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칼럼] 뉴욕타임스(NYT) 지면 위에 펼쳐진 한국의 담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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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19 16:25:52
  • 최종수정 2019.11.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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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광화문 집회 주도하는 J목사를 자아도취적 선동가로 묘사...광화문 시위 참가자를 J목사 추종세력으로 폄훼
한국에서 벌어지는 담론 전쟁에서 좌파 지원하기 위함인가?
우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지자...좌파는 현 제체 사회주의로 전복하고자 하는 세력
NYT, 美 독자에게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수와 진보’ 간 대결로 호도하는 셈
광화문 광장 가득 메운 시위자들...보수 진보 떠나 文정부의 실정과 국정파탄 우려하는 충정에서 나온 것
현실 왜곡한 NYT 기사는 순수한 ‘진보’ 청년들 ‘가짜 진보 세력’에 끌어들이려 나팔 불어주는 것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11월 11일 한미동맹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기내용으로 비치된 뉴욕타임스지를 뒤적이다가 한국인 기자가 쓴 한국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포퓰리스트 목회자가 한국의 보수 재건을 주도하다(The Populist Pastor Leading a Conservative Revival i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칼럼형 기사였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인터넷판에는 11월 8일자로 올린 것이었다. 기사를 꼼꼼히 읽으면서 애잔한 씁쓸함을 느꼈다. 매 토요일 광화문에서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는 J 목사의 이야기였는데, 한국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미국 독자들에게 크게 두 가지의 결론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내용이었다. 첫째 J 목사는 정상적인 목회자가 아닌 대중선동가이고 시위군중의 주류는 J 목사를 추종하는 늙은 광신도들이며, 둘째 J 목사가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보수를 재건하여 진보세력인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씁쓸함을 느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작성자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J 목사 개인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킴으로써 그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폄훼되는 내용이었다. 물론, 훌륭한 영어로 나이스하게 쓰여진 기사였고 부정적인 측면을 기술할 때에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함께 소개하면서 공정성 시비에 대비하는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미국인들에게 J 목사의 이미지를 선동가로 각인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이 “J 목사의 지지자들은 그가 모세의 리더쉽과 솔로몬의 지혜를 갖춘 것으로 보지만 반대자들은 자아도취적 선동가이자 가짜 예언자(narcissistic demagogue and fake prophet)로 생각한다”라는 부분을 읽으면 당연히 후자에 비중을 싣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선동적이면서도 기억하기 쉬운 구호들(incendiary but easy-to-remember tag lines)을 끊임없이 외치는 방식으로 나이든 개신교 신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라는 부분이 외국인들에게 심어줄 이미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량과 정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고루 소개하는 균형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기사는 J 목사가 유투브 방송을 운영하고 있고 그가 후원하는 기독자유당이 내년 총선에서 의석을 얻으려 한다는 내용, 그를 반대하는 다른 개신교 목회자들이 그를 ‘독사의 자식(son of vipers)’으로 부르고 “거짓말과 가짜 통계들로 추종자들을 집단적 히스테리(mass hysteria)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한다는 내용 등을 소개했다. “J 목사로부터 서구세계에서 보아온 우익 포퓰리즘의 전형인 애국심 및 편협한 민족주의 호소, 빈번한 ‘하나님과 전통’ 들먹이기, 국가붕괴 위험성에 대한 분노와 공포 확산시키기(to spread resentment and stoke fear that the country is in danger of collapsing or being wiped off the face of the Earth) 등이 자주 발견된다”는 기술도 있었고, J 목사의 집회에 동참하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온 한인교포가 안수기도를 한번 받고 4천 달러를 헌금했다는 내용, J 목사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5명 이하의 자녀를 낳는 가정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기 위해 불교 승려들을 외딴섬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 설교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불렀다는 내용 등이 소개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내가 원하면 여신도들이 내 앞에서 팬티를 벗을 수 있을 만큼 나를 신뢰한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다. 물론, 문맥을 무시하고 거두절미한 것이라는 J 목사 본인의 해명을 아주 간단히 덧붙이기는 했다.

사실, ‘팬티’ 이야기는 일부 기자들이 특권인양 남용하는 ‘악마의 편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 방으로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박탈하면서 이미지를 먹칠하는 방식인 것이다. 물론, 기자로서는 모두가 팩트이기 소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팩트가 맞을 수 있고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내용과 분량 면에서 양 측면을 균형되게 소개한 후 독자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균형을 맞추는 내용보다 J 목사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압도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그럼에도 필자가 씁쓸함을 느낀 주된 이유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담론전쟁이 미국 국민을 향해서도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며, 여기에 비하면 개인의 이미지 문제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에서 자유민주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좌파와 이를 수호하고자 하는 우파 간에 대결이 펼쳐지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좌파가 담론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우파의 입지가 혼란스럽고 취약하다는데 동의한다.

