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 나온 조·청 무역장정 ‘내지 통상권 허용’...실제로는 ‘개설 허락된 영업소 외에 내지 무역 금지’
조항에선 항구·해안서 밀수나 화물무역 금지...내지 무역 허용됐다면 이런 규정 있을 필요 없어
오류 제기한 김병헌 소장 “교육부에 수차례 민원 넣자 일부 교과서 수정됐다”
“이의신청 묵살될 시 소송인단 준비해 행정소송 절차 밟을 것”
한국사 17번 문제도 논란...양아버지에 끌려가 위안부 된 김학순씨, 문제에선 일본군에 끌려간 것처럼 서술돼
김병헌 소장, 교육부가 일본인 사진을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이라 왜곡 삽입한 점 지적해 교육부의 자진 수정 이끌어내기도

2020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한국사 11번(홀수형) 문항이 출제 오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1번 문항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무역 장정)을 다룬 문제로 지문에 나온 두 사람의 가상 대화가 무역 장정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지난 2016년 한국사 14번 대한매일신보에 관한 옳은 답을 찾는 문항에서 복수 정답을 제시해 공식적으로 오류를 인정한 바 있으며, 2018년 수능에서도 산미증식계획과 관련한 15번 문항이 교과서 서술 및 통설과 다른 오류라는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역사 전문가인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은 지난 14일 수능이 끝난 후 한국사 문제지를 검토한 결과 11번 문항에서 무역 장정과 관련한 두 사람의 가상 대화는 실제 무역 장정과 상반되는 내용이라고 18일 펜앤드마이크에 제보했다.

2020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한국사 11번(홀수형) 문항.

문제의 가상 대화에 따르면 1882년 청나라와 무역 장정이 체결되면서 ▲청나라 상인이 조선의 한성과 양화진에서 영업소를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내륙에서도 무역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정답을 ⑤번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 체결되었다”로 설정했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는 대부분 ‘내지 통상권 허용’이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 무역 장정 제4조를 보더라도 이는 잘못된 대화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상인이 조선의 양화진과 한성에 들어가 개설이 허락된 영업소[行棧] 외에 각종 화물을 내지로 운입(運入)하여 가게를 열어 판매하는 것은 승인하지 않는다. 만약 양국 상인이 내지로 들어가 토산물을 구입하고자 할 때는 마땅히 피차 상무위원과 지방관에게 청구하고 함께 서명한 증명서를 발급하되 구입할 처소를 분명히 적어 넣는다.……<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제4조 – 1882. 8. 23.>

이 조항에 따르면 양화진과 한성에 개설이 허락된 영업소 외에 내지(조선 땅을 말하는 것으로 내륙은 잘못된 표현)로 화물을 운입(運入)하여 무역할 수 없다. 즉, 양화진과 한성에 개설이 허락된 영업소에서의 무역 외에 각종 화물을 내지로 운입해 판매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내지에 들어가 토산물을 구입하고자 할 때는 소정의 절차를 밟으면 구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결국 허가 사항은 내지 무역이 아니라 토산물 구입에 한정된다.

김 소장은 내지 무역이 승인되지 않았다는 근거로 같은 무역 장정 제3조를 제시했다.

……양국 상선이 풍랑을 만나 손상을 입어 수리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개방하지 않은 항구에 몰래 들어가 무역을 하는 자는 조사하여 체포하고 배와 화물은 관에서 몰수한다. ……아울러 해안에 올라가 음식물과 식수를 살 수 있으나, 사적으로 화물을 무역할 수 없다. 위반하는 자는 배와 화물을 관에서 몰수한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제3조>

이 조항에는 항구에 몰래 들어가 무역을 하거나 해안에 올라가 사적으로 화물을 무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배와 화물을 관에서 몰수한다는 처벌조항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김 소장은 “내지 무역이 허용됐다면 이러한 규정이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 “마찬가지로 내지무역이 허용됐다면 한성이나 양화진에 영업소를 개설할 수 있다는 내용도 필요 없다. 두 곳 모두 조선 땅, 즉 내지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한국사 11번 문제에서 언급한 내지 무역이 전면적으로 허용된 것은 무역 장정이 아니라 1883년에 체결된 조·영 수호 조약이라고 했다.

