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광화문에 모일 때마다 한 걸음씩 우리 목표에 다가선다는 변화 보여야
광화문에 모인 군중에게는 이제 방향을 모으고 그것을 제시해줄 확실한 지도자 필요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독일 작가 호르스트 부르거는 오래 전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 시대를 겪었고 1975년 8월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역작이 된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이 출판되기 1년 전이었다.

이 책에는 전쟁 당시 16세였던 아버지에게 전후 세대인 아들이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아버지가 대답하는 형식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의 구판 제목은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이었다.

작품 속 현재의 아들이 나치에 동조했던 아버지에게 던진 질문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첫째, 당시 독일 사람들은 왜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대했나요?
둘째, 아버지는 왜 히틀러 유겐트(소년단)에 들어갔나요?
셋째, 히틀러를 위해 싸우는 전쟁에 왜 어린애들까지 참여했나요?
넷째, 전쟁이 끝나고 나치즘은 사라졌나요?

이런 질문들에 아버지는 대략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한다.

“우리는 그게 조국을 구하는 길인 줄 알았다, 히틀러 유겐트의 갈색 제복을 입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했다, 우리는 꼭두각시처럼 조종을 당했을 뿐이야, 세계 도처에 적뿐이고 단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톱니바퀴의 이빨이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진실을 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없이 떠들어대는 중에 마침내는 그렇게 믿어버리게 되었지, 우리는 빨리 전쟁터에 나가서 자신의 애국심을 발휘하고 싶었다, 소련군이 독일 북부 지방을 점령한 뒤에 했던 짓은 우리에게 격렬한 분노와 복수심을 불러 일으켰다 …….”

어쩌면 우리는 벌써 이런 질문들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탄핵 정국을 고발하고 그에 동조한 ‘부역자’들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말이다. 그 영화를 본 한 외국인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나라가 좌파에게 넘어가고 대통령이 무참히 끌어내려졌는데 그 지경이 되도록 한국인들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분노하는가? 영화 속에서 비판당한 사람들 말고도 현 시국에 대해서는 한국인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들 앞에 오늘의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 나치에 동조한 아버지처럼 변명이라도 해야 할 텐데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아버지’는 나치 치하에서 어린 소년이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 우리는 조정을 당했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변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변명도 할 수 없다. 교육이 좌편향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 분개하는 우리 중 대부분은 이미 교육을 마친 성인들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은 줄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누가 우리를 조정한 것도 아니다. 언론이 좌파에 장악당해 왜곡과 거짓말을 쏟아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짓 뉴스들을 분별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무엇을 하느라 그 상황을 보고만 있었을까? 판이 기울어지려고 할 때 무엇하고 있다가 완전히 뒤집혀 바닥이 하늘을 보게 된 이제야 통탄하고 있는 걸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을까?

문득 일제에 항거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의 <참회록>이란 시 구절이 떠오른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후략)

인왕산 자락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

요즘 같은 날이 계속되면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우리도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할 것이다. ‘그때 그 중요한 시간들을 왜 그리 통탄만 하고 지냈을까? 좌파를 욕하고 뜻이 같지 않은 우파에게 내부 총질하고, 왜 그렇게 의미 없는 나날을 보냈을까? 왜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여 더 빨리 최악의 상황을 마무리 짓지 못했을까? 왜 그때 행동하지 못했을까?’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의 아버지는 변명에 가까운 답변을 마친 후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한다.

…… 민주주의는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야 한다, 어려운 시대에 정치 활동 따위에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과격파에게 문을 열어주는 행동이 된다, 파시즘은 길모퉁이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다가 민중이 자유보다 풍요만을 높이 평가하게 되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어 다른 부분의 자유는 축소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참여다 …….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말들이다. 그동안 수많은 희생과 피를 흘려 쟁취한 자유민주주의가 우리 곁에 붙박이로 길이길이 정착할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귀찮다고, 잘 모른다고, 맘에 안 든다고, 또 남이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외면하고 방심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알 수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훗날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커다란 문제이다.

기꺼이 ‘한 점’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광화문에 모인 군중

우리는 뒤늦게나마 ‘참여’를 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나간다. 정말 단군 이래 최대의 인파가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기꺼이 ‘한 점’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광화문 광장을 차지하고 서 있기만 한다고 우리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까?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모이는 게 낫겠지만 매주 모일 때마다 한 걸음씩 우리의 목표에 다가선다는 변화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참여’다운 ‘참여’가 될 수 있다.

광화문에 모인 군중에게는 이제 방향을 모으고 그것을 제시해줄 확실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여를 소망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 군중의 뜻을 모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사람은 누구인가? ‘점’이 되고자 나온 사람들의 힘을 모아 ‘선’을 만들고 ‘면’ 만들고 ‘입체화’하여 ‘점들’의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게 이끌어갈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얼마 전 우파의 모임에 야당의 한 지도자가 인사말을 하러 왔다. 오전부터 시작된 세미나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저녁 식사를 앞두고 있는 시간이었다. 진행자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됨을 강조하며 발언을 짧게 해주기를 모든 참석자에게 호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단상에 오른 야당 지도자는 “오늘은 기적과도 같은 날이다”라는 말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그날은 마침 광화문에 최대의 군중이 모인 10월 3일, 뭔가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갖게 된 날이다. 짧은 격려의 인사를 하고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단상에서 52시간 노동 등을 비판하는 시장경제 강의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제나 저제나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참석자들에게서 결국 고함이 쏟아져 나왔다.

“다 알고 있는 얘기 그만 좀 해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그는 야유를 받으며 쫓기듯 단상을 내려갔다. 저 사람의 주변에는 제대로 조언하는 참모 한 사람 없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광화문에 나오거나 혹은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래야 나중에 부끄러운 참회록을 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시장경제의 중요성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그 군중에게 지금 필요한 지도자는 다 알고 있는 이론을 지루하게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참여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확실한 행동 강령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다. 행동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믿을만한 지도자가 있어야 ‘우리의 참여’가 비로소 힘을 발할 수 있다. 그런 ‘백마 탄 초인’은 언제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광화문에 군중이 많이 모였다는 소식이 거듭될수록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그 군중의 에너지가 소진되기 전에, 그 군중이 실망하고 지치기 전에 힘을 모아야 ‘그 어느 즐거운 날’을 이룰 수 있을 텐데 ‘백마 탄 초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럼 먼 훗날 우리의 참회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그때 왜 우리는 초인이 저절로 나타나기만 기다렸을까? 우리 스스로 초인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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