 남자들은 정당한 보상 없이 남들을 위해 일하는 것에 반대했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같은 양의 식량과 옷을 나눠 갖는 것에 대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공동체 생활에서 많은 혼란과 불만족이 생겼다. 공동생산 하에서 자손을 낳는 것조차도 방해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미국 북동부의 혹한 속에서 세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굶어죽을 위기를 겨우 견디어 내었다. 1623년 봄, 브래드포드는 실험을 했다. 봄에 작물을 심을 때 각 가정마다 약간의 땅을 나눠주고 ’모든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알아서 곡식을 길러야한다‘라고 선언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식량으로 남겨둔 씨앗까지도 먹지 않고 땅에다 심었다. 그들은 예년보다 훨씬 많은 농작물을 심었고 모두가 부지런히 일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도 아이를 업고 들판으로 나갔다. 늙거나 아프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기꺼이 밭에 나가 자신들의 노동의 결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 해에는 특히 봄 가뭄도 심했고 여름에 큰 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을에 놀라운 수확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극심한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유재산의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겨울을 지내고 남을 식량을 확보하였고 또 이 잉여식량으로 원주민들과 짐승의 가죽 등 다른 필요한 것과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브래드포드는 그의 책에 이렇게 썼다. ’이날 이후 어떤 궁핍과 기근도 우리들 가운데 머무르지 못했다.‘

1623년 순례자조상들은 평등한 공동체의 길을 택하지 않고 책임을 갖는 개인의 길을 택했다. 노예를 길을 택하지 않고 자유인의 길을 택했다. 그들의 지도자 브래드포드가 만들었고 그가 이끌었던 순례자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던 이 ‘개인의 책임’과 ‘인센티브제도’는 거의 400년이 지난 지금도 자유롭고, 생산적이고,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미국의 건국정신이고 미국적 가치관의 본질이 되었다.

그들이 미국을 향해 폭풍우와 배고픔과 추위와 질병을 이겨내며 항해하던 중, 성도들과 이방인들 간의 갈등도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지도자를 뽑았다. 또 도착 후 서로 간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할 규칙인 ‘메이플라워 서약서(Mayflower Compact)’를 만들어 서명했다. 이 서약서는 훗날 연방헌법을 제정할 때 모델이 되었다. 함께 살아남기 위한 규칙과 규정을 준수할 것에 동의하는 사회계약이었다. 비록 41명이 서명했지만 법치의 기본을 민주적으로 세운 것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1620년부터 1647년까지 일어났던 이러한 전 과정을 브래드포드는 그의 책 ‘플리머스 농장에 관해(Of Plymouth Plantation)‘에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기록은 미국이 어떤 난관을 이겨내고 어떻게 세워졌으며, 미국인들의 조상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왔던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었다. 그 누구도 쉽게 바꿀 수 없는 숭고한 가치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우리나라는 어떤 가치를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인가? 우리나라의 국익과 우리 국민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지키고 확산시키고 후손들에게 전수해야할 가치관이 무엇인가?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담보할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관은 무엇인지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고민할 지적 능력이 과연 있으며, 성숙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한다. 500년 전 마틴 루터가 내세웠던 ‘자유로운 개인‘과 400년 전 브래드포드가 제안했던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대한 책임‘을 바탕으로 전 세계 문명국가들은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한 이후 지난 70년 동안 자유, 민주, 시장의 가치를 바탕으로 발전하여 지금과 같은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에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주자학 기반의 가산제국가 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백성들의 노비근성이 곰팡이 균처럼 남아 있다가 다시 살아나, 인간의 욕망은 악이고 청빈은 선이라 하고 있다. 인센티브는 악이고 평등은 선이라 억지를 부리며 기업인들의 이익추구를 악으로 취급하는 노조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청빈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자신은 뒤로는 지위를 이용하여 온갖 욕망을 다 채우는 위선의 극치를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일하고 연구하여 돈을 버는 것을 천한 것으로 보는 나라들은 망했고, 경제활동이 신성한 가치를 지닌 것이고, 성실하게 돈을 벌어 정당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옳은 행위라고 장려하는 나라들은 성공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좌, 우를 막론하고 선거 때를 위해 표계산에 바쁘다. 그러기에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하며 복지예산을 살포하려는 매표시도에 매진하고 있다. 표를 얻는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은 굶어 죽어도 모른 체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 그리스가 갔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은 되돌아갈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건국한지 70년 만에 최빈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보통신기술산업 국가가 된 능력을 갖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처럼 조금만 더 가면 우리가 쌓아온 자유와 번영 모두를 잃게 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지금의 우리의 번영은 우리 부모세대와 선배 세대의 노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의 결과이다. 그러나 최근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번영을 죄악시 하고 저주하며, 위선과 거짓과 굴종이 판을 쳤던 노비들의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이유로?

미국의 자유와 번영은 운이 좋아서 거저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순례자들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의지와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자유와 번영은 우방국들의 도움으로 너무 쉽게 얻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귀한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거저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 시간이 많지 않다. 번영이냐, 몰락이냐? 우리들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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