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무너뜨린 오보 최대 수혜세력의 '집권후 변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2월2일 각 부처 대변인단에 지시" 이데일리 보도
"오보-왜곡보도 그냥 두면 청와대에서 묵과하지 않을 것"
동아일보 칼럼-日아사히 보도에 공개적으로 정정 요구
'언론 세무조사' '기자실 통폐합' 등 언론 압박 강행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행태 재연되나

청와대가 "언론의 오보나 왜곡보도에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방침을 각 정부부처에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인터넷매체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옛 홍보수석비서관)은 이달 2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정부 부처 대변인 회의에서 '오보나 왜곡보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달라. 명백한 오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두는 것은 청와대에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필요하면 중재위(언론중재위원회)까지 적극적으로 가라"고 각 부처 대변인들에게 지시했다.  청와대는 이데일리의 이같은 보도 내용에 대해 19일 저녁까지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언론이 정확한 팩트 확인 노력 없이 명백한 오보를 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야당 시절 한국 언론 사상 전례가 드문 최악의 거짓과 왜곡, 선동과 선정 보도로 박근혜 정부를 '억지 탄핵'으로 몰고간 잘못된 언론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홍수처럼 쏟아진 '가짜 뉴스'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몰아붙이는데 활용했던 현 집권세력의 과거를 떠올릴 때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정권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을 오보라고 단정하거나 사안을 보는 다른 관점까지 '적극 대응'의 대상으로 삼을 위험성도 있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동아일보 기자와 네이버 부사장을 지낸 윤 수석은 현직 기자 시절 언론계에서 대표적인 친(親)김대중 성향의 정치부 기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또 네이버로 옮긴 뒤에는 현 집권세력에 유리하고 현 야권에 불리한 방향으로 네이버가 '왜곡된 행태'를 보인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그가 당선이 유력시되던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하고 대선 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에 임명되자 현 야권은 그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야당 시절 전임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수많은 과장·왜곡·허위 보도의 '최대 수혜자'였던 현 정권이 집권 후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에 대해 강경한 방침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향후 어떤 파장이 미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권력의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몇몇 신문을 겨냥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언론사 세무조사 및 사주(社主) 구속 등의 압박을 가한 김대중 정권이나, 서울 정부청사 부처 '브리핑실 폐쇄'와 '기자실 통폐합'으로 논란을 빚었던 노무현 정권 못지 않게 언론 대응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네이버 부사장 출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옛 홍보수석비서관).(사진=연합뉴스)
네이버 부사장 출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옛 홍보수석비서관).(사진=연합뉴스)

청와대는 이달 들어 정권의 '여론 관리'와 '남북 화해무드 연출' 등에 불리한 보도에 대해서는 주류 언론에까지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5일 게재된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실장의 칼럼에 대해 다음날인 6일 '동아일보 칼럼의 정정을 요청합니다'란 제목의 참고자료를 내고 "이 칼럼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윤영찬 수석의 '언론계 친정'인 동아일보는 현 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는 정권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이같은 대응은 이례적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실장의 해당 칼럼에는 '최근 모종의 경로를 통해 북측의 메시지가 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대화와 핵동결을 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 대가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현금이나 현물지원이다. 이런 내용은 관계당국에 보고됐다'는 부분이 있었다. 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며 "메시지를 보낸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다.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관계당국은 더더군다나 있을 수 없다"면서 "청와대뿐 아니라 통일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반발했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이걸 사실이라고 믿었다면 어찌 1면 머리기사로 싣지 않은 건가요"라고 조롱하는 투로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거듭 "사실이 아니다.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아달라"며 "정부도 법에 기대는 상황을 결단코 원하지 않는다"고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 

언론의 논조 자체를 문제삼는 모습도 보인다. 청와대 자체적인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인 '11시 50분입니다' 진행을 맡은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지난 14일 방송에서 최저임금 대폭인상 후폭풍을 다룬 언론보도를 거론하며 "'기승전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부 언론은 최저임금에 모든 책임을 지우고 있는 듯하다"고 폄하했다.

나아가 "정확한 인과관계와 팩트체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경제학 원론에서도 소개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정권 차원에서 부인하고, 인상분 일부를 세금으로 지원하는 일명 '일자리 안정자금'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된 듯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청와대는 외신 보도에 대해서도 정정보도를 요구하기 시작햇다.

김의겸 대변인은 '한국 정부 당국자가 지난해 11월 이후 연말까지 두 차례 방북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했다'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최근 보도와 관련해 19일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해당 보도는 오보이며 정정보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사히신문 보도에 "손톱만큼의 진실도 포함돼 있지 않다"며 "하나하나 반박하는 게 구차할 지경"이라거나, "어제(18일) 사실이 아니라거나 확인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또 "아사히 신문은 우리에게 손님이다. 손님에게는 야박하게 굴지 않는 게 우리네 전통"이라면서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신문에 강력한 유감의 뜻을 전달하며 정정보도를 요청한다. '오보'에 대한 합당한 조처도 뒤따를 것"이라고 듣기에 따라서는 '협박성'으로 비칠 수도 있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청와대의 '정정 요구'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의원 시절 일본의 '극우 성향 매체'인 산케이신문 서울특파원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근거없는 악성 루머를 보도했다가 한 국내 시민단체의 고소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사건과 관련해 2014년 11월 25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법리나 판례나 세계적인 기준과 맞지 않다"며 "산케이신문 기자 기소는 국제적으로 창피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청와대는 오보 대응과는 별도로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대책도 강화한다는 방침으로 전해졌다. 윤영찬 수석은 이와 관련해 "가짜뉴스가 많다. (부처 차원에서) 계속 스크린해 달라"며 "가짜뉴스 공유 시스템 구축은 별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권 비판적인 언론 기사와 포털 댓글 고소·고발, 소위 '매크로 댓글' 의혹 제기는 물론 공표를 반복하는 집권여당의 디지털소통위원회 가짜뉴스대책단 행보 외에도 정부 차원의 추가 대응이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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