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한 여인과 모든 것을 가졌던 어느 위선자의 이야기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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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07 10:41:06
  • 최종수정 2019.11.0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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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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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인간의 참된 행복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두 명의 인간의 대조적인 모습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스즈키 히데코(鈴木秀子) 수녀는 일본 성심수녀회 수녀로서 젊을 때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함으로써 존재에서 존재로 전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신 분입니다. 이후 스즈키 히데꼬 수녀님은 말기 중환자들의 내적치유를 위하여 헌신하면서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수녀님은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들을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야기’(원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라는 책으로 묶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감명을 느꼈던 이야기 한 가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수녀님이 하루는 어느 시민대학에서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습니다. 강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객관적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제 친지 중에서 정신박약아를 키우는 집안이 있습니다. 이 정신박약아는 집안의 행복의 원천입니다. 언제나 이야기의 내용도 모르지만 싱글싱글 웃으며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는 이 정신박약아 아이에게 매일 꽃을 번갈아 사서 들고 오는가 하면 매일 새로운 이야기 꺼리를 찾아서 해준다고 합니다. 만약 그 아이가 없다면 이 집안은 훨씬 삭막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친지는 그 아이야말로 집안의 보물이요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강연 도중에 한 중년 여성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수녀님 눈에 띄었습니다. 그 여인은 강연이 끝나자 수녀님을 만나서 다음과 같이 자신이 지내온 이야기를 수녀님께 들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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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궁암, 위암, 대장암을 앓았고 암이 전이되면서 여덟 차례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몸뚱이 속은 동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속이 텅 빈 몸뚱어리를 하고서도 어떻게 살아 있는지 의사들도 신기해합니다. 어떻게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는지 궁금하시지요? 제가 생명을 부지하게 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저에게는 정신박약아인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었습니다. 그 아이는 올해로 스무 살인데 유아 정도 회화밖에는 못합니다. 저는 첫 번째 수술을 받고서 의사나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이제는 단념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수술을 받고 되살아나고 또다시 수술을 받고 되살아나곤 하였습니다.

제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 아이는 이불속에서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면서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 아이가 만면에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면 저는 제 몸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중병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았지만 ‘이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죽을 순 없다. 아이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아이는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라는 생각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아이를 보면서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때 마다 내가 살아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집의 아이도 저에게는 보배로운 꽃이요 행복의 원천입니다. 벌써 오래 전에 사라졌어야 할 제 목숨도 그 아이로 인하여 생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일하러 나갈 때도, 돌아올 때도 그 아이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저를 맞아줍니다. 제가 일하는 중에도 아들이 기뻐하는 그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저의 내부에서 기쁨과 생명이 용솟음쳤습니다.

제 아들은 태어나면서 3년을 살면 오래 사는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올해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그때 아들은 저의 얼굴을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엄마,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참으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접니다. 원래는 죽었어야 할 저를 그 아이가 천진하게 웃는 얼굴로 대해줌으로써 제 생명을 용솟음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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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 후 수녀님은 그 여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에 자신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저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라고 그 편지에는 씌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혼과 가난, 죽음에 맞닥뜨린 자신의 육신과 누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정신박약아 아들, 아마도 세상 사람들 눈에는 이보다 더 불행한 처지가 없을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올 때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자신을 맞아주는 아들의 한없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느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더욱 많은 것을 갖겠다고 다투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자신을 불행 속으로 몰아넣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와 권력, 명예를 가지고 더 큰 권력, 더 큰 명예를 추구하면서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사람을 우리는 지난 몇 개월간 경험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우리는 희망이 아니라 분노와 환멸을 느낍니다.

2019년 10월 3일 서울의 도심, 광화문에는 이 사람의 거짓과 위선, 파렴치한 행태에 치를 떨면서 이 나라의 시민들이 무려 150만 가량 모였습니다. 그는 권력, 돈, 명예 모든 것을 이미 가졌었습니다. 그가 만약 무한대의 권력, 대권을 욕심내지 않았더라면 한 사람의 지성인이자 학자, 그리고 한 때나마 권력을 누렸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았을 것입니다.

존재 자체이신 그 분,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주시는 그 분 속에서 말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바로 세상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분들입니다. 병든 육신과 가난 속에서도 정신박약아 아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면서 삶의 기쁨을 찾았던 중년의 이 여인이야말로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전해주는 하느님의 천사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서도 위선과 탐욕으로 자신과 가족의 파멸을 가져온 그의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분노와 환멸을 느끼게 하는 사탄의 그림자입니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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