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재용 2심 판결 판사 파면하라’는 청원에 답변
“사법권 독립 원칙 지켜야 한다”면서 한편으로는 “법원행정처에 내용 전달하겠다”고 밝혀
법원행정처는 판사 ‘인사’ 총괄하는 부서
정혜승 청와대 비서관 “사법부, 국민의 뜻 새로 들어야” 꾸짖기도

청와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을 파면하라는 “국민청원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인사 등을 총괄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20일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정형식 판사에 대해 이 판결과 그동안 판결에 대한 특별감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시작된 이 청원은 청원 사흘 만에 총 청원수 20만을 넘겼다. 20일 현재 총 24만6289명이 이 청원에 동의한 상태다. 청와대는 청원 글이 한 달 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 참모나 부처 장관이 답변을 한다는 방침을 정해뒀다.

이번 청원의 답변자로 나선 정 비서관은 전반적으로는 ‘사법권 독립의 원칙’을 강조했다. “청와대는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를 징계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다. 정 비서관은 "재판 내용으로 인사 불이익 영향이 있다면 외부 압력에 취약해지고 사법부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비서관은 그러나 청와대가 이 부회장 2심 판결 결과에 불만을 제기한 국민청원 내용 그 자체에는 ‘동의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일반인은 보다 적은 뇌물 주고도 실형을 받은 사례, 재벌에게 유전무죄라는 논란, 이른바 3·5법칙이란 비난도 있다"며 "국민들이 청원을 하게 되기까지는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이 반영됐다는 점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3‧5법칙’이란 대기업 총수들이 판결에서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는 것을 비난하는 말이다.

이날 방송에 함께 출연한 김선 행정관은 정 비서관이 이같은 답변을 하는 사이사이 “무서운 속도로 청원이 진행됐다”, “국민 감정은 저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등의 추임새를 넣었다.

정 비서관은 이같은 청원이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감시와 비판에 성역은 없는 만큼 국민은 사법부도 비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악의적인 인신공격이 아니라면 국민의 비판을 새겨듣는 것이 사법부뿐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 등 우리 모두의 책무”라며 “청원을 통해서 드러난 국민의 뜻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사실상 사법부를 꾸짖었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이번 청원 내용을 법원에 직접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정 비서관은 “감사원이 모든 공무원에 대해 특별감사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며 “법관의 비위가 있다면 역시 사법부 권한이고, 이번 청원에 대해서도 법원행정처에 이런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판사의 판결 내용을 법관의 비리에 비유한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인사총괄심의관 등을 운영하는 법원 내 핵심 부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껏 법원행정처에 이런 식의 내용이 전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가 ‘인민재판의 장’이 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법관 파면을 요구한 국민 청원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하는 논리대로라면, 나경원 의원의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 파면을 요구한 청원 내용과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청원 내용도 각각 올림픽위원회와 빙상연맹에 전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 의원의 조직위원 파면 청원과 김보름‧박지우 선수 자격 박탈 청원은 각각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힌편 청와대는 20일 오후 3시30분 현재 “정형식 판사 파면 및 특별감사”라고 크게 쓰인 이 답변 내용을 홈페이지 첫 화면에 걸어두고 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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