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무열왕릉 앞에서
[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무열왕릉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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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앤투어, 공부에 여유를 더한 오감 호강 프로젝트 가동
딸을 잃은 김춘추, 당에 앞서 먼저 연개소문 찾아가
동맹 제안 거절하며 억지 부리는 방법 오늘날 북한 연상
영토 한 뼘은 수많은 군사의 피와 목숨, 고구려 요청 물리쳐
산 백제장수와 죽은 신라인의 유골 맞바꾸며 천하무적 김유신 군대 탄생
지도층의 철저한 자정과 자기검열, 삼국통일의 원천
적이 있으면 무력, 적이 사라지면 화해, 순서와 교훈 잊지 말아야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지난 주말, 펜앤투어 여행객을 인솔해 다시 경주를 찾았다. 프로모션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여행에 접어든다. 펜앤투어는 특급호텔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출고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최신 최고급 리무진 버스를 타고 다닌다. 마치 이동하는 호텔 같다. 그래서인지 다소 빡빡하게 짠 스케줄이 별로 피곤하지 않다. 그러면서 제도권 교육이 잘못 꿰어놓은 첫 단추, 고대사와 삼국사의 엉터리 사관을 교정하고, 유적과 기록에 나오는 현장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다닌다. 천하에 없는 오감 호강 프로젝트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태종무열왕 김춘추 왕릉, 지난달에 왔을 때는 왕릉 들머리 화강암 거북이를 가려놓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새 단장을 마쳤는지 비각이 말끔하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비석을 등에 진 거북이는 과연 천 수백 년이 지났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희고 빛난다. 신라인이 남긴 걸작 중의 걸작이다.

무열왕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경주의 서쪽 선도산에 있다. 서방정토 불교사상이 들어온 뒤 형성된 온갖 신령스러운 이야기를 품은 선도산, 아래로 둘째아들 김인문과 후손 김양의 묘를 거느린 채 왕릉은 말없이 만추의 노란 햇볕에 젖어간다. 살아서 뜻을 함께 한 생동지(生同志), 사사로이는 처남이자 사위이기도 했던 김유신의 유택은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두 영웅이 나란히 누운 선도산은 과연 신령스럽다.

아직 왕이 되기 전, 사랑하던 딸을 참혹하게 잃고 김춘추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고구려였다. 당시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난 김춘추는 양쪽 군사로 백제를 치고 그 땅을 양국이 나눠 갖자고 제안한다. 아마도 백제에 딸을 잃은 사정쯤은 연개소문도 공유했을 공산이 크다. 김춘추의 다급한 속내를 읽은 연개소문은 선뜻 동조하지 않고 잔꾀를 낸다. 먼저 신라가 옛날 고릿적에 가져간 충청도 이북 땅을 돌려주면 그 다음에 한번 생각해보자고 한다. 동맹을 맺자면서 우리 땅은 돌려줘야지. 그래야 진심으로 가슴을 열고 화해하는 게 아니겠나? 어딘지 익숙한 수사, 많이 봐온 수작이다. 자신들은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일단 먼저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북한 주장과 뉘앙스 하나 다르지 않은 그대로가 아닌가? 한마디로 관심이 없다, 동맹할 의사가 없다는 거다.

이런 바보 같은 제안에 속아 넘어갈 김춘추가 아니지만 연개소문은 생각을 해보고 확답을 달라며 돌아간다. 이후 김춘추는 사신이 묵는 관사에 발이 묶여 여러 날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말이 영접이지 실은 감금이다. 연개소문이란 작자는 뜻을 함께 할 상대가 아니구나. 그런데 돌아갈 방법이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김춘추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구러 속절없는 날짜만 흘러간다. 보다 못한 고구려 관리 선도해란 자가 슬쩍 귀띔한다. 대신께서는 혹시 별주부전 이야기를 아시는지? 그제야 김춘추는 무릎을 친다. 고맙소이다.

연개소문을 만난 김춘추는 말한다. 돌아가서 임금과 상의해보고 허락이 있으면 돌려드리지요. 그럴 때 국경에서 파발이 달려온다. 신라 장군 김유신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깜짝 놀란 연개소문이 묻는다. 왜? 오랫동안 사신이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연개소문은 즉시 김춘추를 풀어주며 말한다. 죽령 이북 땅을 돌려주면 반드시 동맹을 맺고 백제를 치겠소.

