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장관, 외통위서 "北선원 추방, 탈북민에 미친 영향 전혀없다" 드러내놓고 궤변
北목선 소독 증거인멸 논란에 "돼지열병확산 방지차원"...선원들 신체조건 세부설명 없이 "다부진 체격"
합동신문조사 녹화기록 등 제출 요구 관련 "자료 일부 공유했지만...그부분은 국회 정보위 논의할 문제"
'자필 귀순의향서' 짧게 언급하고 해군에 나포 당시 "웃으며 죽자" 선원 발언을 귀순의사 부정에 악용
'추방조치의 법적 근거' 野의원 서면질의에 통일부 "없다" 했는데 김연철 "많다" 주장...근거법령 못 대
김연철, 지난 8일 "북한이탈주민법상 귀순의사 밝혀야..." 거론해놓고 이날 "법 적용 안했다" 뒤집기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1월15일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 출석해 현안 보고서 낭독을 마친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의 탈북 어민 2명 강제북송 사건에 관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일에 이어 15일 국회에 출석해서도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해 추방을 결정했다"고 강변했다. 제대로 된 물증 없이, 국회에 직접 제출하지도 않으면서 두 20대 초반 선원들을 "흉악범죄 북한주민"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이들을 판문점까지 안대를 채우고 포승줄에 묶은 채로 압송한 뒤 강제북송했다는 정황 보도는 부정하지 못하면서 "대단히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한편 "이번 추방이 현재 입국해 정착한 탈북민에게 미친 영향은 전혀 없다"는 궤변을 폈다. 김연철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강제북송 사건 계기 긴급 현안보고에 출석해 이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보고 첫 마디부터 김 장관은 "최근 발생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북한주민 추방에 대한 경과와 정부입장"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정부 측이 주장해온 강제북송 선원 2명의 선상(船上) 살인 혐의에 대해선 "조사 결과 이들은 다른 공범자와 함께 선장과 선언 등 16명을 살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언했다.

보고에 앞서 이정현 무소속 의원이 '해당 선원들을 지난 2일 나포한 뒤 7일 강제북송하기 전 이뤄진 합동신문조사 과정의 녹화 기록이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통일부가 신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아무 자료도 주지 않고 형식상 현안보고가 이뤄지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자료요청을 하고, 윤상현 외통위원장(자유한국당 소속)이 가능여부를 물었지만 김 장관은 "그 부분에 대해선 정보위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그는 '합동신문조사 자료를 본 적은 있느냐'는 윤상현 위원장 물음에는 "일부를 공유는 했었다"면서도 자료 요구와는 선을 그으면서 "나름대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뒤이은 현안보고에선 강제북송된 탈북 선원들을 '흉악범죄자'라고 못박으려는 언급을 쏟아낸 것이다. 김 장관은 "이번 사안에 있어 국가의 기본적 책무인 우리 국민 생명과 안전보호를 최우선으로 해 우리 국민이 위협에 노출될 개연성을 차단하고자 했다"며 "정부는 흉악범 도주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이들을 추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일반 북한이탈주민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정부는 북한이탈주민 입국, 귀순 및 정착과정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잡아뗐다. 긴급 현안보고에 앞서 정진석 한국당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청와대가 북한 억류중 혼수상태에 빠져 본국에 이송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부모의 면담요청을 거절한 것을 언급하며 "우리 청와대에서 탈북민을 초대해서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없고, 통일부 장관이 탈북민 (故 한성옥 母子) 아사사건 분향소에 방문해 위로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는데도 '탈북민 정착과정 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김 장관이 인용한 통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추방된 북한 주민 2명은 20대 초반의 '다부진 체격'의 보유자로 특수훈련을 받은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탈북민 사회에선 강제북송 피해자들을 '군 입대 경험도 없는 영양실조 청년들'이라며 집단살인 주범으로 단정한 정권을 규탄해왔으나 '다부진 체격'이라는 한 마디로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상착의나 구체적인 신체 조건은 언급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두 사람을 흉악범죄자로 단언한 근거를 찾으려는 듯, 중 1명은 평소 정권(正拳) 수련으로 신체 단련을 했고 다른 1명은 절도죄로 교양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다고 거론했다. 또 살해된 선원 대부분이 선상 경험이 없는 노동자들이었던 반면, 추방된 2명을 포함한 공범 3인은 기관장·갑판장 등으로 선원 생활 유경험자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유 중 하나로는 둘 중 1명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측 해상으로 도주하던 과정에서 해군 특수전요원에 의해 제압되자 "웃으면서 죽자"고 말하며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했었다고 진술한 것을 거론했다. 하지만 남측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북한 청년들이 나포 직전에 몰려 꺼냈던 말을 귀순 의사를 가늠하는 데 악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나포된 두 사람이 자필로 귀순의향서까지 쓴 것이 언론보도로 드러난 것에 대해 통일부는 "이들은 보호를 요청하는 취지를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당사자들이 귀순 의사를 표명한 언급에 대해선 소개하지도 않은 채 "조사 결과 범죄사실 진술과 북한 내 행적, 나포 과정 등 관련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귀순의사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고 정권 입장만 강조했다.

지난 5일 강제북송을 결정하고 북측에 통보하기까지 조사 개시(3일) 이후 만 이틀도 안 걸렸다는 언론 보도에 관해 김 장관은 "통상 송환에는 북측 인원의 상태와 북측 호응도에 따라 3일에서 5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이번의 경우 이들의 범죄행위가 명백히 확인돼 나포부터 추방까지 6일이 소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현안보고에서 "실제로 탈북민을 범죄행위를 사유로 추방한 사례는 1건도 없었다"고 했다.