……영국 인민이 또한 증명서를 지니면 앞으로 조선의 각 처에 여행이나 통상을 할 수 있고, 아울러 각종 화물을 운반하여 판매하는 것과 일체의 토산물 구매를 허락한다. <조·영 수호 조약 제4관 – 1883. 10. 27.>

이와 같은 근거를 종합해 김 소장은 “무역 장정에서 내지 무역 허용을 전제로 한 11번 문항의 가상 대화는 명백한 오류”라고 밝혔다. 이어 수능 출제 오류는 기본적으로 현행 교과서의 잘못된 서술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대부분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서 내지 통상을 허용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 소장은 교과서 출판사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무역 장정에서 내지 통상권을 허용했다는 서술은 오류라는 취지의 민원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하였다고 한다. 모든 출판사와 국편이 통설이라는 이유로 수정을 거부하였으나 유일하게 비상교육 출판사(대표집필자 도면회 교수)는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청 상인이 내지 통상권을 얻었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내용에 기반하여 청 상인이 허가를 받을 경우 개항장 밖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수정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이 표현도 사실 무역 장정의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내지 통상권 허용을 삭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지난 해 새 교과서 편찬을 사직할 무렵 교육부를 통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한국사 서술 오류 수정을 요청하면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를 정리한 ‘국사, 이대로 가르칠 것인가(블루앤노트 간)’라는 저서를 pdf파일로 전달하면서 2020년도 교과서에 동일한 오류가 그대로 수록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한 바 있다고 한다. 그 책에는 무역 장정의 오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서술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입수한 새 교과서 일부 검토본에는 무역 장정의 내지 통상권 허용이 사라지거나 아예 ‘내지 통상 금지’를 명시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서 청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청 상인은 서울(한성)까지 들어와 상점을 개설할 수 있었고,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검토본, 미래엔, 139쪽>

“임오군란 이후 조선은 청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청 상인은 양화진과 한성에 점포를 개설할 권리를 얻었다. 조약상으로는 원칙적으로 양화진과 한성을 제외한 내지 통상은 금지되었으나, 청의 정치적 영향력에 힘입어 청 상인은 거류지를 벗어나 무역을 시도하였다. <고등학교 한국사 검토본, 동아출판, 125쪽>

김 소장은 미래엔 교과서에는 ‘내지 통상 허용’이 사라지고 동아출판은 아예 ‘내지 통상 금지’라고 명시하였다”면서 “내지 통상 허용을 전제로 출제한 한국사 11번 문항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제4조를 오역(誤譯)한 명백한 출제 오류”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 소장은 지난 2018학년도 수능한국사 15번 문항이 교과서나 학계의 통설에 비추어볼 때 명백한 오류임에도 이의신청과 수차례에 걸친 민원 제기가 모두 묵살 당한 경험을 한 바 있어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에 대비하여 미리 소송인단을 모집하여 행정소송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사의 출제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 소장은 평가원이 17번 문항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씨를 등장시키며 “고(故)김학순 할머니는 중·일 전쟁 이후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시행해 인력과 물자를 수탈하던 시기에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았다”고 서술한 점을 문제 삼았다. 여기서 김씨가 정확히 누구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는지 평가원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본군을 후술하며 김씨가 일본군에 끌려간 뉘앙스를 남겼다는 것이다.

2020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한국사 17번(홀수형) 문항.
1991년 8월 15일 한겨레 기사.

실제로 김씨는 일본군에 끌려간 게 아니라 양아버지 손에 이끌려 북중국 철벽진의 일본군 3백여명이 있는 소부대 앞으로 갔다고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증언했다.

김 소장은 교육부가 명백한 일본인 사진을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사진이라 왜곡 삽입한 점을 문제제기해 교육부의 자진 수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올해 신학기 6-1 초등학교 교과 국정교과서에 일본 홋카이도 개척 과정에서 악덕 토목업자에게 강제사역 당한 일본인들 사진이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강제 노역에 동원된 우리 민족’이라고 잘못 삽입된 부분이 그것이다. 교육부는 김 소장의 지적에 따라 최근 2학기부터 사용하는 5-2학기 교과서의 오류를 대부분 수정했다. 초등사회 교과서 5-1과 6-1은 초등 5, 6학년이 1학기에 같이 사용하는 교과서이며 5-2와 6-2는 2학기에 사용하는 교과서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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