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무것도 양보 안했다' 아베 발언 보도에 靑 "정부 지도자로서 양심 있냐" 직접 비난까지
日언론들, 외무성 간부 "그런 사실(日측 사과) 없다" 경산성 간부 "韓 주장 유감, 신뢰관계 잃을지도" 반응 전해
'日 사과받았다'던 靑 "日정부 누구도 우리측에 사과한 적 없다고 얘기 안해"...사과는 누구에게 받았나?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철회 직후 발표된 일본측 대한(對韓) 수출관리 강화 관련 합의 내용을 일본 정부가 왜곡했다고 청와대가 비난하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 정부와 사전에 조율한" 방침을 설명했을 뿐이라는 입장으로 응수한 데 이어, 청와대가 거듭 톤을 높이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때 아닌 '진실공방 언론플레이'로 한일간 협상 성과를 객관적·실질적으로 평가하려는 국민들의 눈과 귀가 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4일 오후 늦게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경산성은 외교루트를 통한 한국측과의 (의견을) 주고 받은 직후인 11월22일(금) 18시 7분,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에 관해, 수출관리정책대화 재개 및 개별심사대상 3품목의 취급에 관한 앞으로의 방침을 발표했다"며 "그 방침의 골자는 한국정부와 사전에 조율한 것"이라고 알렸다.

사진=일본 경제산업성 11월24일자 트위터 캡처

경산성은 앞서 지난 22일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 철회방침이 알려진 직후 이이다 요이치 무역관리부장이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향후 정책대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조치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으로부터 일측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단한다는 통보가 왔다고도 알리며, "한국이 수출관리 문제에 대한 개선 의욕을 보인다고 느꼈다"고 했다. 한일 수출관리 정책대화가 지난 2016년 6월을 마지막으로 3년반 가량 열리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를 재개하는 성과를 얻어낸 셈이다. 

일측은 다만 현재 실시 중인 반도체 소재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폴리이미드·불화수소)에 대한 '개별 품목 심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확인했다. "지금 한국을 '그룹 A(수출우대국 목록)'로 돌린다는 판단은 없다"고 이이다 무역관리부장은 말했다.

특히 이이다 부장은 정책대화를 통해 양국의 수출관리 제도를 상호 확인할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건전한 수출실적 축적 및 한국의 적절한 수출관리제도 운용에 대한 재검토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에 '건전한 수출실적 축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마치 군사목적으로 전용 가능성이 있는 해당 품목들에 관한 '부적절 수출관리' 사례가 있었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경산성 트위터에 앞서 24일 청와대는 일본 측에서 나오는 한일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 과정에 관한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며 특히 경제산업성이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일본 경산성 발표를 보면 한일 간 당초 각각 발표하기로 한 일본 측 합의 내용을 아주 의도적으로 왜곡 또는 부풀려서 발표했다"면서 "이는 한일 간 양해한 내용과 크게 다를 뿐 아니라 이런 내용으로 협의가 됐다면 합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지소미아 등 합의 내용 일부가 일본 NHK를 통해 먼저 보도된 것, 일본 정부가 '동시 발표' 시간을 어기고 7~8분 늦게 발표한 것 등도 문제삼으며 "일본의 일련의 행동은 'breach of faith(신의성실 원칙 위반)'"라며 "외교 경로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강력히 항의했고, 일본 외무성이 경제산업성에서 부풀린 내용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도 했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지소미아 종료 연기 후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된 것에 대해 "일본 정부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상대국 정상을 직접 비난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같은날 정의용 안보실장 발언 직후 보도에서 '외교 경로 등으로 경제산업성의 왜곡 발표에 강력히 항의했더니 일본 측이 사과했다'는 청와대 측의 설명에 대해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가 "그런 사실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25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경산성의 한 간부가 "22일의 기자회견 후 한국 측의 문의에 응해 발표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며 "한국 측의 주장은 유감스럽다. 이대로라면 신뢰 관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난 11월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의 정상회담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의용 실장(오른쪽)과 김현종 제2차장이 참석해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면 같은날 청와대는 윤도한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을 통해 "지소미아와 관련한 일본의 잘못된 입장 발표, 그리고 일본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 일본 정부에서 사과한다고 한 것이 맞고, 사과한 적이 없다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는 오보"라는 취지로 재반박을 시도했다.

윤도한 소통수석은 "어제 정 실장의 발언에 대해 일본 정부 누구도 우리 측에 '사실과 다르다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고 얘기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 측이 사과한 적이 없다면 공식 루트를 통해 항의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부터도 일본 정부 인사의 사과를 받았다면서도 '어떤 인사가 사과를 표명했는지'를 스스로 밝히지 않고 일본 정부부처의 공식입장을 요구한 셈이다.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이날 취재진을 만난 가운데 자국 정부가 합의내용을 왜곡 발표했다는 청와대의 반발에 대해 "알고 있으나 별로 생산적이지 않으니 논평을 삼가겠다"고 선을 그었다.

현 정권이 지소미아 파기 철회 이면의 실질적 외교적 성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사는 가운데, 일본 정부와의 진실공방으로 국면이 전환돼 국민들의 눈을 돌리는 양상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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