김 장관은 국가정보원이 농림축산식품부 검역본부에 지시해 혈흔 감식도 없이 탈북 선원들이 타고 있던 목선을 소독하고 북측에 인계했다는 언론 보도에 관해서는 "최근 아프리카 돼지열병 확산 방지 차원"이라는 명분을 댔다. 그는 '지난 2010년 이후 북한이 무단 입북한 우리 국민 16명을 판문점을 통해 인계받았다'는 주장도 현안보고에 끼워넣었는데, 대한민국 안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헌법상 국민인 탈북민에 적용 불가한 '강제퇴거'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월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목선을 북측에 인계하기 위해 예인하고 있다. 해당 목선은 지난 2일 16명의 동료 승선원을 살해하고 도피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나포된 뒤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측으로 추방된 북한 주민 2명이 승선했던 선박이라고 정부 측에서 공개한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정치권과 언론에서 '길이 15m 남짓의 목선에서 20명 가까운 사람이 승선한 가운데 2~3명이 16명을 살해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잇따른 것을 의식한 듯 그는 "목선은 길이 16m 폭 3.7m 무게 17t이었고 선창이 5개 있었다"며 "탑승인원의 경우 통상 10m~15m의 북한어선에는 10명 이상이 승선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목선에는 단순히 '10명 이상'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20명 가까운 인원이 탑승한 가운데 선상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선박의 격리된 공간과 취침시간을 이용해 교대근무를 명목으로 총 16명을 순차적으로 살해했다"고 통일부는 단언했다.

김 장관은 현안보고 말미에 "우리 사회 전체 탈북민에게 미치는 영향, 이번 추방이 현재 입국해 정착한 탈북민에게 미친 영향은 전혀 없다"고 말해 탈북민사회의 동요와 반발을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어 "일각에서 탈북민 강제북송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탈북민들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며 "대단히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행동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비판 여론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동안의 언론 보도와 정치권, 시민사회의 "살인북송" 의혹제기에 직접적으로 '허위사실'이라고 반론을 펴지 못하는 모습이다.

통일부 보고서를 받은 외통위원들 중 김재경 한국당 의원은 현안보고 전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통일부에서 만들어온 자료를 보면 우리가 지금 문제삼고 있는게 뭔지 분명히 알고 있었을텐데도 완전히 초점을 흐려버렸다"며 "우린 지금 (강제북송 관련) 프로세스, 인권 이런 문제에 대해서 무게 중심을 두고 논의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흉악범죄 북한주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완전히 가치중립적이지 못한 것이다"고 통일부를 질타했다.

이어 "처음부터 선입관을 딱 깔아놨다"며 "보고서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 우리가 이렇게 국회에서 상임위를 열어가지고 문제 삼고자 하는 것하고 완전히 처음부터 방향을 틀어가지고 온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재경 의원은 "(정부가 내세우는) 그 사람들의 진술 이외에는, 이 사람들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지금 없지 않나. 그것도 배까지 우리나라에서 소독했다든가 깨끗이 씻어서 북한으로 보내버렸다"며 "자백 이외엔 아무런 보강 증거가 없는데 흉악범죄자라고 이렇게 단정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왔다는 건 지금 이렇게 상임위를 열고자 한 우리 국회 의도를 경시하고 무시한 태도"라고 쏘아붙였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오른쪽)이 11월15일 오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 선원 2명 강제북송 사건 및 은폐논란에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통일부는 강제북송 관련 앞서 '법적 근거'를 물은 야당 의원의 서면 질의에 "(추방 조치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으나, 이날 김 장관은 "저희들이 검토한 법률들은 많다"는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이 '북한주민 추방과 관련해 직접적인 법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고 따져 묻자 김 장관은 이같이 말했다. 연이은 추궁에 김 장관은 "북한이탈주민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탈주민법상 귀순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대한민국 국민으로 취급한다"며 강제북송 명분을 찾은 발언을 뒤집은 격이다. 그는 실제로 어떤 법률에 근거해 추방 결정이 이뤄졌는지 답변하지 못했다.

김 장관은 또 '강제북송된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인가 아닌가, 외국인인가 국민인가'라는 물음에는 "귀순 의사라는 최소한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탈북 선원들에 대한 중앙합동정보조사가 있었느냐'는 물음에도 머뭇대다가 "정해진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얼버무렸고, '전체 합동조사보고서를 봤느냐. 영상은 안 봤느냐'는 질문에도 뚜렷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그가 "지난 10년간 표류하고 있는 북한어민들 중에서 '귀순하지 않겠다, 돌아가겠다' 해서 송환한 숫자가 185명이다. 이 부분은 지난 10년간 정부와 관계없이 일정한 원칙"이라며 이번 강제북송이 이례적이지 않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자 이정현 의원은 "그 사람들은 당연히 귀순의사가 없으니까 돌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귀순의사도 없는데 잡아오라고 했느냐"며 "귀순의사가 있다고 자필로 서명 진술까지 한 사람들을 어떻게 거기에 똑같이 비유하냐"고 질타했다.

실제로 김 장관이 앞서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 순서에선 "해군이 (NLL 월경 북한어선 퇴거조치) 매뉴얼에 따라서 퇴거조치를 취했는데 다시 넘어오고 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고 하는 과정에 이틀 정도 걸렸다"고 진술한 대로면, 해당 선원들이 지속적으로 월남을 시도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현안보고에서 김 장관이 두 선원이 '목선'에 타고 있었다고 보고한 데 대해 이 의원은 "지난번에 (외통위에서) 제가 '동력선이냐 목선이냐' 질문했을 때 굳이 (규모가 큰) 동력선이라고 막 강조했지 않았느냐"며 "이렇게 기본적인 것 조차도 장관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조사서 하나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사지로 보냈느냐"고 짚기도 했다. 김 장관은 "목선에 모터가 달린 겁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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