자고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좌우 스팩트럼과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보혁 스팩트럼은 서로 다른 것이다. 우파란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고 좌파란 현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이와는 별개로, 보수란 과거의 가치와 제도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고 진보란 가급적 과감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목표는 공히 ‘국가사회의 발전’이다. 당연히, 보수도 꼭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이며, 진보 역시 꼭 필요한 과거의 가치와 제도들을 버리지 않는다. “보수는 과거에 안주하여 무조건 변화를 거부한다” 또는 “진보는 변화만을 추구하여 옛것들을 모두 파기한다”라는 말은 모두 음모론적 주장들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기에 보혁 스팩트럼을 좌우 스팩트럼과 겹쳐 놓으면 보수와 진보는 공히 우파의 영역에 속한다. 이와는 별개로, ‘수구(守舊)’란 좌우 모두를 가로지르는(cross-cutting) 개념이다. 즉, 수구란 자신이 표방하는 이념이나 성향과 무관하게 지독하게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은 좌우 모두에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한국의 방송들과 대부분의 신문들은 ‘좌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세력을 ‘진보’로 불러주고 있다. 좌파 정치인을 ‘진보 정치인’으로 그리고 좌파 정당을 ‘진보 정당’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는 좌파가 ‘프레임 전쟁’에 승리하여 스스로를 ‘문제가 없는 진보’로 불리도록 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인데, 이 전쟁에서 본의아니게 전상(戰傷)을 입는 것은 순수한 진보들이다. 진보 젊은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원하는가, 사회주의 체제로의 변환을 원하는가”라고 물어보면, 이들 대부분은 개혁을 원하지만 사회주의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답한다. 즉,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문제가 없는 진보이지 좌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좌파와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과거 ‘보수’로 불렸던 사람들이 보여준 퇴행적 행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좌파들이 스스로를 ‘진보’로 불리도록 하는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일부 언론이며, 젊은 언론인 중에는 멋모르고 좌파와 동행하다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때 독일인들은 괴벨스의 선전선동에 속아 나치의 맹종자가 되어 히틀러를 선출했었다. 언론이 좌파의 심부름꾼이 되고 국민이 좌파와 진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소수인 사회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일 수 있다.

이번 뉴욕타임스지의 기사가 이 담론전쟁에 뛰어든 것으로 느껴지는 대목은 “J 목사가 문 대통령과 같은 ‘진보’ 지도자들이 한국을 공산화하고 있는 것(Progressive leaders like Mr. Moon are Communizing South Korea)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보수와 진보’ 간의 대결인양 호도하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다. J 목사의 시위집회에는 실제로 망국의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세력과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세력 간의 대결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시 말해, 보수든 진보든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 뭉쳐서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좌파, 즉 언론들이 ‘진보’라고 불러주는 ‘가짜 진보’에 맞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10월 3일, 9일 그리고 25일에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중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삼삼오오 모여서 광화문으로 나온 주부들도 많았다. 이들을 ‘선동가 목회자를 추종하는 늙은 광신도들’로 매도하는 것은 정확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광화문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J 목사가 문 정부를 향해 외치는 소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다. 그들은 때로는 J목사가 평범한 목회자라기보다 선동가에 가깝다고 느끼면서도, 좌파들이 수많은 전정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법부와 언론을 포함한 사회 제분야를 장악한 숨막히는 현실에서 J목사의 역할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성원하는 사람들이다. 문 정부의 좌향좌 정책들에서 비롯되는 경제 추락, 수출 급락, 안보파괴, 언론 통제, 건국역사 부정, 자본 유출 등을 지켜보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 기사는 이런 부분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도처에 “증거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의 첩자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이 실제로 사퇴할 가능성은 없으며(all but nill), 분석가들은 돈키호테식 선동가(quixotic firebrand)가 지핀 불길은 결국 꺼질 것(flame will eventually peter out)으로 본다,” “교회 부흥회와 같은 J 목사의 시위행사를 비기독교인들은 좋아하지 않게 될 것(His rallies could be off-putting to non-Christians because they look like church revival meetings)” 등 도차에 ‘가짜 진보’를 지원하는 내용들로 넘쳐 났다.

요컨대, 이번 뉴욕타임스지와 같은 한국관련 기사들은 이런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순수한 진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가짜 진보’들의 담론전쟁을 위해 나팔을 불어주는 것이 되고 만다. 많은 한국 국민이 문 정부를 진보 정부로 보지 않고 오히려 보수와 진보가 함께 맞서야 할 대한민국 파괴세력으로 의심하고, 또 그렇게 볼 수 있는 정황들이 넘쳐나는데도, 이들을 계속 ‘진보’로 자리매김시켜주면서 이들에게 등을 돌리는 국민들을 낡은 보수세력으로 몰아가는 식의 보도는 결코 정확하지도 공정하지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도 않다. 동맹국 국민에게 그런 시각을 심어주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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