태종무열왕릉비의 귀부와 이수
태종무열왕릉비의 귀부와 이수-출처 문화재청

이후 신라는 동맹을 위해 연개소문이 원하는 죽령 이북 땅을 돌려주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김춘추는 고구려에서 돌아오자 궁여지책으로 당나라를 찾아간다. 당나라 대군을 끌어들이면 백제를 치기엔 유리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전략임을 김춘추가 몰랐을까? 백제를 멸한 뒤엔 신라마저 위태롭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춘추가 땅 한 뼘 아끼려고 자신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비로소 위험한 도박에 뛰어든다. 어떻게 빼앗은 땅인가? 수백, 수천, 때로는 수만 군사들의 목숨을 버리고 피를 뿌려가며 얻은 땅이 아닌가. 그 고귀함을 신라는 끝까지 잊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비결이며 핵심이다.

이런 일도 있다. 한창 전쟁이 치열했던 진덕여왕 시기에 김유신은 어느 전투에서 장수 8명을 포함한 백제군 여럿을 생포한다. 그리고 백제 진영에 사람을 보내 대야성에서 죽은 성주와 신라인의 유골을 자신이 생포한 백제 포로와 맞교환하자고 제의한다. 신라인의 뼈를 산 백제인과 맞바꾸자는 것이다. 백제로선 진의를 의심할 정도로 반색하며 신라인의 뼈를 파내어 김유신에게 보낸다. 물론 김유신은 약속대로 장수 8명을 포함한 백제 포로를 모두 돌려보낸다. 바로 이 사건 이후 김유신의 군대는 천하무적이 된다.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불패 불굴의 군대, 하늘이 낸 신장 김유신은 이렇게 탄생한다.

이런 이야기는 또 어떨까?

백제 막바지, 황산벌의 계백이 막강할 때, 5만 신라군이 독기 품은 5천 결사 앞에서 쩔쩔 매자 필마단기로 나선 인물은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청년 관창. 그 아버지는 김유신의 오른팔 김품일이다. 오늘날로 치면 삼성장군쯤 될까? 알다시피 관창은 혼자 돌진해 싸우다가 계백에게 사로잡힌다. 투구를 벗겨본 계백은 관창을 살려 보낸다. 관창을 베면 끝인 줄을 왜 모르랴. 살아나온 관창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되돌아 돌진한다. 두 번째로 사로잡힌 관창, 이번엔 계백도 어쩔 수 없이 관창을 벤다. 그러면서 아마도 자신의 종말을 예감했으리라. 관창이 죽자 신라 진영에선 또 다른 청년이 나선다. 이번엔 김흠순의 아들 반굴이다. 김흠순이 누군가? 김유신의 하나뿐인 남동생, 그 역시 무공이 높아 무열왕의 9장수 가운데 하나요, 삼국통일 3공신에 꼽힐 만큼 출중한 무예를 자랑하는 인물이다. 김유신이 임금의 처남이면 김흠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권력자의 아들이 친구 관창의 죽음을 뻔히 보고도 나선다. 김흠순은 아들을 말렸을까? 그 또한 천만의 말씀이다. 도리어 아들을 사지로 보내면서 김흠순은 스스로 북채를 잡고 격고(擊鼓)의 타수가 되었다던가.

이런 게 신라의 힘이었다. 이 힘을 바탕으로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한다. 타락한 백제를 무너뜨리고, 탐욕과 정쟁에 휘청거리던 고구려 사직을 땅에 묻는다.

지금은 어떤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조국이란 자 얘기는 같은 지면에 쓰기조차 부끄럽다. 관은 어떻고 군은 어떤가? 멀쩡한 우리 영토를 적에게 빼앗기고도 남의 탓만 해가며 서로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이 따위 바보 얼치기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킨다고? 개도 웃을 일이 아닌가! 이런 조직, 이런 집단은 온 국민이 나서서 요절박살을 내야 한다. 그게 적을 박멸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다. 그래야만 진짜 적을 박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이 있으면 무력을 키워 적을 쳐야 옳다. 스스로 엄격하고 매섭게 자정을 거듭하면서 통솔과 인솔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통일을 먼저 한 선조들의 역사는 말한다. 적 앞에서 무력해지거나, 적의 존재를 잊고 흥청망청하거나, 적과 섣불리 손을 잡은 자들은 전부 패망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화해는 그 다음에, 지상에서 적이 없을 때 하는 것이다. 이걸 거꾸로 하면 되레 우리가 망한다. 무열왕과 그 아들 문무왕의 신라 역사가 그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위정자와 모든 국민이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될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다.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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