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백선하 교수, 의사에게 부여된 합리적 재량 벗어나...의사의 주의의무 위반한 것"
"유족들 극심한 정신적 고통 받았을 것...손해 배상할 의무 있다"
백 교수 측 "의학적·과학적 증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증거 제출할 기회는 줘야"
"과학과 의학을 무시하며 마음대로 재판할 권리가 있나...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

지난 2015년 11월15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민노총 등 주도로 '민중총궐기' 대규모 폭력시위가 열렸을 당시 모습. 가톨릭농민회 소속 백남기씨는 이때 경찰의 살수 경고를 무시한 채 경찰버스에 달려들어 버스를 치우려고 물리력을 행사하던 중 물대포에 맞아 바닥에 쓰러진 뒤, 의식을 잃은 모습으로 언론에 재등장했다. 그의 주치의를 맡은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는 백남기씨가 300일 이상 생존했다가 사망한 경위 등을 '병사(病死)'로 진단한 소견서를 낸 바 있다.(사진=연합뉴스)

고(故) 백남기씨 유족들이 백 씨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유족에 4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백 교수 변호인 측은 "사법 치욕의 날"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항소 의사를 표명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판사 심재남)는 26일 백씨 유족들이 백선하 교수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백 교수가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아내에게는 1500만원을, 3명의 자녀에게는 각 1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앞서 지난달 재판부는 이같은 내용의 화해 권고를 확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의사 등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때에는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의 사망일시·원인·종류 등을 의료법에 따라 정확하게 기재할 주의의무가 있다"면서 "지침에 따르면 외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시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심장마비, 심부전과 같은 사망의 양식은 사망원인으로 기록할 수 없다"면서 "이는 사망원인의 개념을 잘못 이해해 생긴 오류로 자칫 진실한 사망원인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사망원인 중 직접사인을 '심폐정지'로 기재하게 한 백 교수의 행위는 의사에게 부여된 합리적 재량을 벗어난 것으로 의사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유족들이 적극적 치료를 원하지 않아 백씨가 사망했기에 병사로 기재했다'는 백 교수의 발언은 사망원인에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유족들까지 그 비난의 대상이 되게 했다"면서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므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에 앞서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후 3년이 지났다"며 "오랜 시간 심리해 화해권고를 결정한 상태에서 재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사진=연합뉴스)

이에 백 교수 측 변호인단은 "그간 의학적·과학적 증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적어도 의학적 증거를 제출할 기회는 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고 기일은 변론 시간이 아니다"라며 주장을 제지하고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과학과 의학을 무시하며 마음대로 재판할 권리가 있느냐"며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반발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백 교수 측 변호인단의 퇴정을 명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은 수술 도중이나 직후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10개월 이상 생존한 사안으로 사인 판단을 어렵게 하는 여러 요소가 중첩된 경우"라며 "이런 사안에서 백 교수가 선행 사인이 아닌 직접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보고 병사 의견을 낸 것은 누구도 비난하기 어려운 적절한 의견"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재판부가 백 교수에 진실을 밝힐 기회를 주지 않은 채 판결을 강행한 것은 의사의 양심을 짓밟은, 재판 형식을 빌린 정치판단일 뿐"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백 교수 측은 지난 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망인(백남기 씨)은 내원 당시 두개골 우측 부위에 적어도 4곳 이상의 서로 연결되지 않은 심한 골절상이 있었다"며 "이는 강력한 독립된 외력이 4회 이상 망인의 머리에 가해졌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심각한 골절상은 영상 등에서 확인되는 망인의 쓰러지는 모습과 부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 신청 등을 통해 백 교수의 주장이 진실에 부합함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면서 "법원에서도 백 교수가 의사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반드시 변론을 재개해 입증의 기회를 줄 것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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