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앤투어, 6·25 전쟁 70돌 앞두고 '김용삼 대기자와 함께 하는 전승지 순례 6탄(彈)전 프로젝트' 마련
펜앤투어, 6·25 전쟁 70돌 앞두고 '김용삼 대기자와 함께 하는 전승지 순례 6탄(彈)전 프로젝트'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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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07 11:49:49
  • 최종수정 2019.11.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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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돌 프로젝트
김용삼 대기자와 함께하는 전승지 순례 <6탄전 프로젝트>
“무찌르자 공산당, 잊지말자 6·25”
괴뢰를 무찌른 70년 전의 성지순례

소련 비밀문서를 통해 본 새로운 6·25 특별강좌도 개설 예정

내년이 6·25 발발 70주년이다.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는 6·25 70돌 행사를 북한과 공동으로 기념사업을 치르느니 뭐니 헛소리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는 벌써부터 용역사업을 통해 “참전 당사국과 참여국이 함께 참여하여 냉전시대를 마무리하고, 참전용사와 희생자 추모, 보훈 및 남북화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6·25전쟁 70주년 국방사업 기본구상 연구」라는 보고서까지 내놓은 것이다.

이 보고서는 남북 공동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배경에 대해 “새 정부 이후 한반도의 종전 선언과 항구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냉전 시대에서 평화시대로, 정전제제를 평화 제제로 바꾸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침략자와 한 자리에 모여 평화를 논하고, 전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치르겠다니, 이게 제 정신인지 아무래도 정신감정을 의뢰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 전도의 시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지난 6월 현충일 동작동 국립현충원 기념사에서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었다고 칭송했다. 

바로 며칠 후, 이번에는 스웨덴으로 날아가 스웨덴 의회에서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입니다”라고 연설했다. 

진짜 6·25의 참모습 현장에서 확인하는 역사기행

이런 비정상적인 사관을 단숨에 때려부수고 진짜 6·25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펜앤투어에서 역사기행 투어를 준비했다. 제목은 한국전쟁 70돌 프로젝트, 김용삼 대기자와 함께하는 전승지 순례 <6탄전 프로젝트>다. “무찌르자 공상당, 잊지말자 6·25”, 괴뢰를 무찌른 70년 전의 성지순례라는 슬로건에 이 여행의 의미가 잘 표현되어 있다.

우선 11월 23일(토)로 예정되어 있는 제1차 전적지 순례는 6·25 초반 대한민국을 구해낸 춘천·홍천대첩의 현장을 찾아간다. 춘천·홍천대첩은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전개된 전투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인민군 제2군단은 3개 사단(제2·7·5사단)과 각종 포 485문, 그리고 전차 등 총 병력 3만 6,938명을 동원하여 춘천과 홍천 일대에 기습 공격을 가했다.   

여기에 맞선 국군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제6사단으로, 총 병력은 9,338이었다.병력 수 1 대 4.1, 포병전력 1 대 10의 절대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군 6사단은 사흘 간 춘천 방어전투에 성공했고, 오히려 38선 일대까지 인민군을 쫓아버렸다. 이 전투에서 국군 사상자는 368명, 인민군 사상자는 6,792명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홍천 북방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6사단 산하 제2연대도 인민군 제7사단 공격에 대항해 매복, 역습을 실시하여 인민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6월 27일 홍천 말고개 일대에서 조달진 일병 비롯한 김학두 하사 등 11명의 특공조 육탄 공격 감행하여 인민군 전차 및 SU-76 자주포 10여 대를 파괴 노획하여, 조달진 일병은 6·25 전쟁 발발 후 최초로 미 동성훈장을 받았다.

국군 6사단이 춘천·홍천에서 대승을 거둔 이유가 있다. 6·25 발발 직전 경계령이 해제되면서 다른 부대들은 다수의 병력을 휴가·외박을 내보냈으나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위기의식 느껴 병사들 휴가를 제한하고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진지를 보강하고, 포병대대를 적의 예상 접근로에 배치하는 등 사전 조치를 취한 덕에 남침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반면에, 예기치 못한 패배에 분노한 김일성은 군단장 김광협과 제2사단장 이청송 해임하고 사단장 최충국이 전사한 제7사단 해체시켜 제12사단으로 개편했다. 

우리가 모르는 6·25, 현장에서 알기 쉽게 설명
 
국군 제6사단의 성공적인 춘천·홍천 전투는“서울 동남방으로 진출하여 수원 일대에서 국군 주력을 포위 격멸한다”는 북한의 직전계획 수포로 만들었다. 춘천에서 6사단이 대승을 거둠으로써 국군은 한강선 방어를 위한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고, 유엔군의 참전이 가능한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육군본부는 전선 단절과 부대 고립 막기 위해 국군 6사단을 원주 거쳐 충주로 이동시켜 재배치했다. 국군 6사단 산하의 제7연대(연대장 임부택 중령)는 7월 13~14일, 충북 음성 무극리 일대에서 박성철이 이끄는 인민군 15사단과 격돌, 1개 대대 병력으로 인민군 1개 연대를 섬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전 부대 장병이 일계급 특진을 했다. 

사례에서 보듯 국군 6사단은 6·25 전쟁 내내 가장 용맹하게 싸운 역전의 부대다. 1950년 10월 26일 국군과 유엔군 중 최초로 초산까지 진격, 압록강 물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부대도 6사단이요, 화천호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전멸시켜 화천호를 ‘파로호’로 명명하도록 한 것도 6사단이다. 국군 6사단은 6·25 전쟁 과정에서 국군 부대 중 최다 전투(154회)와 최다 적 사살(92,669명) 기록, 한국군 최초·최다 대통령 부대표창(16회)을 받는 등 맹활약했다.

팬앤투어는 이처럼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격전을 치른 현장을 찾아가 전투상황과 애국심을 기르고, 6·25의 참모습을 느끼도록 할 예정이다. 행사는 6회에 걸쳐 진행되며, 모든 순례행사는 펜앤드마이크의 김용삼 대기자가 현장에서 해설 및 강의를 진행한다.  

또 6·25 70돌을 맞아 소련 비밀문서가 공개된 후 새로 연구된 사료를 바탕으로 6·25가 스탈린과 모택동의 기획과 김일성의 남침으로 진행되었음을 밝히는 특별강좌도 내년 초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펜앤컬처센터 홈페이지(http://www.pennculture.com/), 펜앤투어 홈페이지(http://penntour19.com/)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여행문의는 펜앤투어 고객센터 (02)739-6988로 하면 된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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