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냉전, 독일 분단 상징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행사 獨 각지에서 개최
동서 냉전, 독일 분단 상징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행사 獨 각지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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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10 11:24:29
  • 최종수정 2019.11.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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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냉전과 독일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1961년 처음 건설돼 1989년 11월9일 붕괴
9일부터 독일 각지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 행사 개최
동구권 국가들 정상들 9일 베를린서 열린 기념식 참석한 가운데 미.러 양국 정상만 안 보여...‘미.러 갈등’ 배경
고르바초프 前 소련 대통령 “냉전시대를 그리워해서는 안 돼” 美 트럼프 대통령도 “지구상 존재하는 압제적 전제 정권에 동맹국들과 함께 대응” 등 논평

독일 전국 각지에서는 지난 9일(독일 현지시간)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동서 냉전 및 독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지난 1989년 11월9일의 일이다.

특히 동서(東西) 베를린의 분단과 통일 모두를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문(門) 앞 광장에서 지난 9일 열린 기념 행사에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독일 정계 인사들은 물론 구(舊) 소련 붕괴 후 민주화의 길을 걸어 온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정상들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다수의 언론은 이 행사에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다수의 희생자를 낸 비인도적인 벽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는 분노, 증오, 소외와 같은 ‘새로운 벽’이 생겼다”면서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을 향해 “이를 부술 수 있는 것은 우리들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연설, 독일 국민들 간의 사회적 통합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8일(독일 현지시간) 분단 시절 동서베를린의 통행 검문소 역할을 한 브란덴부르크문 앞 하늘에 파란색과 노란색의 리본 전시 작품이 설치돼 있다. 리본 하늘에는 베를린 장벽 붕괴를 가져온 동독 시민들의 평화혁명을 기념하고 통일 독일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시민 3만 명의 메시지가 담겼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붕괴’ 20주년 행사 당시 참석한 바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미.러 양국 간 갈등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미.러 양국 관계는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냉전 이후 최악의 관계를 맞이한 이래 정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배경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7월23일 러시아 조기경보기 1대가 우리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입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도 전투기, 전략폭격기, 조기경보기 등 러시아 군용기 6대가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무단 진입하는 등 러시아 측이 군사 도발을 감행해 우리 군 전투기가 출격하기도 했다.

자유진영 측의 서(西)베를린과 공산진영 측의 동(東)베를린을 가르는 거대한 장벽이 처음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1년의 일이다. 공산 독재를 견디다 못해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는 동독 주민들이 늘어나자 ‘반(反) 파시스트 보호벽’이라는 이름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서베를린 전체를 둘러싸는 길다란 장벽을 세운 것이다.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첫 월경자로 기록된 한스 콘라트 슈만 씨. 그는 동독 인민경찰 부사관으로 근무중이던 1961년 8월15일, 서독 측과 미리 협의하고 ‘장벽’ 근처를 서성이다가 재빠르게 장벽을 넘어 동독을 탈출했다.  

‘장벽’ 건설 이전만 하더라도 동.서베를린 간 왕래는 자유로웠는데, 1949년 이후 ‘장벽’이 세워지기 전까지 자유를 찾아 동베를린을 탈출한 시민의 수는 3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자유를 향한 ‘대탈주’였던 것. ‘장벽’ 건설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벽을 넘고 땅굴을 파는 등 서방으로의 탈출을 감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동독 경계병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장벽의 건설로 서베를린은 사방이 공산 세력으로 포위돼 ‘육지의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당시 소련의 최고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발언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인은 자기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폭력이 개입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또 그는 “냉전시대를 그리워해서는 안 되며 그때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고도 했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미.러 간 갈등 상황과 관련해서는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도 9일 성명 발표를 통해 독일을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라면서 ‘장벽’을 두고는 “억압과 실패한 사회주의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동서 냉전으로부터 긴 세월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는 아직도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의한 압제적 수법을 사용하는 전제 정권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정권들에 대해 동맹국들과 함께 대항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표명하기도 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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