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무차관과 회담한 뒤 취재진 만나 美비건 발언에 "우리가 받은 건 배신감뿐" 궤변
"우린 美측에 시간 기회 충분히 줬다" 궤변...방러 첫날엔 "적대시정책 철회" 정권입장 대변
러 외무-국방 고위급 줄줄이 만나...북러간 첫 전략대화 차원, 미북대화 결렬대비 배후 다지는 듯

11월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사진=연합뉴스)

북한 정권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해 22일(현지시간) 북핵 폐기 요구로 시작된 미북대화의 결렬을 염두에 둔 듯 미국 측에 미리 전가하는 '명분 쌓기용' 발언을 쏟아냈다.

최선희는 이날 모스크바 시내 외무부 청사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아태 지역 담당 외무차관과 회담한 뒤 청사를 나온 뒤 취재진으로부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부장관 지명자)가 최근 '외교의 창이 열려 있다. 북측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논평을 요청받고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을 위해서 2년 동안 중대 조치들을 취했다"며 "우리는 시간도 줬고 신뢰 구축 조치도 취했지만 우리가 받은 상응조치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가 받아낸 것은 배신감뿐"이라고 미 측을 비난했다.

최선희는 특히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정말 부득이하게 미국이 우리에게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외교의 기회가 사라지는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 측이 져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비건 지명자가 자신을 비핵화 협상 카운터파트로 지목해, 그와 만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말에 "협상 대표는 각기 그 나라에서 지명하는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최선희는 앞서 북측이 미국에 제시한 12월 협상 시한을 비건 지명자가 '인위적인 데드라인'이라며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미국 측의 셈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 "우리는 미국 측에 충분히 시간도 줬고 기회도 줬고 일방적 조치도 취했다. 앞으로 조선반도에서 정세가 격화되고 긴장되는 경우 이 모든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최선희는 앞서 러시아 방문 공식 일정 첫날인 지난 20일에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핵 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협상테이블에서 내려졌다'는 정권 입장을 강변한 바 있다. 최근 북한 정권은 미측의 한반도 영향력 유지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등을 대북 적대시정책이라고 규정하며 지금까지 어깃장을 놓아온 비핵화 협상의 탈출구로 쓰려는 듯한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최선희는 지난 19일 오후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이튿날부터 이날까지 사흘 동안 러시아 정부 인사들과의 연쇄 회동을 계속했다. 20일 모스크바 시내 외무부 영빈관에서 블라디미르 티토프 제1차관, 올렉 부르미스트로프 북핵담당 특임대사 등 러시아 외무부 고위인사들과 회담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국제 및 양자 현안들을 두루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개최한 양국 '전략대화' 차원의 회담이었다.

최 부상은 전략대화 회담에 이어 곧바로 모스크바 시내 다른 곳에 있는 외무부 본부 청사로 이동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후속 회담을 했다. 21일에는 러시아 국방부를 찾아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대장)과 면담했고, 이날 다시 모르굴로프 외무차관을 만났다.

모르굴로프 차관과의 회담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선희는 회담 내용에 대해 "쌍무관계와 조선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고 소개했다.

미북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 김정은의 측근이자 대미협상 실세로 꼽히는 최선희가 러시아를 방문해 연쇄 회담을 연 데 대해 북한이 우방인 러시아와의 밀착 행보를 과시하면서 미측에 압박감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협상 결렬을 예상하고 우군 확보를 위한 배후 다지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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