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 날개를 달아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면 기업인들은 활발한 투자를 하여 기업을 일으킨다. 기업이 늘어나면 고급 일자리는 절로 생긴다. 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면, 기업 주변의 음식점, 술집들이 활황을 맞을 것이고, 세금이 잘 걷혀 정부 재정도 원활해진다. 이것이 당신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박정희 정부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임기가 절반 남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갈수록 절벽이다.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신의 정부가 가장 못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일자리”라고 답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기업이 할 일을 정부가 대신하느라 세금을 퍼부어 임시직을 미친 듯이 양산하고 있다. 막상 기업정책은 규제로 철옹성을 쌓고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로 등을 강제화하는 바람에 기업들은 사업 접고 해외로 이전하거나 폐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자리는 누가 만드는가? 이 질문을 하면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정부”라고 답할 것이다. 틀렸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을 키우면 일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인들이 열심히 기업을 키우도록 돕고, 기업의 창업을 돕는 것이다. 그러한 모범적 전형은 박정희 재임 18년 간 줄기차게 이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때마다 정부가 담당할 기업을 정해서 저리자금 융자, 조세 감면, 산업용지 지원 등 통 크게 지원했다. 한국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단위 중화학공업 공장을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관치금융을 통해 투자자금을 배분했으며, 기업이 맡아서 사업을 진행하는 정부-은행-기업 3각체제로 건설했다. 이처럼 정부 주도 하에 육성한 대기업을 앞세워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한국형 발전모델을 좌승희는 ‘작은 나라 큰 기업 전략’(좌승희․김창근 지음, 『이야기 한국경제』, 도서출판 담, 2010, 42쪽)이라고 설명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낳고, 중소기업은 일자리를 낳고…

개발연대에 한국은 내수시장 규모가 작아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신 기술이 접목된 자동화 시설을 갖춘 국제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 다음 정부가 집중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즉 독점기업을 만들고, 정부가 적극 육성했다.

투자에 대한 회수기간이 길고 대규모 투자가 집중되는 산업 분야는 민간의 역량만으로는 투자가 어렵다. 이럴 때 정부가 국영기업으로 설립하여 일정기간을 운영하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민영화를 했다. 이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면 즉시 또 하나의 회사를 설립하여 경쟁체제로 이행했다. 석유화학, 종합제철, 항공사 등이 이 과정을 밟았다.

축적된 민족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서 대기업을 육성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정책은 일본의 근대화 시기, 정부 주도 하에 재벌을 육성한 일본 모델과 거의 비슷했다.

이렇게 대기업이 만들어지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포진한다. 일자리는 이런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안정된 일자리를 통해 소득이 높아진 사람들 덕분에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양질의 일자리는 없애고, 세금을 퍼부어 저질의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4일 군산에서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 참석한 모습(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양질의 일자리는 없애고, 세금을 퍼부어 저질의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4일 군산에서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 참석한 모습(사진 연합뉴스).

‘한강의 기적’의 주인공은 기업인

그렇다면 기업은 정부의 각종 혜택만을 받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는가? 아니다. 박정희와 관료가 주인공으로 알려진 ‘한강의 기적’도 근원을 추적해 보면 진짜 주인공은 기업가들이다. 한국의 진로를 결정한 외자도입형 공업화 전략의 원조는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아이디어였다. 보세가공무역을 통한 수출제일주의는 천우사 창업자 전택보가 내놓은 작품이다. 태백산종합개발사업, 중화학공업 건설, 울산공업단지, 수출자유지역, 종합상사 제도 등도 기업가들이 제안하여 정책으로 채택된 작품들이다. ‘한강의 기적’의 주인공은 기업인이었던 것이다.

5·16 직후 박정희는 민생고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재계 지도자들과 만났다. 이날 재일동포 기업가 이원만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약 두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그 가운데 실제로 채택되어 시행된 것은 다음 세 가지였다. 첫째, 서울 근교에 수출 전용 공업단지를 조성할 것, 둘째, 가발을 제조하여 수출할 것, 셋째, 전국 각지에 세워져 있는 전봇대의 소재를 나무에서 시멘트로 교체할 것.

그 결과 서울 구로동에 한국수출공업단지가 설립되어 초대 위원장에 이원만이 취임했다. 이원만은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 기업가들에게 “고국에 투자하여 조국발전에 기여하자”고 호소했다. 이원만의 한국에서의 성공을 목격한 재일교포 기업가들 중 정규성, 서갑호, 신격호 등이 고국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산업분야든 수출을 목표로 한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정부와 기업이 합심하여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수출지향의 중화학공업 건설 정책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정부의 수준 높은 발전전략 수립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사업기회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모험적인 투자를 전개하는 등 드높은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정갑영, ‘기업가정신과 경제발전’, 송자 외 지음, 『아산 정주영과 한국경제 발전모델』, 아산사회복지재단, 2011, 16쪽).

