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美의 핵합의 탈퇴 이후 미-이란 양국 관계 악화일로
4일 옛 美 대사관 앞 대규모 집회에서는 “미국에 죽음을” 구호 등장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5일 생방송 연설을 통해 “내일(6일)부터 4단계 조처로 포르도 농축시설(FFEP)의 원심분리기에 우라늄 기체(육불화우라늄)를 주입하라고 원자력청에 지시했다”며, 미국의 핵합의 탈퇴, 유럽의 미준수에 대응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이란 핵합의) 의무 이행 수준을 감축하는 제4단계 조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란은 이미 제3단계 조치 발표 때 핵기술 연구 개발 활동에 대한 제한 해제를 선언함과 동시에 유럽 측과 대화 진전이 없을 시 60일 뒤 제4단계 조치에 돌입하겠다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원심분리기를 둘러보는 하산 로하니 이란대통령(자료사진=연합뉴스)
원심분리기를 둘러보는 하산 로하니 이란대통령.(자료사진=연합뉴스)

핵합의에 따르면 포르도 농축시설에서는 우라늄 농축은 불가능하다. 핵합의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은 나탄즈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포르도 농축시설은 이란 중부 산악지대의 지하에 위치한다. 2015년 이란과 서방의 핵협상 때 이 시설의 용도 변경과 사찰을 놓고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기도 했다.

앞선 4일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 대표는 국영TV에 출연해 핵합의 구성 멤버 5개국(프랑스, 영국, 중국, 러시아, 독일)에 대해 이란 국익 보호 약속을 60일 이내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또 기존의 IR-1보다 50배 농축 속도가 빠른 원심분리기 IR-9 모델도 원형을 제작해 실험 중이며 IR-6 고성능 원심분리기의 가동을 2배 증가시키겠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종전 하루 450g 수준의 우라늄 생산량이 10배 늘어날 전망이다. 러시아 매체 스푸트니크(Sputnik)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농축 우라늄 500kg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양이 하루 5kg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핵합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러시아)과 독일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감축, 동결하는 대가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겠다고 제안했고 이란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지난 2015년 7월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결됐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상의 ‘일몰조항’과 탄도미사일 사업에 관한 합의가 없음을 문제삼고 지난해 5월 핵합의를 탈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한 이후 미-이란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몰조항’이란 이란의 핵개발 사업에 대한 제한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만료되게 한 조항이다.

지난 6월23일(미국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지난 몇 년 간 우리 감시 권역이 아닌 곳에서 이미 (핵개발) 행동에 나섰다고 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이 핵합의가 명시하고 있는 핵시설만이 사찰 대상이 된다는 허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대해 ▲이란 정부가 미국의 지폐를 구입하거나 획득하는 행위 ▲이란의 금을 비롯한 귀금속 무역 ▲흑연, 알루미늄, 철강, 석탄, 산업용 소프트웨어 수출,입 ▲리알화(이란 화폐)의 송금 ▲국채 발행에 관련 행위 ▲자동차 산업 ▲ 항만 운영사업과 에너지, 수송, 조선 산업 ▲석유 관련 거래 ▲외국 금융기관의 이란중앙은행과의 거래 등의 제재 조치를 시행해 왔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측마저 이란과의 교역을 중단함으로써 핵합의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이에 이란 정부는 지난 5월부터 3차에 걸쳐 60일마다 핵합의 의무 이행 내용을 단계적으로 축소, 서방측에 대해 핵합의 의무 이행을 촉구해 왔다.

4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옛 미국 대사관 앞에 모인 시위대의 모습.(사진=연합뉴스)

한편 미국의 관영 매체인 미국의 소리 방송(VOA)은 이란 시민 수 천 명이 미국 대사관 점거 40주년을 맞아 이란 테헤란의 옛 미국 대사관 건물 앞에 모여 미국의 이란 제재 조치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은 이란 종교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4일 반미를 주장하는 현지 대학생들이 미국으로 망명한 팔레비왕의 인도를 요구하며 미국인 인질 52명을 인질로 잡고 444일간 억류한 일을 가리킨다. 방송은 이 시위에서 “미국에 죽음을”(Death to America)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시위 하루 전인 3일(현지시간) 수도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테헤란에서 대학생 대표단을 만나 “미국과의 대화에서 나올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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