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생활기록부의 가치를 떨어뜨린 책임은 그 누구보다 교사
수시 대입전형, '서민'이 집 못 살까봐 시장에 간섭하는 '정부'처럼 행동하는 것
대한민국 다수 교사들, 자신들의 시각이 좌파적 사회시각에 쏠려 있다는 점조차 깨닫지 못해

배민 숭의여고 교사 [사진출처-]
배민 숭의여고 교사 [사진출처-블로그]

며칠 전 내가 일하는 교무실의 교사 한 명이 부동산 가격에 대해 울분을 토하였다. 서울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 교사는 '인간의 탐욕은 정말 끝이 없다'는 한탄을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사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정의롭고 덜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교사가 강남의 고가 아파트 거주민 보다 더 정의롭다거나 덜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할 수 없다. 대중은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며 인기있는 명품 대학에 강남 지역 학생 진학율이 높은 것을 불공정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인간'은 실체 없는 이미지이며 일종의 타인에 대한 인격재판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동화적 시각의 반영이다. 우리 중에 그 누가 탐욕스러운 인간을 한 명 지적해서 데려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이 탐욕스러운 제도인가? 그럼 정부가 일률적으로 공급하는 계획경제 시스템은 탐욕스럽지 않은 제도일까? 의료와 함께 대표적인 공공영역에 해당하는 교육의 예를 보면, 학교에서도 학년 초마다 교사들 간에는 업무 분장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진다. 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한시간이라도 적은 수업 시수를 배정받기 위해 나름 '경쟁'하는 모습인 것이다.

과연 더 많은 수익을 바라며 자신의 돈과 에너지를 기꺼이 투자하고자 하는 탐욕과, 타인의 땀과 노력에 무임승차하여 편하게 살고자 하는 탐욕, 둘 중 어느 쪽이 더 파괴적인 탐욕일까. 감정을 내려놓고 냉정히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A가 고가의 부동산을 산 것과 집 장만이 요원한 B의 처지는 사실 관계없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부동산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시장 가격이 교란되고 거품이 껴서 수요공급 원리가 엄격하게 작동하지 않는 이유도 알고 보면, 전자 (더 많은 수익을 바라는 탐욕)를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정부의 (세금을 통한) 성급한 개입과 규제로 인한 시장 왜곡, 그리고 후자 (무임승차를 바라는 탐욕)의 개인들로 인해 누수 되고 있는 비대한 공공부문 경제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정부의 무리한 확대 재정 정책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펼친 저금리 정책과 통화 팽창을 통해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형성시키고 화폐가치를 하락시킨 장본인인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대해 한국사회는 무관심해 보인다.

같은 원리로 바라볼 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수시 대입전형과 관련하여, 고교 생활기록부의 가치를 떨어뜨린 책임은 그 누구보다 교사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거의 정확하게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망쳐 놓은 원리와 같다. 탐욕스러운 개인들 때문에 '서민'이 집을 못 살까봐 어버이처럼 시장에 간섭하는 정부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전국의 고교 교사들이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어떤 교사가 학생의 품성을 교사들 자신의 시각으로 평가하여 '저 학생은 정말 괜찮은 학생'이니 '꼭 붙어야 하는데'라고 걱정하는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흔히 볼 수있는 모습이다. 내신 성적이 좋고 비교과 스펙이 우수한 학생은 그 반의, 그리고 그 학교의, 소위 대입 성과를 높이는데 소중한 '자원'이며, 담임교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 학생은 우리 반의 에이스'라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노심초사 자신의 반, 자신의 학교 학생들을 명품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두 발로 직접 뛰며, 학부모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돌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 가격 상승을 개인의 탐욕이라고 생각하듯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사는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학생이 더 좋은 대학에 가는데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것이 정말 고등학교 교사의 제대로 된 책무일까. 별생각 없이 하는 위의 행동들로 인해, 고교 교사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학력시장 (구매자로서의 학생들과 졸업장의 판매자인 대학교가 서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서로를 선택하는 시장 거래)에 개입함으로써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노력을 왜곡시키며, 그로 인해 많은 이가 주목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초래되는 부작용 (학교와 교사에게 이쁨 받지 못한 학생들은 소리없이 외면 받고 불이익을 당하는)에 일정 기여한다.

즉, 버블을 초래하고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오히려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정부가 결과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처럼, 정작 내신 성적은 낮고 이렇다할 비교과 활동은 없어도 말없이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묵묵히 공부를 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의 꿈을 (수시 전형에서 인기있는 학교에 합격할 확률이 높은 일부 학생들에 대한 편애와 맞춤 친절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일선 교사들이 의도했건 아니었건 간에 결과적으로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돈을 벌거나 임금을 지급해본 경험이 없는 교사들은 흔히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인간의 탐욕' 운운하며 자신들이 정의의 편에 선 사도 마냥 의견을 펼친다. 그 의견들은 일견 따뜻한 인간애와 정의감에서 우러나온 듯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견들은 대부분 사회문제를 바라봄에 있어서 못 가진 자를 정의의 편에, 많이 가진 자를 탐욕의 편에 등치 시키는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시각에 바탕을 둔다. 문제는 부동산을 예로 든 위의 사례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교사들은 자신들의 시각이 이러한 좌파적 사회시각에 쏠려 있다는 점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며, 좌파라고 불리기도 좋아하지 않는 교사들을 많이 봤다. 단지 자신은 부패한 권력 집단을 비판하는 것이며 서민이 모두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고 소박하게 자신의 무지를 포장한다. 그러면서 오늘도 학교에서 열심히 수시 입시에 잠재성이 높은 자원들에게 특별 관심을 쏟고 있다.

따뜻한 인간애의 외피로 포장된 좌파적 시각은 올바르고 순수한 시각이며, 대화가 안 통하는 보수의 이미지로 낙인 된 우파적 시각은 위험한 정치적 시각으로 이분화 된 사고의 프레임 속에 교사 자신들도 모르게 갇혀 있는 것이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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