중화학공업 건설은 정부의 발전전략과 정책적 의지도 중요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사업 분야에 도전한 기업가들의 개척정신이 없었다면 결코 실현될 수 없었다. 경험과 자본, 고급 기술과 인력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화학공업에 뛰어든 기업가들의 결단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산업화 성공과 경제성장을 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러다보니 박정희와 동시대의 테크노크라트들이 구국의 영웅처럼 신격화되기에 이르렀고, 박정희와 정부(혹은 관료) 못지않게 기업가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제 폭탄을 맞고 몰락 일보직전으로 몰린 자영업. 문재인 정부는 입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정책시행은 일자리를 말살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최저임금제 폭탄을 맞고 몰락 일보직전으로 몰린 자영업. 문재인 정부는 입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정책시행은 일자리를 말살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조선소 건설: 먹물 관료는 비관, 기업인은 낙관

정주영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울산 조선소 건설을 두고 혹자는 중화학공업 선언에 따라 정부가 현대를 지정해서 조선소를 만들도록 했다고 하는데, 그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주영에게 조선소를 건설하라고 지명한 것은 박정희와 당시 정부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정주영이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여 건설에 돌입하기 전까지 대통령과 관료들이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웠어도 그것은 단지 ‘서류상의 도상 계획’에 불과했을 뿐이다. 실제로 사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의 확보, 공장의 입지, 투자자금 동원, 판로 개척, 마케팅 등은 전적으로 정주영의 몫이었다.

현대가 무수한 난관을 돌파하며 조선소와 선박 건조를 동시 추진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이자 경제 사령탑인 태완선 경제부총리가 “현대조선소가 성공하면 내 열 손가락에 불을 붙이고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발언했다. 그 정도로 대형 조선소 건설은 불가능에 가까운 고난도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정주영은 모든 여건이 미비하니 조선소는 불가능하다는 체념 대신 현실 가능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했다.

초대형 선박 건조 경험이 없었던 정주영은 덴마크 조선소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세계적인 명성의 조선 전문가를 사장으로 영입했고, 영국·덴마크·스웨덴 등에서 우수한 조선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26만 톤급 유조선(VLCC) 건조를 맡겼다.

조선소가 본격 가동되었을 때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조선 산업이 불황에 빠지자 정주영은 고부가가치 선박, 해양 플랜트, 철골구조물 등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하여 손실을 만회했고, 또 현대 산하 계열사들의 지원으로 적자를 메워가며 성장을 지속했다. 모든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프로젝트를 이처럼 기발한 방식으로 성공시킨 것은 기업가 정신의 승리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박정희 정부는 기업을 키워 해외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국내에 수많은 기업이 생겨났고, 이들이 고용을 창출하여 고급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 사진은 수출을 위해 부두에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들(사진 연합뉴스).
박정희 정부는 기업을 키워 해외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국내에 수많은 기업이 생겨났고, 이들이 고용을 창출하여 고급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 사진은 수출을 위해 부산 신선대 부두에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들(사진 연합뉴스).

결사반대했던 반도체 성공 비결은 ‘기업인 이병철’

기업가들은 여론과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여 국가적인 성장동력을 창출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병철은 1969년 1월 온갖 비난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전자산업에 참여했다. 삼성전자가 겨우 컬러 TV를 만들어 수출에 나설 무렵 이병철은 반도체와 교환기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병철의 반도체 산업 대한 도전기는 그의 사업가로서의 명예와 삼성그룹 전체의 운명을 건 일대 모험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작이라고 평가되는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은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추진의 산물이라는 시각과 함께 기업가의 ‘모험을 불사하는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결단’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다. 이석채 전 대통령 경제수석도 “자동차산업과 전자산업은 정부로부터 재정적 및 행정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김인영, 『한국의 경제성장-국가주도론과 기업주도론』, 자유기업센터, 1998, 209~210쪽).

결론적으로 한국형 발전모델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개입’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와 개입에도 불구하고 사기업이 주도적으로 경제운용을 해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김인영, 앞의 책, 214~215쪽).

박정희는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 날개를 달아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면 기업인들은 활발한 투자를 하여 기업을 일으킨다. 기업이 늘어나면 고급 일자리는 절로 생긴다. 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면, 기업 주변의 음식점, 술집들이 활황을 맞을 것이고, 세금이 잘 걷혀 정부 재정도 원활해진다. 이것이 당신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박정희 정부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다.

기업을 해방시켜라. 기업인의 기를 살려라. 그러면 일자리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단순한 정책을 거꾸로 돌리느라 별별 미친 짓을 다하고 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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